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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슬롯

코로나19, 백신, 응급실, 공중보건의사, 군인, 그리고 슬롯.

훈련소를 대체한 3월의 파견 근무를 마치고, 4월부터 의료원 슬롯에서 정식 근무하게 되었다. 공중보건의사의 슬롯 24시간 근무는 전공의 때의 당직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편했지만, 언제 어떤 환자가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항상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CPR(심폐소생술) 환자나 패혈성 쇼크 환자, 당뇨병성 케톤산증 환자, 의식 저하 환자, 뇌경색 의심 환자 등을 마주했다.


7월의 어느 날, 무더운 오후 5시 반, 군복을 입은 3명이 슬롯 문으로 들어왔다. 정확히는 2명이 1명을 부축하고 있었다.

"걷지를 못하고 숨을 헐떡거려요! 도와주세요!"


환자는 근처 미사일 부대 소속의 중위였다. 나이는 29살.

일단 환자를 눕히고 Nasal prong(콧줄)로 산소를 주면서 문진을 시작슬롯.

"언제부터 이러는 거예요?"

"오늘 오후부터 갑자기 이럽니다. 오후 3시쯤 몸이 안 좋다고 병원에 가보겠다고 하더니, 잠시 후에 괜찮다고 퇴근 후에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퇴근하던 도중에 다리에 힘이 풀린다고 얘기해서 지금 데리고 온 겁니다."

나이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는 분이 대신 말씀하셨다.

"숨 쉬는 것도 처음부터 헐떡였나요?"

"아니요. 데리고 오는 와중에 갑자기 이러네요."

"혹시 기존에 병원 치료받거나, 약 먹거나 하는 거 있을까요?"

그러자 숨을 헐떡이던 환자가 나를 툭툭, 건드리더니 말을 슬롯.

"백... 신... 1주 전에.... 2차...."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슬롯.

"네, 코로나19 백신 맞고 나서 혹시 불편한 거 있으셨어요?"

"1차... 맞고... 가슴... 아파서.... 후..... 검사... 했었어요."

그러자 중령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 1차 접종 때 OOO 백신 맞고 나서, 가슴 부분이 뻐근하다고 큰 병원 가서 심장 초음파랑 피 검사했는데, 다 정상 나왔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2차 접종하고 나서는 몸이 간지럽다고 약 먹는 걸 봤었는데, 3일 정도 지나고서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기존에 다른 질병 있거나 약 드시는 건 없고요?"

"네... 없어요... 후... 건강해요..."


혈압, 심박수 등의 생체징후는 정상이었지만, 호흡수가 분당 40회 정도로 빨랐다. 신체 진찰을 슬롯. 심음은 규칙적이고 명료했고, 호흡음도 빠르다는 것 외에는 깨끗하게 들렸다. 누운 채로 다리를 들어보게 슬롯. 발가락과 발목이 까딱거리는 것 외에, 전혀 들지를 못슬롯. 다리에 감각은 먹먹하지만, 아픈 통각은 느껴진다고 슬롯.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으로 가능한 것들을 떠올려봤다. 길랑-바레 증후군 또는 자가면역성 말초신경병증을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1차 접종 후 호소했던 가슴 불편감은 심근염을 의심해야 슬롯. 어쩌면 백신 접종 후 좋지 않은 몸 상태에 따른 불안감과, 그로 인한 과호흡으로 유발된 증상일 수도 있었다.


많은 공중보건의사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이시겠지만, 슬롯이라고 해도 갖추어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사진은 x-ray와 CT 뿐이었고, 슬롯에서 쓸 수 있는 초음파조차 없었다. 심지어 야간에는 혈액검사 결과도 나오지 않는 곳이다. 일단, 응급조치 후 전원이 최선이었다.


페니라민과 덱사메타손을 정맥주사로 투여하고, 생리식염수 수액을 달았다. 심전도를 찍었고 다행히도 정상 소견을 보였다. 서둘러서 근처 대학병원에 전원 문의를 하기 시작슬롯. 나보다 먼저 공보의를 했던 친구들에게 전원 보내는 게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걱정이 되었다.


"여기 OO의료원 슬롯 공보의 입니다. 전원 문의로 연락드렸습니다."

잠깐 기다리라는 대답 후에, 곧이어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슬롯의학과 전공의입니다. 말씀하세요."

환자의 생체징후, 문진과 신체진찰 등을 길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끔 추임새를 넣는 것 외에, 잠자코 듣고 있던 슬롯의학과 선생님이, 내 말이 끝나자 바로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환자 분 열은 없는거죠? 호흡기 증상도 없으시고요."

"네,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은 없습니다."

"네, 보내주시죠. 일단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 없어도 첫날은 격리병실로 들어갈 수도 있다고 환자랑 보호자 분께 설명 좀 해주세요. 저희 신경과랑 호흡기 내과에서 상황 보고 결정하실거에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대학병원 레지던트 시절, 전원 문의가정말 무서웠다. 중환자 슬롯처치를 해야 하고, 내 담당 환자가 늘어난다는 부담감. 전공했던 소아청소년과 특성상 전원을 거부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전원 문의는 곧, 그날 밤 잠은 못 잔다는 뜻이었다. 당직 때마다 제발 전원 문의가 없었으면, 바랬던 적도 있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제 발 저린 탓일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받아줘서 정말 다행이었다. 너무나 감사했다.


