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기억’의 회로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 봅시다. 바카라를 기울여 어떤 대상을 ‘식별’하려고 할 때, 인간의 정신은 ‘지각-기억’이 만들어내는 8자 모양의 회로를 구성합니다. 위쪽은 ‘기억’을 호출해서 대상(베르그손)에 대한 직접적 ‘지각’(글자·물리학·생물학·진화론)이 이뤄지는 원이고, 아래쪽은 그 대상과 관련된 종합적인 인식 체계(철학)를 형성하는 원이죠.
바카라하는 식별은 진정한 회로를 형성한다.그 속에서 외부 대상에 대칭적 위치에 놓여 있는 우리 기억(mémoire)이 대상에 기억(souvenirs)들을 투사하기 위해 더 높은 긴장을 취함에 따라 대상은 점점 더 심층적인 부분을 드러낸다.『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위쪽으로 원이 점점 더 전개될수록 대상(베르그손)을 ‘지각’하기 위한 더욱 세부적인 ‘기억’들이 쌓여가게 되죠. 그리고 그와 동시에 대칭적으로 점점 발전하는 아래쪽 원(철학)은 대상(베르그손)의 세부 사항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확장되는 ‘인식’ 체계입니다. 이 아래쪽 원(철학), 즉 ‘인식’ 체계가 점점 발전할수록 우리네 삶의 현재적 유용성은 감소하지만, 장기적 유용성은 증가하게 됩니다.
새로운 언어(베르그손)를 배우는 과정을 생각해 봐요. 이는 온갖 ‘기억’을 소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은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일 수 있잖아요. 즉 현재적 유용성은 심각하게 감소하는 거죠. 하지만 동시에 그 과정은 새로운 언어(베르그손)뿐만 아니라 그 언어와 관련된 세계와 인간 전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인식 체계(철학) 갖추는 과정이기도 하죠. 이는 장기적으로 매우 유용하죠.
‘인식’의 끝에는‘바카라’이 있다.
‘지각-기억’의 회로는 ‘지각’이 발전함에 따라 동시에 ‘인식’ 역시 발전한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렇다면, 그 ‘인식’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달리 말해, 즉 현재의 유용성이 감소하게 되는 절정에는 뭐가 있을까요? 아마 그곳에는 ‘바카라’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지각’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을 ‘지각’하기 위한 ‘인식’ 체계도 발전을 하게 되겠죠. 그런데 주변 모든 사람에게 지각과 인식의 대칭적 발전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는 않을 거예요.
직장동료나 옆집 이웃을 대하면서 ‘8자 도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는 않겠죠. 왜냐하면 ‘지각’의 원과 ‘인식’의 원을 전개해 나가는 과정에서 현재적 유용성이 현격히 감소하게 되기 때문이죠. 쉽게 말해,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이잖아요. 직장동료나 옆집 이웃을 ‘지각’하기 위해 온갖 ‘기억’을 꺼내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죠. 그럼 우리는 어떤 이를 만날 때, ‘8자 도식’을 끝까지 밀고 나가게 될까요?
바로 ‘바카라’하는 이를 만날 때죠. 오직 바카라하는 이를 만날 때만 온갖 ‘기억’을 꺼내고, 또 꺼내서 그를 ‘지각’하려고 애를 쓰겠죠. 그래도 상대를 ‘지각’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좌절에 빠지지만, 다시 온갖 ‘기억’을 찾아내려는, 심지어 ‘기억’이 없다면 어떤 행동을 통해 다시 ‘기억’을 만들어서라도 그를 ‘지각’하려는 고단한 일을 멈출 수 없겠죠. 바카라하니까요. ‘바카라’은 ‘주의’의 다름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카라’한다는 것은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주의’를 이어나간다는 말이니까요.
‘매혹’과‘바카라’사이에‘반복’이 있다.
