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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55호실(22)

기억 11 ‘안다’

“어떻게 밍은 소식도 없이 갔어?”

작업실 근처 오래된 빌라 한 귀퉁이에서 금빛 개나리가 흘러내리던 이천십이 년의 봄날이었다. 유리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는 노랗고 환한 빛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오늘, 그 환한 개나리 배경에 수가 서 있었다.


“이 동네는 언덕도 없는데 개나리가 피었네.”

먼저 와 있던 젠이 수를 맞으며 느리게 얘기했다. 검고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바카라 사이트 허수아비 느낌이었다. 가벼운 겉옷은 소파에 던져져 있었는데 역시 검은색이었다. 바카라 사이트 수보다 훨씬 일찍 와서 커피를 한 잔 마시던 중이었다.


“자넨 알고 있었던 거야?”

수답지 않게 질문이 바빴다.

일단 앉으세요. 젠이 의자를 내밀자 바카라 사이트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뜨거운 것밖엔 없지만. 아직 봄이니까.”

그때서야 바카라 사이트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고는 멋쩍은 듯 씨익 웃었다. 의자에 앉은 수의 이마에 약간의 땀이 번져 있었다. 뛰어오기라도 한 것일까.

바카라 사이트 느리게 커피를 만들어 수의 앞에 놓았다. 믹스커피 특유의 달콤함이 실내를 채웠다. 그 냄새가 마치 개나리꽃인 것 같아 나는 믹스 커피의 노란색 포장을 유심히 내려다보았다.

커피를 받아 든 수나 자신의 빈 잔을 바라보는 젠이나 별 말이 없었다. 분명히 밍과 관련된 어떤 이야기가 있는 모양인데 둘 다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밍은 지난겨울부터 발걸음이 뜸했고 몇 주 전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저는 수 오빠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요.”

한참 만에 입을 먼저 연 것은 젠이었고 바카라 사이트 대답하지 않았다.


“밍이 떠난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요. 유학 간 것은 맞으니까요.”

젠은 일어나서 자신의 컵을 싱크대에 넣었다. 수도꼭지를 열자높은 수압의 물이 밖으로 튀어밍의 티셔츠와 바지를 가볍게 적셨다. 아무렇지 않게 툭툭 옷을 털고 밍은 손을 씻었다. 비누거품을 많이 만들어 천천히 손을 씻는 젠을 수가 비스듬한 자세로 바라봤다. 바카라 사이트 커피를 마시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러니까 어디로, 누구와 갔느냐지.”

바카라 사이트 질문은 약간의 짜증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잔잔한 어조는 그걸 드러내지 않았다.

싱크대에서 돌아와 수 앞에 선 바카라 사이트 물끄러미 수를 내려다보더니 맞은편에 앉았다. 수와 젠 사이에 알 수 없는 긴장의 선이 팽팽하게 당겨진 것 같았다. 그러나 둘 다 느리고 잔잔한 말씨를 가진 사람들이라 적어도 그 선을 계속 당기고 있진 않을 것이란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은 길었다. 수의 얼굴에 다시 편안함이 돌아왔을 때 난 수의 마음이 정돈되었음을 알아차렸다. 반면에 바카라 사이트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수와 눈길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영국, 딸과 갔어요. 수 오빠는 무슨 생각을 하신 거죠? 전 그게 더 궁금한데.”

젠의 대답을 들은 수의 표정에 안도감이 번졌다. 정말 바카라 사이트 무슨 상상을 한 것일까.


바카라 사이트 눈을 감고 양손을 깍지 껴 뒷머리에 대곤 고개를 숙였다. 수를 가만히 살피던 젠도 고개를 돌려 개나리빛이 들어오는 출입문을 바라봤다.


“밍이 출국장에서 전화를 했더라고.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나간다고 하기에 내가 얼마나 불안했겠어? 그런데 자넨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 거지. 그 내용이 궁금했고.”

