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낙엽이 하나씩 들어왔다. 바람이 불면 서너 개가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했다. 낙엽은 물기가 전혀 없어서 얇은 과자처럼 금방 바스러질 것 같았다. 작업실의 사람들은 낙엽을 집어 들어서 보거나 모아서 쓰레기통에 넣기도 했다. 하여튼 작업실 바닥에 한두 개의 낙엽이 들어와 있곤 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봄에 문틈으로 노란 씀바귀꽃이 고개를 들이밀곤 했던 기억이 났다. 그 씀바귀는 지금 낙엽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아예 누가 뽑아버렸을까.
오전의 짧은 빛이 스치고 지나간 문턱에 누군가의 발걸음이 멈췄다. 내가 보아왔던 작업실의 누구도 아니었다. 작업실에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대개 오후 2시 이후부터나 모였고 그것도 수요일과 토요일 뿐이었다. 그러니 오늘 같은 화요일에 오는 사람은 대개 율이거나 율의 손님이었다. 그러나 손님도 주인이 있어야 들어올 텐데, 아직 그 누구도 오지 않았는데.
“제가 좀 일찍 나섰어야 했는데. 기다리게 했네요.”
수의 목소리였다. 조금 후에 놀랍게도 수와 토토사이트추천가 들어섰다.
토토사이트추천 서늘해진 날씨 탓인지, 아니면 강원도의 추위를 몰고 왔는지 갈색 면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었다. 수는 목수와 초면인 까닭이겠지만 다소 경직되어 보였다. 반면에 토토사이트추천 아주 편안했다. 목수도 수는 초면일 텐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수는 목수에게 따뜻한 물을 주었다. 목수가 그렇게 원했기 때문에. 수도 자신의 컵에 물을 따라서 들고 목수와 마주 섰다. 토토사이트추천 작업실 공간에 걸린 그림들을 훑고 있었다. 출입문 벽을 제외한 세 군데 벽에는 다섯 명의 그림들이 끼리끼리 모여 있었다. 크기가 문짝만이나 한 큰 그림들은 사무실 한쪽에 세워져 있기도 했다. 어떤 것은 전시회가 끝난 후 포장한 뽁뽁이를 뜯지 않은 채 놓여 있기도 했다. 수는 엉거주춤 서 있는 목수를 권해서 앉혔다.
“은혜는 아파서 못 왔습니다. 꼭 만나 뵙고 싶어 했는데.”
“은혜라면?”
“제 조카입니다. 여동생의 딸이죠.”
나는 궁금했다. 은혜가 아파서 못 왔다면 다음에 같이 오면 될 일을 왜 토토사이트추천 혼자 온 것일까. 그리고 은혜는 어디가 얼마나 아픈 것일까.
토토사이트추천의 말에 수는 아, 예. 그렇군요.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수에게서 은혜나 토토사이트추천 혹은 토토사이트추천의 여동생과의 연관관계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럼 선생님은 오늘 일부러 여길 오신 건가요? 율 선생에게서 미리 연락은 받았지만.”
토토사이트추천 목소리는 작고 낮았으며 침착해서 토닥이는 느낌이었다.
“예, 사실 은혜를 데리고 오기는 부담이 돼서요. 나중에 그 애가 오더라도 제가 먼저 만나서 설명을 해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토사이트추천 한쪽에 세워둔 이젤 위에서 수의 그림을 발견하고는 잠시 물을 마시는데 집중했다. 수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제게 여동생이 있어요. 아니 있었죠. 은혜 엄마인데 십여 년 전에 실종이라고 할까 하여튼 사라졌어요. 선생님이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첫 전시회에서 선생님 토토사이트추천을 사고 싶어 했지요. 그때 안 파신다고 해서 사진만 하나 찍어간 일이 있었습니다.”
토토사이트추천 얼굴에 뭔가를 기억해 낸 듯한 빛이 스쳤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수도 전혀 모른다고는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이천팔 년도에 했던 전시회가 일곱 번째였던 것 같은데 그때 장미꽃다발을 보내주신 분인가요? 제가 꽃다발만 받은 기억이 나네요. 누구신지는 확인할 수 없었고요.”