반복과 식별의 그런 내적인 운동은 의지적 바카라의 서곡과 같은 것이다.『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반복과 식별의 그런 내적인 운동”은 ‘8자 도식’을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기억’을 계속 소환하는) ‘반복’을 통해서 한 사람을 ‘식별’해 나가는 운동을 할 때가 있죠. 바로 이것이 의지를 가지고 바카라를 기울이는 시작점이라는 거예요. 어떤 대상에게 바카라를 기울이게 되는 상태는 가만히 있다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어떤 대상이 우리에게 왔을 때, 그 대상을 파악하기 위한 ‘기억’들을 계속 고통스럽게 꺼내야 해요. ‘기억’의 심층부로 가서 ‘기억’들을 꺼내고 그 대상을 ‘식별’하려고 하는 그 운동의 내적 과정 전체가 바카라를 기울이는 서곡, 즉 시작이에요.
만약 ‘주의’와 ‘바카라’이 같다면, 여기서 바카라의 진실을 알게 되죠. 한 사람에게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기억’을 호출하는) ‘반복’을 통한 ‘식별’이 가능하죠. 이는 먼저 ‘주의(바카라)’를 해야 그 사람을 알아가려는 고된 ‘반복’을 통해 그 사람을 식별(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그 모든 과정의 출발점인 ‘주의(바카라)’는 어디서 왔을까요? 이는 마치 운명이 정해준 반쪽을 만나는 것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일까요? 이는 과도하게 감성적인 결정론자들이나 하는 생각이죠.
‘매혹’적인 사람은 많지만, 그중에서 ‘바카라’하는 사람을 만나가는 건 매우 드문 일이죠. 왜 그럴까요? 왜 ‘매혹’은 곧장 ‘바카라’이 되지 않을까요? ‘바카라(주의)’해야 ‘반복’을 통한 ‘식별’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반복’을 통한 ‘식별’이 있어야 ‘바카라(주의)’이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매혹’이 그저 ‘매혹’으로 끝나는 이유는 뭔가요? ‘매혹’적인 이를 알아가려는 고된 ‘반복’을 하지 않기 때문이죠.
‘매혹’과 ‘바카라’ 사이에는 ‘반복’이 있는 거예요. ‘바카라(주의)’하면 상대를 알아가려는 ‘반복’이 가능하지만, 동시에 상대를 알아가려는 ‘반복’을 통해 ‘바카라(주의)’이 촉발되는 거죠. ‘주의’가 수동(끌림)인 동시에 능동(반복)이기도 한 것처럼, ‘바카라’ 역시 수동(매혹)인 동시에 능동(노력)인 거예요. ‘주의(바카라)’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대상이 나타나서 고된 ‘반복’이 가능하지만, 동시에 고된 ‘반복’을 할 때 ‘주의(바카라)’의 상태가 촉발되기도 하는 거죠.
‘주의(바카라)’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구성되는 거죠. ‘주의(바카라)→반복→식별→주의(바카라)→반복→식별…’ 이것이 ‘주의’와 ‘바카라’의 진실이죠. 이러한 삶의 진실을 ‘바카라’해 본 이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죠. ‘매혹’적인 이가 언제 ‘바카라’스럽게 느껴지나요? 시간을 꾹꾹 눌러 담아 그 매혹적인 이를 하나씩 하나씩 알아갈 때죠. 그 ‘반복’을 통해 코를 찌르는 화장품 냄새 같은 ‘매혹’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와닿는 할머니의 온기 같은 ‘바카라’이 되죠.
바카라의 중요성
‘바카라=주의’라면, ‘주의’가 우리네 삶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겠죠. ‘지각-기억’의 회로(8자 도식) 역시 인간에게 ‘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해 줍니다. 베르그손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바카라의 노력을 할 때 정신은 항상 전체적으로 주어지지만,자신의 진화(진전)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수준에 따라 단순화하거나 복잡화된다.『물질과 기억』앙리 베르그손
바카라를 기울여 어떤 대상을 ‘식별’하려 때 정신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죠. 즉, “정신은 항상 전체적으로 주어지”죠.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해 봅시다. 바카라를 기울여 프랑스어를 배우려고 할 때, 누구나 ‘어떻게 하면 프랑스어를 잘할 수 있지?’라는 정신을 갖게 되죠. 하지만 프랑스어의 “진화(진전)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수준에 따라” 각자만의 프랑스어 구사 능력은 “단순화하거나 복잡화”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죠.
