끝없이 걷고 싶은 북한산 의상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설경3
숨도 충분히 돌렸고 밥도 먹었고, 눈이 내려도 어디가 젖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으므로 걸음을 재촉했다. 의상봉에서 의상능선을 따라 가는 길은 약간 내리막을 거치게 되었는데, 봉우리 바로 옆 능선에 발을 올리자 곧바로 탄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딱 한 명 걸어갈 길이 나 있는 바위 능선은 좌우의 침엽수보다도 높이 솟아 있어서 드높은 산과 산 사이의 구름다리를 걷는 듯했기 때문이다. 도봉산 Y계곡 위에서 신선대로 가는 능선은 오싹하도록 좁고 뾰족한데다 난간까지 설치되어 백척간두를 걷는 극적인 기분이 들었던 반면에, 이곳은 난간도 없고 길도 평탄한 흙길에 가까워 비교적 평온했으며, 평온하면서도 앞뒤로 치솟은 봉우리들이 눈을 얹은 모습이 이어져 수묵화 속을 걸어 이 세상이 아닌 어딘가로 가는 듯했다. 나는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펼쳐진 비경을 몇 번이고 돌아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의상봉을 오른 뒤에는 경치 같은 보상이 없어도 만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옆에 광대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산이 품은 감동은 보고 또 봐도 다 즐길 수 없을 만큼 많겠지만 의상봉에서 이어진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눈덮인 풍경 사이로 지친 몸을 옮기는 순간은 그중에서도 각별할 것이다.
그림처럼 비현실적인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에서 살짝 내려가자 북한산성 성벽과 가사당암문이 나왔다. 암문은 성문 중에서 누각이 없는 일종의 쪽문으로, 비교적 좁고 네모난 구조가 특징적이었다. 굴다리와 흡사해서 별다른 매력이 없는 이 문은 그래서 오히려 정감이 가는 구석이 있었다. 누가 보든말든 방어시설로서 건설되어 자리를 지켜온지 300년이나 된 성문이 아닌가. 나는 가사당암문의 소박한 모습을 사진에 담고, 북한산의 성문들을 모두 돌아보는 북한산 성문 종주도 퍽 재미있고 보람된 산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아무도 시킨적 없고 한다고 특별히 인생에 득될 것도 없으며 대단한 재주라고 인정받을 수도 없는 짓인데, 그럼에도 별안간 해보고 싶어지는 게 등산만의 이상한 지점인지, 아니면 인간의 본질적인 도전 정신의 발현이지는 모를 일이다.
이후로 다시 거친 오르막과 약간의 내리막이 연달아 이어졌다. 원래 쌓여있던 눈 위에 방금 내린 눈이 뒤덮여 그냥 가기도 벅찬 길이 미끄러워지기까지 해서 상당한 난코스가 되었으나, 그래도 대체로 난간들이 말끔히 잘 설치되어 있어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끼지 않고 그냥 올라가는 데에 큰 무리는 없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끼는 게 당연히 안전할 텐데, 나는 기대보다 좀 비싸게 산 아이젠이 닳는 것이 싫어서 정말 미끄러워 걷기가 어려워지기 전까지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끼지 않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물건 아끼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이건 과도한 만용이었다.
눈이 좀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사방이 뿌옇게 변하기 시작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덕분에 용출봉(해발 571m)은 멋진 침엽수가 많이 자란 봉우리라는 것만 확인하고 지나가야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그 뒤에는 할미바위라 불리는 바위를 볼 수 있었다. 모아이 석상처럼 머리와 몸통처럼 보이는 바위였는데 할머니처럼 보이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암괴석이 보여주는 우연의 신비도, 그 우연의 결과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의 마음도 신기한 것이다. 이런 바위를 발견하고 남들을 만나 ‘거기 봉우리 옆에 할머니 닮은 봉우리가 있더라’하며 이름을 퍼뜨린 사람은 누구였을까?
또다시 좁아진 바위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을 지나자 나타난 곳은 용혈봉(581m)였다. 이곳은 좀전에 오른 용출봉보다 더 나무가 적고 높이 솟아서 주변 경치를 조망하기 좋은 곳일 듯했는데, 이때쯤에는 또다시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해서 봉우리 너머를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패산에 갔을 때처럼 만들다 만 저사양 컴퓨터 그래픽의 세계에 오른 듯했다. 눈 밟는 즐거움과 설경을 조망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즐기는 것도 운이 따라야 할 모양이었다.
