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시골에 들어온 것 같은데 벌써 아홉 번째 겨울을 맞았다. 처음 베란다 정원에서 시작했던 우리의 취미는 마당이 있는 집을 가져야겠다는 꿈으로 이어졌다. 타샤 튜더와 파라오 슬롯의 멋진 정원들이 너무 부러웠다. 지금 사는 이곳에 자리 잡기 전까지 주말이나 휴일이면 여기저기 터를 보며 돌아다녔다.
아름다운 정원을 책으로 접하다가 성에 차지 않아 비원, 소쇄원, 아침고요수목원은 물론이고 일본 교토의 사찰 정원들, 파라오 슬롯의 시싱허스트 가든, 히드코트 매너 가든 등에도 가보았다.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정원은 이면에 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녹아들었지만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온통 정신이 팔렸었다. 우리의 소양과 능력 그리고 재정은 뒷전이고 꿈만 거창했다. 어쨌든 꿈을 꾸는 것은 자유니까. 하루는 파라오 슬롯의 정원 사진을 보고 있던 내가 아내에게 말했었다.
“대문과 집이 멀었으면 좋겠다. 울창한 숲을 한참 지나 도착하는 그런 집 말이야.”
아내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꿈도 차~암 야무지셔. 당신이 파라오 슬롯 귀족의 숨겨둔 아들로 밝혀져서 정원을 상속받는다면 모를까.”
허황한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도심에서라면 우리의 능력으론 엄두도 내지 못했을 제법 너른 땅을 시골에 얻을 수 있었다. 파라오 슬롯 설계를 위해 커다란 스케치북에 평면도를 여러 장 그렸다. 식물원 등에서 보고 찜해 두었던 교목과 관목 그리고 초화류가 너무 많아 선택을 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조경 전문가에 맡기지 않고 설계부터 나무 심기, 연못 만들기까지 직접 했다. 기계나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아내와 함께 했다. 그 과정에 돈을 준다 해도 아마 포기했을 만한 일들도 있었고 과욕에 몸을 다치기도 했다. 파라오 슬롯 일이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제 파라오 슬롯의 노동은 어느덧 일상이 되었다.
시골 파라오 슬롯을 선택하는 대신 우리는 아파트의 편안함과 환금성은 포기해야 했다. 문화적 혜택의 일부와 간편한 음식 배달 등등 도심의 소소한 생활의 편의성도 잃어야 했다. 대신 맑은 공기,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 파라오 슬롯이 주는 휴식, 기쁨, 그리고 평온함과 행복감을 얻었다. 물론 파라오 슬롯을 가꾼다는 것만으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자의 고통과 번민 같은 숙명의 짐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덜어지고 더해지는 것들이 있을 뿐이다.
파라오 슬롯을 가꾼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지식과 실력이 한참 모자란다. 화초를 잘 다루는 ‘그린 썸’(green thumb)도 아니다. 나무가 전하는 신호를 제때 알아차리지도 못해서 종종 벌어지는 실패를 부실한 토양 탓으로 돌리는 나는 아직 초보 파라오 슬롯사다.
한겨울을 맞은 파라오 슬롯의 나무들은 이제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백합, 플록스, 작약, 제비붓꽃, 백일홍, 국화 등 초화류들의 마른 줄기를 제거하고 나니 풍성하던 파라오 슬롯이 어느새 텅 비어버렸다. 언제 그렇게 꽉 찼었나 싶도록.
겨울은 파라오 슬롯에서 한 해 왕성히 활동하며 기쁨을 주던 생명들의 남은 허물들을 추스르는 시기이다. 마른 줄기와 잎들을 제거하고 떨어진 낙엽들을 모아서 정리해야 한다. 그대로 방치하면 세균과 해충들이 번성하여 내년에 파라오 슬롯수들이 각종 질병에 노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파라오 슬롯수들에게도 옷을 입혀야 한다. 파초, 돈나무, 후박나무, 비파 등 추위에 약한 나무들 위주로 감싸주고 덮어준다. 요즘 기후변화로 어느 해는 한파가 몰아치고 또 어느 해는 봄날처럼 따뜻하기도 하여 섣부르게 예보만 믿고 대비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갑자기 닥친 한파에 나무들도 단단히 몸살을 앓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지난 계절 촘촘한 잎들 때문에 속이 잘 보이지 않던 교목과 관목들의 가지치기를 해줘야 한다. 웃자라거나 역으로 자란 가지, 서로 얽힌 가지를 제거해야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몇 해 이를 게을리하면 나중에 너무 커져 버려 손 쓰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파라오 슬롯에 거름을 넣어줘야 한다. 소진해 버린 에너지를 보충하고 다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끼니를 챙겨줘서 내년을 대비해야 한다. 거름은 한 해 묵힌 것들을 주로 쓴다. 올해 산 거름을 바로 넣으면 아직 삭지 않은 우분(牛糞)의 날카로운 냄새로 괴롭기 때문이다.