토토사이트추천 얼굴에서 확신에 찬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게 기쁨인 것 같지는 않았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은 데서 오는 잠깐의 각성 같은 것이었을까.
“예, 이름이 미선인데 우리식으로 부모님이 붙이신 것이고 몽골어로는 미셀에 가깝다고 했어요.”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기는 수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토토사이트추천 설명을 이어갔다.
“미선이는 아기 때 우리 집에 입양된 몽골인 부부의 딸이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아마 불법체류자로 우리 농장에서 일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성실한 부부였는데 어느 날 아이만 남기고 떠났다고 하더라고요. 몽골어와 서툰 한글로 된 쪽지가 있었는데 아이의 생년월일과 이름이었다고 해요. 미선이라고 적혀 있어서 이름을 그렇게 정했는데 나중에 제가 몽골어를 수소문해서 알아본 바로는 미셸이라더군요. 웃음, 미소 그런 뜻이라고. 하여튼 어머니는 아이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제 동생으로 입적하고 키우셨어요. 제 밑으로 남동생만 셋이었는데 누구도 눈치채지 않게 어머니는 철저히 우리들의 여동생으로 키우셨어요. 당연히 미선이도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의심하지 않았다고 믿었죠. 우리는.”
목수의 이야기를 듣던 수가 일어나 차를 한 잔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얼마 전에 젠이 가져다 놓은 국화차가 있는데 향이 너무 좋다고. 토토사이트추천 감사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가 국화차를 준비하러 사무실로 들어가고 나자 토토사이트추천가 이젤에 세워진 수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얼마 전에 그리기 시작한 것으로 거칠고 무한한 것 같은 화면에 서너 줄 가로선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선은 일정하지 않게 너울졌고 굵기도, 색깔도 조금씩 달랐다. 하나의 선 안에서. 마치 끝없는 벌판에 기둥 없이 둘러쳐진 털실 같기도 하고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한 줄로 차곡차곡 쌓인 후 치즈처럼 길게 늘인 것 같기도 했다. 하늘과 땅의 구별이 모호했으나 알아차릴 수는 있는 모노톤이었다. 나는 수의 그림을 볼 때마다 저 위에 새파란 하늘을 얹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기도 했다.
“미선이는 조용하고 평범하게 자랐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근처 우체국에서 취업도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우체국에 사표를 내고 여행을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모두 의아했죠. 단순히 여행을 위해 직장을 포기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또 열심히 다녔거든요. 그때 알아차려야 했는데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중국 쪽으로 여행 간다는 얘기만 들었고 거의 한 달 만에 돌아왔는데 동생이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수는 말없이 경청했고 토토사이트추천 쉬엄쉬엄 국화차를 마셔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목수가 말하는 것이 그다지 수월해 보이지 않았다. 가슴속에서 뭔가 무겁고 힘든 것을 끄집어내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미선이가 돌아와 집에 칩거하는 동안 어머니는 동생의 임신을 눈치채셨어요. 심하게 입덧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동생을 데리고 원주로 나가셨어요. 아무런 얘기도 없으셔서 저는 단지 병원에 가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돌아오신 어머니가 우셨습니다. ‘아무것도 못 먹던 애가 양고기를 맛나게 먹더라. 태를 묻은 땅은 잊지 못하는 법이지.’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어머니는 알고 계셨고 그 안쓰러움에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던 것이죠. 그때 태어난 애가 은혜입니다.”
“아,......”
토토사이트추천 탄식 같은 짧은소리를 냈다.
“미선이는 미혼모 상태로 은혜를 키워냈습니다. 모녀 사이에 벽은 없었어요. 은혜는 가끔씩 내게 짓궂게 말하곤 했지요. 삼촌, 우리 아빠는 모래바람이래요. 저는 둘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런 점을 빼곤 모든 게 정상이었습니다. 미선이가 다시 몽골에 가기 전 까지는.”
토토사이트추천의 말에 수는 국화차를 내려놓고 정중히 물었다.
“그곳에서 안 돌아오셨군요.”
수의 말에 토토사이트추천 잠깐 멈췄다.이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토토사이트추천의 말이 이어졌다.