다음으로는 부왕동암문을 보고 나한봉(681m)으로 올랐다. 어지간한 서울 근교 산보다 더 높은 봉우리다. 고도가 높아지면 온도가 내려간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슬슬 눈이 발목까지 올라올 정도로 쌓인 곳이 제법 되었다. 산에서는 사계절을 다 준비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정말 정신차리고 보면 환경이 너무 달라져 기겁할 때가 많다. 다행히 눈이 아직 밟히지 않고 깨끗한 터라 아이젠 없이 걸어 올라갈 수 있긴 했는데, 왜 사람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을까 의아해하며 데크 계단 앞까지 가서 보니 내가 지난 길은 사실 길이 아니었다. 또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에 속아서 길을 잃어버린 셈이다. 이렇게 산이 무섭다.
나한봉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사람이 많아졌다. 그간 지나온 길을 생각하면 번화가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등산객 대부분이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낀 채 신이 나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는데, 놀이공원이나 눈썰매장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었다. 즉,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무거운 짐을 지고 가혹한 오르막을 600미터쯤 기어오르는 고생을 했으면서도 눈덮인 산속을 어렵게 걷는 일의 기쁨에 겨워있는 것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바람을 가르는 재미나 물속을 누비는 자유를 맛보는 것도 아닌데, 위험하기까지 한 길에서 몸을 혹사시키며 행복감에 젖는 괴짜가 이렇게 많고 거기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었다.
나한봉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기억이 정확치 않다. 나한봉이 아닐 수도 있다). 네파의 낡은 등산화로 잘 버티긴 했지만 슬슬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착용해야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내려오는 여자 등산객 한 분이 말을 걸었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없으시면 이 위는 힘드실 거예요.”
투명한 공기가 음성의 반 이상을 차지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마치 이영애 같은 목소리였다. 내가 갖고 있다고 답하자, 그녀는
“그럼 차세요.”
하고 스르르 지나갔다. 자연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인간의 모습에 한탄하는 산의 수호자 같은 사람이었다. 묘한 신비감 때문에라도 충고를 들어야할 모양이었는데...... 반대로 대체 어느 정도길래 힘들 거라고 지나가던 이가 충고할 정도인가,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이 없다면 어떻게 되나 궁금해져서 신화 속의 흔한 맹추처럼 일단 그대로 진행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눈 쌓인 경사면을 오르던 나는 그 충고가 괜한 소리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바로 옆의 바위에 걸터앉아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착용했다. 그동안 지나온 길과 달리 그곳은 경사가 심한데다 잡을 것도 없고 다져진 눈이 반쯤 얼음이 되어 발이 도통 고정되지 않고 쭉쭉 밀려났기 때문이다. 걷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전진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그 등산객의 경고는 과장 하나 없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눈길의 공포를 몰랐던 나는 새삼 아이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만약 아이젠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길을 만났다면, 그게 한참 하산하는 도중이었다면 얼마나 낭패스러웠을 것인가. 특히 하산길은 다른 길로 돌아가려면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온 길을 도로 올라가야 하니 두 배로 가혹한 지경일 것이다. 안전한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아이젠을 차고 난 뒤에는 거짓말처럼 걸음이 안정되었다. 스파이크로 바닥을 찔러 고정하니 당연한 일이다. 착화감도 나쁘고 소리도 거슬리긴 했어도 안정적으로 걸을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었다. 덕분에 오래지 않아서 나한봉의 치성에 오를 수 있었다. 치성은 바깥 방향을 향해 ㄷ자로 돌출된 성곽이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관측과 적 공격에 유용한 구조라는 모양이다. 바깥으로 돌출된데다 높은 만큼 강화도까지 보일 정도라니 과연 오를 가치가 있는 봉우리였다. 그러나, 여전히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는 터라 성벽 바깥은 완전한 백색의 장막에 감싸인 듯했다. 한참 길을 헤맨 끝에 사패산 정상에 올랐을 때보다 아깝게 느껴졌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봉에 올랐을 때만해도 암벽을 오르는 것 자체가 보상이라고 해놓고 벌써 마음이 바뀐 것이다. 여기까지 들인 시간이 있는 탓이겠지만 정말이지 간사한 심리다.