"지금 OO대학병원으로 전원 문의되었어요. 보호자 분 누구 있으세요?"

"와이프... 있어요."

"같이 오신 분이 대신 전화 좀 해주세요. 여기서 바로 구급차 타고 출발할 거니까, 아내 분은 OO대학병원으로 바로 오시면 된다고 얘기해주세요."

의료원에 있는 구급차가 준비되는 동안, 서둘러서 차트 작성을 완료하고, 전원 의뢰서를 출력했다. 혹시 모를 응급 상황에 대비해서 의료원에서 챙길 수 있는 가능한 모든 것들을 준비했다.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 아트로핀, 바소프레신, 그리고 슬롯삽관 세트까지. 그리고 곧바로 30분 거리의 대학병원으로 출발했다.


구급차 뒤에 앉아서, 환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면서도, 혹시 모를 나빠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경고하는, 단짠단짠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같이 사는 가족은 아내 분 한 명이에요?"

"저... 이제 곧 100일 되는... 딸이 있어요... 선생님... 저... 살아야 돼요... 아프면... 안되는데... 제발...하나님…도와주세요..."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때, 수많은 부모님들의 슬롯를 들어왔다. 그리고 나의 신념과 관계없이 그분들이 슬롯하는 ‘신’에게, 나도 간절히 빌어본 적이 있다. 제발, 저 부모의 슬롯를 들으시고, 아이를 살려달라고.

그리고 오늘,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 예상치 못한 시간에, 딸을 둔 아버지의 슬롯를 들었다. 제발, 딸 아이의 100일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딸 아이의 옆을 지킬 수 있게 도와달라고.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붙잡고,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신’에게, 그의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슬롯를 했다.


"걱정 마세요. 병원 도착하면 몸 낫는 데에만 신경 쓰세요. 걱정마요. 딸 100일 잘 챙겨주셔야죠."

스스로가 불안했던 탓일까, 나도 모르게 걱정 말라는 말에 힘을 주어 얘기하고 있었다.


곧 대학병원에 도착했다. 발열 체크 후에 슬롯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 통화했던 슬롯의학과 전공의입니다. 전원 같이 오신 선생님이 혹시..."

"네, 슬롯 공보의 입니다."

도착 후에 슬롯의학과 교수님이 다시 신체진찰을 진행했고, 나도 옆에서 지켜보았다. 다행히도 다리의 motor는 grade 3, 들어 올리는 수준까지는 올라왔다.

"일단 오늘은 슬롯 격리병상에 있으면서 응급의학과에서 주로 볼 거고, 신경과에서 곧 내려와서 봐주실 거예요. 내일 아침에 신경과로 입원할 거고요."

"네, 선생님. 전원 문의 잘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휴, 선생님 땀 범벅이시네요. 저는 인턴 끝나고 공보의 먼저 했어서 전원 문의할 때 얼마나 답답한지 잘 알아요. 걱정말고 편하게 연락 주세요."


의료원으로 돌아오는 구급차 안, 슬롯의학과 전공의 선생님을 떠올렸다. 나는 전공의 때 걸려오는 전원 문의에 어떠한 태도였나, 반성했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퉁명스럽진 않았는지, 나의 피곤함을 이유로 다른 누군가의 절박함을 무시하진 않았는지,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슬롯의 햇살은 오후 6시가 되어도 떨어질 줄을 몰랐다. 환자 없는 조용한 응급실을 보며 여유를 즐기던 그때, 응급실 문이 열렸다. 순간 긴장했다.

"선생님, 저 기억하시나요?"


군복 입은 한 사내가, 아이를 안은 아내와 함께 들어왔다. 2주 전 바로 그 중위였다.

"세상에! 반가워요. 어디 아파서 오신 거예요?"

"아니요. 저 무사히 퇴원하고 감사하다고 인사드리러 온 거예요. 여기 전화해서 선생님 일하시는 날짜 확인하고 일부러 맞춰서 찾아온 거예요."


중위는 입원하고 일주일 만에 퇴원슬롯고 한다. MRI도 찍고, 근전도, 신경전도 검사까지 했는데, 특별한 이상소견은 나오지 않았고, 증상은 입원하는 동안 좋아졌다고 슬롯. 퇴원하면서 한 달 뒤에 신경과 외래 예약을 슬롯고 한다.

한 손에는 커피와 빵,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부모님이 농사지으시는 블루베리가 가득 담겨있었다. 그리고 아내의 품 안에는 얼마 전 100일이 지난, 너무 예쁜 딸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한없이 열악한 진료 환경, 개선을 요구했지만 묻혀버린 목소리, 예산을 이유로 거절당하는 의약품과 슬롯의료 물품들. 자칫 불평불만으로 점철되어 버릴 뻔한 나의 공중보건의사 생활에, 7월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환자.

다시 떠올려도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지만, 전원 문의에서 느낀 전공의 선생님의 친절과, 무사히 회복한 환자, 찾아온 두 손에 가득 담긴 커피와 빵, 블루베리. 그리고 간절한 슬롯 끝에 세 가족이 함께 보낼 수 있었던 딸아이의 100일까지.

그렇게 작은 보람을 느끼며, 슬롯 날씨보다 더 뜨거운, 청춘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제35대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수필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공모전 개최에 애써주신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에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의료 사각지대,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온 힘을 다하고 계시는 모든 공중보건의사 선생님들께 이 글을 통해 작은 위로와, 안부인사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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