수의 대답에 젠이 빙긋 웃었다. 입만 약간 움직인 그 미소를 바카라 사이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수 오빠가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지 저도 궁금해요. 밍이 워낙 말을 아끼는 사람이라 제가 가깝다고는 해도 다 털어놓진 않은 것 같고. 밍에게 어떤 남자가 있었단 얘긴 들었어요. 정리를 했는지 말았는지는 모르겠고 벌써 몇 년 됐죠?”

바카라 사이트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투로 물었다. 마치 궁금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런데 이번 유학이 그 남자가 관련되지 않은 건 확실해요. 딸이 유학하는 아트스쿨에 같이 간 것이고, 아마 밍은 일 년, 길어야 이년 후면 들어온다고 했어요. 딸은 박사 과정 마치고 올 것 같고.”

비로소 수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그리고는 이미 식어버려서 크리미 해진 커피를 마시려고 손을 댔다. 그러자 젠이 일어서서 수의 커피잔을 가져갔고 곧 새로운 커피를 만들어 왔다. 다시 달콤한 향이 내게도 전해졌다. 바카라 사이트 고맙다며 양손으로 커피잔을 감싸고는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지. 그래야 밍이지.”

만족한 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리는 바카라 사이트 시선이 부드러웠다.


“수 오빠 아니에요?”

젠의 질문은 수를 소리 내어 웃게 했다. 여전히 커피를 마시며 바카라 사이트 시원하게 웃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나도 소문은 들었는데 내가 아니니까 별 신경 안 썼지. 그냥 밍이 걱정되었을 뿐이었고.”


“그럼 도대체 누구죠? 그리고 그 관계는 끝난 건가요? 그리고 왜 느닷없이 영국이죠? 시댁이 있는 캐나다도 아니고, 남편이 우울증 치료차 가끔 캐나다에 간다는 얘긴 들었거든요.”

이번엔 젠의 질문이 연달았다. 여전히 느린 속도로 물었지만 그녀가 밍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젠이 밍과 친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얼마나 서로를 아는가에 대한 것은 별개였다.

질문을 무방비로 받던 바카라 사이트 손을 들어 하나씩 이야기하자며 젠을 진정시켰다. 다시 젠과 수 사이에 침묵이 자리하고 출입문을 통해 들어오는 환한 노란빛은 여전했다. 봄이 나 여기 있어, 이렇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젠,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타인에 대해서. 아니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수의 부드럽고 친절한 질문은 젠에게 닿지 않은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카라 사이트 다시 환하게 들어오는 노란빛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누가 봐도 나는 밍과 친밀했지. 학부 때부터 말 못 할 고민을 나누기도 하고 자네가 말한 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어.”

수의 말에 바카라 사이트 지친듯하나 의혹이 담긴 눈으로 수를 바라봤다.


“그런데 막상 이번엔 떠난다는 말 한마디였잖아. 어떤 설명도 없었지. 자기가 그렇게 떠나면 내가 고민에 빠질 거란 것도 알았을 거야. 그런데도 아무 말이 없었던 것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런데 자네에겐 행선지와 동행자를 알렸으니 결국 내게도 알려준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래서 섭섭하진 않아.”

수의 말소리는 내 초침 소리에도 묻힐 듯 작았다. 그러나 바카라 사이트 다 알아듣는지 다시 묻는 얼굴이 아니었다. 아쉽긴 하나 못내 수긍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수 오빠의 걱정이란 게 밍이 혹시 그 남자와 도망이라도 간 게 아닌가 하는 거였네요?”

젠의 질문에 바카라 사이트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바카라 사이트 다시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를 지켜봤다. 유리문 밖으로 떨어지던 햇살이 슬금슬금 실내로 발을 들이고 있었다.


“밍이 혼자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영영 안 오면,하는 걱정이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밍이 자살이라도 할까 봐? 밍을 몰라도 너무 모르네요. 젠의 표정은 그랬다.