이후로는 성곽을 따라 봉우리를 조심조심 내려갔다가 청수동암문을 지났다. 청수동암문 역시 규모가 약간 더 클 뿐 부왕동암문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돌문이었는데, 눈 쌓인 유적지 사진을 찍자니 즐거우면서도 불현듯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아름다운 순백의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사이에 자리잡은 회색빛의 수수한 문은 모든 게 다 결국은 버려지고 잃어진다는 진실을 표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자연이 빚어낸 풍경을 볼 때는 마냥 즐거워하다가 눈 덮인 유적을 보자마자 어두운 상념에 사로잡히는 것은 분명 불완전한 채로 혼자 걷는 인간의 동병상련일 것이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서 다음 봉우리인 문수봉(727m)에 올랐다.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에서 걸어올라갈 수 있는 봉우리 중에 손꼽히게 높은 봉우리에 도착한 것이다. 힘들고 어렵다는 악명대로 봉우리를 오르내리길 반복한 끝에 도착한 정점이니 개인적으로 기념할 만한 기록이었다. 그러나 의상봉까지 오르는 과정에 비하면 길이 잘 닦인 편이라 생각보다 힘들지도 않았던데다, 구름이 봉우리까지 내려온 것인지 이제는 불과 몇십 미터 아래조차 뿌옇게 보일 지경이라 드높은 봉우리를 정복했다는 실감은 전혀 나지 않았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손에 땀을 쥐는 위기도 결말의 멋진 장면도 없이 시간이 다 흘러가버렸다는 말이다. 이래서야 조만간 다시 오는 수밖에 없다. 그때는 또 그때의 풍경이 반겨주겠지.
문수봉에서 내려온 나는 성곽을 따라 대남문과 대성문을 보고, 그러고도 계속 걸었다. 눈이 제법 쌓인데다 작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이어져 만만치 않았는데도 걷는 게 즐거웠다. 쓸쓸함을 주었던 암문과 달리 화려한 성문은 경탄을 선사했고 성곽은 최소한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는 안정감을 주었다. 유적지 같은 곳에서 흔히 ‘선현의 숨결을 느끼며 걸어봐요’ 같은 안내를 하곤 하는데, 이곳처럼 또렷한 형상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조상들의 자취를 따르며, 심지어 그것의 도움을 받으며 걷는 길도 드물지 싶었다.
나는 걷기 편하지 않아도 몹시 즐거웠고, 날이 추워져 버프로 입과 귀를 가려야 했는데도 신이 났다. 이상할 정도로 피곤하지 않아서 계속 걷고 싶어졌다. 이보다 더 즐겁게 걸을 길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성곽을 따라 도는 종주에 돌입해볼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 일종의 ‘러너스 하이’에 빠져든 것이다. 코스를 확인하려고 진지하게 지도를 들여다보기도 했는데, 그게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뛰어들 일도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이날 걸은 것 이상의 거리를 더 걸어야 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이미 다섯 시를 넘겼으니, 완벽한 어둠 속에서 눈덮인 산속을 헤매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당장 하산해야 했다.
결국, 나는 보국문까지 가서 발을 돌렸다. 거기 무슨 의미가 있어서는 아니고 화장실이나 찾아갈까 싶어서 대동문을 향하다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리기에 중도 포기한 것인데, 그게 뜻밖에도 좋은 선택이 되었다. 보국문에서 이어지는 하산길은 정릉길로, 초보에게 추천하는 완만한 계곡길 중에서도 특히 쉬운 길이었다. 내가 가본 계곡길이란 대체로 심한 너덜길인 반면에 정릉길은 뒷산 산책로처럼 완만하고 길이 편안했다. 해가 지자마자 순식간에 칠흑같은 어둠이 몰려와 휴대용 랜턴에 의지해서 코앞까지만 보며 걸어야 했는데도 불편이나 위험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딱 한 번 길이 크게 꺾이는 부분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 방향을 보지 못해서 입안이 마른 적이 있긴 하지만, 그만하면 꽃길이라고 할 만했다(이후에 알게 되었는데 쉽기로 유명한 진달래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보다 편했다).
하산을 마치자 일곱 시가 다 되었다. 블랙홀에서 기어다니는 듯한 상황에서 벗어나 겨우 문명의 불빛에 안도하고 국밥집에 들어가 순대국밥과 막걸리를 시켰을 때는 일곱시 반경이었다. 나는 자신의 게으름과 어리석음과 만용으로 자초한 위험을 되짚고 꿈결속에서나 걸었던 것 같은 눈덮인 성곽길을 곱씹으며, 조만간 다시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을 찾기로 결심했다. 설산을 걸어본 사람은 결국 등산의 매력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는데 그 말이 맞았다. 어디에도 없는 풍경 속에서 어디서도 겪어본 적 없는 체험을 하고 나면 영혼의 일부는 그곳에 두고 오게 되는 것이다.
교훈
겨울산에선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이 등산화와 같은 수준의 상비품이니 미리 준비하고 점검하자.
갑자기 계획을 바꿔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길로 들어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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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랜턴이나 모자용 클립이 달린 랜턴 역시 상비품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 챙겨두자.
목부터 코까지 덮었다가 프라그마틱 슬롯사이트기가 간편한 버프나 넥게이터도 필수 방한용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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