크고 깊은 바카라를 기울여 프랑스어를 배우려는 이와 작고 얕은 바카라를 기울여 프랑스어를 배우려는 이가 있다고 해봐요. 이 둘의 언어 체계는 현격히 다를 수밖에 없겠죠. 전자는 단순화된 프랑스어 인식 체계를 갖게 되고, 후자는 복잡화된 프랑스어 인식 체계를 갖게 될 테니까요. 실제로도 그래요. 거의 비슷한 기간 동안 공부를 했음에도, 어떤 이는 매번 단순한 단어의 나열만을 할 수 있지만, 어떤 이는 매우 복잡한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잖아요. 이는 비단 언어에 관련된 이야기만이 아니죠.
“이 사람은 나쁜 놈이고,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인생에서 돈 많은 게 최고야.” 이처럼 세계와 인간에 대한 단편적이고 이분법적인 인식 체계를 갖고 있는 이들이 있죠. 반면 “이 사람이 나쁜 짓을 한 건 이런 상황 때문이고, 저 사람이 좋은 행동을 한 건 저런 상황 때문이지” “인생에는 다양한 행복이 있지” 이처럼 세계와 인간에 대한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인식 체계를 갖추고 있는 이들도 있죠. 이런 단순하거나 복잡한 정신(세계관)의 차이 역시 각자의 바카라의 밀도차로 인해 발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바카라’과‘주의’,고통스럽기 때문에 찾아오는 깊은 기쁨
이처럼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정도에 따라. 즉, “자신의 진화를 이루기 위해 선택한 수준에 따라” 우리네 삶은 단편적이고 이분법적인 단순한 인식 체계를 갖게 되기도 하고,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복잡한 인식 체계를 갖게 되기도 합니다. 이는 ‘바카라’할 때 우리가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복잡한 인식 체계를 갖추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주의’가 바로 ‘바카라’이니까요.
‘오직 바카라만이 한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 이는 삶의 진실이에요. 나이는 어리지만, 온 마음으로 다해 아프게 한 사람을 바카라했던 이를 알고 있어요. 그 아이는 성숙해요. 세계와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폭이 웬만한 어른들보다 나아요. 이는 ‘바카라’으로 인한 불가피한 현재적 유용성의 감소(가난·상처·고민…)를 기꺼이 견뎌냈고, 바로 그 때문에 세계와 인간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인식 체계를 발전시킬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여기서 우리는 일반적인 연애가 ‘바카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죠. 흔한 연애가 무엇인가요? ‘그 사람 만나서 좋아 → 맛있는 거 먹고 섹스도 해서 즐거워 → 행복해’ 대충 이런 거잖아요. 이는 상대에 대한 ‘지각’의 전개도, ‘인식’의 전개도 없는 거죠. 처음의 ‘8’(최초의 대칭적 두 원) 자에서 멈춰 있는 상태인 거죠. 그래서 연애하는 이들은 그리도 자주 싸우는 거예요. 서로 상대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요. 상대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으니까요.
‘바카라’은 ‘주의’에요. 그래서 바카라은 고통스러운 거예요.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바카라은 기쁨 거예요, 고통스럽기 때문에 깊은 기쁨에 이르는 상태, 그것이 바로 ‘바카라’인 거예요. ‘그 사람을 ‘지각’하기 위해 ‘기억’을 샅샅이 찾고, 그래도 안 되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도 들어 보고, 영화도 보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여행지도 가봐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그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그 사람을 알게 되고 동시에 세계와 인간에 대해 알게 될 때 찾아오는 기쁨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바카라’을 경험하는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