“맞아요. 은혜가 사춘기 무렵 제 엄마와 함께 몽골로 단체 여행을 갔다 왔어요. 저는 무심하게 넘겼지요. 그런데 아마 은혜에게 몽골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듬해 미선이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찾지 말라는 쪽지만 남기고.”
토토사이트추천 미간을 두 손으로 누른 후 관자놀이로 이동해서 몇 번 문질렀다.
은혜와 그 엄마인 미선의 이야기가 수의 무엇을 건드렸을까. 토토사이트추천 왜 이런 얘기를 수에게 하는가. 단지 은혜는 수를 만나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는데.
수의 행동을 무심히 보던 토토사이트추천 일어서려고 했다.
“저도......”
수의 말이 목수를 주저앉혔다. 아무런 기대감도 없는 눈길로 토토사이트추천 미안하다고 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선생님을 피곤하게 한 것 같다고.
“저도 같은 경험이 있는 것 같네요. 제가 사막을 그리는 이유 말입니다.”
갑자기 출입문이 흔들렸다. 가을바람이기엔 다소 세찬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리까지도 거칠었다. 낙엽이 다 한 곳으로 몰려 회오리처럼 몰려다니겠구나 싶었다.
토토사이트추천 자세를 바로 잡고 앉아 수를 바라보았다.
“제가 성지순례 차 이스라엘을 갔을 때였어요. 아, 부끄럽지만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그때 저를 사로잡았던 풍경이 사막이었어요. 광야라고도 하는 황무지 말이죠. 왜 그랬는지는 몰라요. 하여튼 잊을 수 없는 강력한 끌림이었어요. 그 이후로 저는 사막지방을 찾아 여행을 다녔습니다. 몽골의 고비 사막도 그때 다녀왔지요. 섣불리 어떤 판단을 할 토토사이트추천 없지만 동생분이 제 그림에서 그걸 본 게 아닐까요? 제 처음 그림이 가장 사막다웠으니까요.”
수의 차분한 설명과는 다르게 토토사이트추천의 표정은 의아함 그 자체였다. 하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타인의 언어를, 특히 그의 정신세계를 그려내는 몇 문장을.
“물론 저는 그 느낌을 토토사이트추천으로 그렸을 뿐 계속해서 사막을 찾아다니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막을 여행할 때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강한 유혹이 있었죠. 그러나 그 생각은 두려움을 동반했고 저는 일행과 함께 반드시 돌아왔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 있는 것은 그 생각을 버리고 편안한 일상을 선택한 결과겠지요. 사실 토토사이트추천으로도 그리지 말아야 하는데 제 비겁함과 소심함을 토토사이트추천 뒤로 감춰버린 것 같습니다.”
수는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일어서서 토토사이트추천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죄송합니다.
엉겁결에 앉아서 수의 인사를 받은 토토사이트추천 어쩔 줄 몰라하며 수를 주저앉히려 했다.
“아니, 죄송하다니요......”
“동생분이 처음 전시회에 왔던 날, 제 토토사이트추천을 지목하던 날. 제가 이야기를 했었어야 했습니다. 마지막 장미 꽃다발을 보냈을 때 일부러라도 만났어야 했어요. 이끌린다고 가는 것은 아니라고. 여행과 삶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그냥 나처럼 차라리 토토사이트추천을 그리라고 말이죠.”
수는 거의 울 것 같았다. 목이 조이는 것 같으면서 소리가 잦아들었다. 도리어 목수가 차분해졌다. 토토사이트추천 한참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의 소리도 마찬가지로 작았다.
“어쩌면 미선이의 선택이 그 아이에겐 최선이었을 수도 있어요. 걔는 토토사이트추천만으로 살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름 살기 위한 선택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제 걱정은 은혜였어요. 은혜까지 잃고 싶지 않아서 꼭꼭 숨기고 있던 미선이를 선생님 앞에 풀어놓았습니다. 혹시 은혜를 만나게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냥 사막을 그렸을 뿐이라고, 나무나 호수가 있는 풍경처럼 그렇게 그렸을 뿐이라고, 그냥 토토사이트추천이라고 가볍게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토토사이트추천 나가고 수는 배웅하는 자세로 가만히 서 있었다. 수의 뒷모습이 어찌나 쓸쓸하고 추워 보이던지 솜이불을 덮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