“그럴 이유가 있었을까요? 밍에게. 난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부분이라.”

바카라 사이트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정말 밍과 친했던 게 맞았나 하는 자괴감이었다.


“바카라 사이트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

예상치 않았던 바카라 사이트 질문은 여유로운 젠도 당황케 했다.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 젠이 나를 아는 건 사실이잖아. 그러나 모르는 게 더 많은 것도 사실이지. 우리가 아는 건 어느 한 부분이고 그 부분은 각각 진심이야. 내가 밍을 아는 것과 젠이 밍을 아는 것은 둘 다 확실해. 그리고 모르는 것도 확실해.”


“궤변 같기는 하지만 맞는 얘기네요. 그런데 그 많은 시간을 공유한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그렇게밖에는 알 수 없는 걸까요? 그래 많이 양보해서 알 바카라 사이트 없다고 해요. 그렇다고 이야기도 할 수 없는 걸까요? 내면의 고민이나 올바름 혹은 잘못에 대해서도?”

바카라 사이트 웃었다. 소리 없이, 힘도 없이.


“누구도 타인을 다 이해할 바카라 사이트 없어. 그건 아주 가까운 혈족도 마찬가지라는 게 내 생각이야. 물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희생하고 뭐든 해 줄 바카라 사이트 있지만 안다는 것은 다른 영역이잖아.”

바카라 사이트 부스스 일어섰다.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 문에 몸을 기대고는 바깥을 한참 내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분명히 밖의 개나리꽃무리가 들어와 있을 것이란 것을 난 알았다. 노란 별 같은 그 꽃이 한 무더기의 노란빛으로 보이는 것은 꽃이 별 모양이 아니어서가 아니고 멀어서일 것이다. 멀리 있는 것은 자세히 볼 수 없다. 다가가지 않는 한. 그러나 다가갈 수 없는 거리도 있다. 나처럼 붙박이가 운명인 존재들.


“그럼 우리가 누구를 안다는 것은, 친하다는 것은 다 어불성설이고 전문용어로 개소리란 얘기네요.”

젠의 말을 들은 바카라 사이트 잠시 멈칫하더니 유쾌하게 웃었다. 젠도 따라 웃었다.


“젠, 꼭 그렇게 얘기하지는 말자. 너무 서글퍼지잖아. 인간 존재에 대해서.”


“됐고, 하여간 수 오빠와 밍이 소문 같은 사이가 아니라면 그만이에요. 그걸 확인하고 싶었고 소문이 사실일까 봐 그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밍은 왜 지금 떠났을까요? 다 큰 딸과 동행할 필요도 없는 이 시점에, 아픈 남편을 놔두고.”

여전히 젠은 느리게 궁금했다. 그러나 바카라 사이트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바카라 사이트 아무런 대답도 가지고 있지 않는지도 몰랐다. 둘 사이에 침묵이 고였고 적막해진 작업실에 음악이 흘렀다. 고물이 된 탓에 한 채널 밖에 잡히지 않는 라디오를 젠이 켠 것이다. 송창식이 부르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었다.


“고전이 나오고 있군, 클래식.”

수가 허밍으로 따라 불렀다. 젠도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턱을 괴고 들었다


“사람이 누구를 안다는 것은 뭘까요? 수 오빠 생각에 그건 불가능이라는 거잖아요. 그런가? 하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젠의 표정에는 잠이 잔뜩 들어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젠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 누구를 함부로 판단하지만 않아도 실바카라 사이트 없지 않을까 싶은 거지. 밍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수의 말소리는 자장가처럼 낮게 떨어졌고 바카라 사이트 감기는 눈을 못 견디고 팔짱을 낀 채 테이블에 엎드렸다. 두 사람의 공간만큼이나 아득한 라디오 소리가 어느새 바뀐 음악을 내보냈다.


*<......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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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희은 노래 '한계령'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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