겨울 파라오 슬롯의 한가운데 가만히 섰다. 차가운 공기에 시려진 손끝으로 컵의 따스한 온기가 전해진다. 갈색으로 물든 파라오 슬롯에서 마시는 커피 향은 더욱 진하다. 공연은 끝나고 무대의 불은 꺼졌다. 아름답고 정겨운 배우들은 화장을 지우고 사라졌다. 텅 빈 객석에서 환호와 탄식, 웃음과 눈물, 그리고 감동의 잔향을 느낀다. 화려한 무대는 배우들의 몫이다. 나는 뒤에서 돕고 공연을 즐길 뿐. 그들 스스로 강렬한 태양 조명 아래 눈부신 자태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자연과의 약속된 일정에 맞춰 내년에도 그들은 돌아올 것이다. 아... 벌써 마음이 설렌다.
남부지방에 위치한 이곳은 대개는 겨울이라도 기온이 영도 이하로는 잘 내려가지 않고 눈을 보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사 온 첫해에는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었다. 그해 겨울 아침이었다. 새하얗게 덮인 파라오 슬롯을 한참 바라보다 시간에 쫓겨 출근을 서두르는 내게 아내는 걱정스레 말했다.
“길이 미끄러우니 천천히 조심해서 운전하셔”
마을 입구에서 집까지 이르는 진입로는 콘크리트로 된 농로다. 지금은 시에서 폭을 넓혔지만 당시는 좁은 데다 양옆으로는 경사가 심해 처음 오는 사람들은 자동차가 자칫 떨어질까 봐 겁이 난다고 했다. 익숙해진 나도 그날 아침 눈 쌓인 그 길을 지날 때는 미끄러질까 봐 긴장이 됐다.
퇴근길, 캄캄해진 마을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헤드라이트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올라가려는데 집으로 향하는 좁은 농로길에 쌓여 있어야 할 눈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집에 돌아와 씻고 아내에게 말했다.
“누군지 몰라도 우리 집으로 오는 농로길 잔설을 치웠더라고.”
그러자 아내가 힘든 표정으로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대답했다.
“내가 치웠어. 길이 미끄러워서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진입로가 너무 길어서 다 치우는데 두 시간 넘게 걸리더라고. 어깨와 허리 온통 다 쑤셔”
나는 수고했다는 말 대신 안쓰러움에 왜 그렇게 힘들게 했냐, 그 길을 다니는 사람들과 같이 했어야지, 그냥 놔둬도 알아서 잘 다닐 터였다는 둥 나무랐다. 그러자 아내가 대답했다.
“오늘 우리 집까지 오는 마을 진입로의 눈을 치우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당신 예전에 대문과 집이 멀리 떨어진 정원을 꿈꿨었잖아? 참 다행이야. 당신이 파라오 슬롯 귀족의 상속자가 아니라서.”
세상에는 한 뼘 정원에서 너른 평원까지 정원의 종류가 무수히 많지만 커지면 커질수록 더 많은 노동과 자본을 필요로 한다는 인과율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나의 능력과 시간 그리고 열정에 맞는 정원을 가꾼다면 분명 삶의 질은 높아질 것이고 덤으로 얻는 행복감도 클 것이다. 다만 정원을 가꾸려는 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파라오 슬롯 귀족의 상속자라도 대문과 집이 멀면 멀수록 힘이 든다는 사실이다.
멀어도 온 정성을 기울이면 천국이 되고, 가까워도 애정이 없으면 잡초밭으로 변하는 게 파라오 슬롯인데 우리 사는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음을 파라오 슬롯은 스미듯 알려준다. 자연이 전하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지만 가끔은 잊어버리고 또 가끔은 어리석은 선택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하는 것이다.
‘철이 든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계절에 따라 파종과 돌봄, 수확을 잘 가려 행동하는 농부를 ‘철든 사람’이라고 일컬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초보 파라오 슬롯사에다 남의 마음도 잘 못 헤아리는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다. 얼마나 많은 계절을 파라오 슬롯과 함께하면,아내 그리고가까운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함께해야 제대로 철이 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은 것 같지도 않다. 찬바람과 코로나19로 멀어지는 요즘, 차일피일 미루지 말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해야겠다. 조만간 언 땅을 뚫고 활짝 피어날 봄꽃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