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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볼루션 바카라 돕는 의사입니다

스테파니 그린 저/최정수 역 , 2022, 이봄

도서팟캐스트 <책걸상에서 강양구 기자님이 추천한 책. 전자책을 다운받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별로 구미가 당기는 책은 아니었다."나는 (뭔가 신기한 일을 하는 사람) 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독자의 구미를 당기려는 시도가 솔직히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원제는 '이것이 조력사망이다 (This is Assisted Dying)') 이 책의 저자는 서울신문에서 "금기된 에볼루션 바카라, 안락사" 기획기사에서 조력사망을 지지하고 그것을 시행하는 입장에서인터뷰를 한 인물이기도 에볼루션 바카라.기획기사는 나의인터뷰도 포함되어 있다.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암 전문의 및 호스피스 의사들은 최근 법안 발의가 된 "조력존엄사"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다. 우리 사회에서 에볼루션 바카라에 대한 논의가 구체성이 결여된 채 질병과 노년의 삶에 대한 공포에 이를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책을 읽은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큰 변화는 없다. 질병을 가지고 살아도, 나이가 들어도, 누군가 나를 돌봐줄 수 있고 내가 그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사회라면 소위 '안락사'가 그렇게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그런 이유에서 이 이슈는 ‘논쟁’이라기보다는 ‘현상’에 가깝다고 보인다. 삶의 고통과 팍팍함을 나타내는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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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 역시 이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서 자유롭지 않다. 얼마전 읽은 두 권의 책 <각자도사사회와 <그렇게 죽지 않는다에서 그려진 요양원의 치매노인들의 모습에 에볼루션 바카라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암으로 인한 사망은 대체로 수일-수주 정도의 기간에 걸쳐 급격히 악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에볼루션 바카라 그런 경우 웬만해선 조력사망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정말 고통스럽다면 완화적 진정 (palliative sedation)이라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책에 나온 한 말기암 환자는 이것도 거부하고 조력사망을 택한다). 그러나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면, 그리고 더 이상 나였던 사람이 아닌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도 수많은 불확실성이 있을 것이고 고통의 모습도 모두 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겠지만, 끝까지 살아낼 자신이 있다고 말하기에 인생의 고통은 너무나 예측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무튼 에볼루션 바카라의 구체성을 접하지 않은 채 에볼루션 바카라에 대해 논의하는 것만큼이나, 조력사망의 구체성을 접하지 않은 채 조력사망에 반대하는 것 역시 공허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런 마음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자가 산부인과 의사 (정확히는 아마도 산과 영역의 일을 주로 하는 가정의학과 의사인 것 같다)라는 것은 의외였다. 왜 에볼루션 바카라 접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이 일을 시작하였나? 첫 조력사망을 준비하고 시행하는 장면에서의 '50대 이상의 환자를 보살핀 적이 없었다'는 이야기, 간간히 보이는 그의 당황스러움과 서투름의 고백에는 사실 조금 짜증이 나기까지 했다. 임종과정의 돌봄은 의료인에게도 상당히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다. 그래도 여러 번 겪다보면 그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고 가족들을 잘 안심시키고 에볼루션 바카라 맞이하도록 돕는 데 어느 정도의 노련함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경력이 없는 의료인이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그 배경은 저자가 첫 조력사망 장면 이후에 털어놓는 자신의 죽음과 개인의 권리에 대한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에서 납득이 갔다. 네덜란드의 학회에 참석해서 보인 열정은 존경스럽기도 했고, 탄생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을 주로 담당해온 경력이 오히려 결국은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인생은 결국 수미쌍관인 것일까.


“산부인과 진료와 MAiD (Medically Assistance in Dying;캐나다에서 의사조력사망을 칭하는 이름이다)둘 다 가정의 역학관계를 상기시키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강렬하고 내밀하고 정서적인 경험이다. 둘 다 나를 현장에 온전히 참여하게 하고, 그런 다음에는 꽤나 빠르게, 품위 있게 물러나게 한다. 탄생과 에볼루션 바카라 둘 다 삶의 매우 중요한 이벤트, 통과, 변화, 일종의 이행transition이다. 이는 비단 아기나 죽어가는 사람에게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난다.“


무엇보다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일, 누군가를 에볼루션 바카라으로 이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라는 점을 조력사망사례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보며 깨닫게 된다. 의료행위는 “루틴”과 “프로토콜”에 의해 누군가의 몸에 손을 댄다는 망설임과 두려움을 극복해가며 익히는 과정인데, 이건 그게 아니지 않은가. 물론 나중에 알고보면 그녀도 구체적인 약의 조합이나 투여 절차, 환자와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내용 등등을 어느 정도는 학회에서 배워와서 하는 것임을 짐작하게는 되지만, 서로 다른 사례마다 부딛치게 되는 윤리적 고민과 예기치 못한 상황, 환자의 에볼루션 바카라 뒤에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의 묘사를 읽다보면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짐작케한다. 더군다나 캐나다에서의 조력사망법이 시행된 직후 비용청구코드 없이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니 실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캐나다에선일단 의료행위를 하면 코드가 만들어져 이후 청구가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는 것일까?우리같으면 건강보험에 명시된 코드로 (급여가 되던 안되던 간에) 정의되지 않은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보상을 받으리란 보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불법이기까지 하다. 의사도 건강보험을 믿지 않고 건강보험도 의사를 믿지 않으니까. 캐나다에서의 의사와 보건당국간에는 좀더 신뢰가 존재하는 듯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MAiD가 정말 필요한 환자들이 있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신념이 없다면 할 수 없는 도전적이고 선도적인 시도임엔 분명하다. 실제 우리나라에 조력사망이 입법이 된다고 해도 이런 과감한 선구자들, 운동가의 면모를 띤 의사들이 기꺼이 그 부담을 받아안지 않는다면 실행이 되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과 사회에 대한 신뢰, 개인의 권리에 대한 단호한 수호 의지는 저자가 부딛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신념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와 다른 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종교적 이유로MAiD에 반대하며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하는 환자의 조카 부부에게 차분히 맞서며 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용기는 솔직히 나 같으면 낼 수 없다. 환자 본인이 써 놓은 연명의료결정서의 내용에 의료진이 따르려고 해도 가족들이 반대하며 환자를 중환자실에 보낼 것을 고집하면 사실 현장의 에볼루션 바카라로서는 무력해지는 것이 보통이다.법보다 사적인 원망 또는 위협이 더 무서운 것이 우리 사회다. 법에 따른 냉철한 판단보다'환자는 약자,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는 통상적인 믿음과 직관 또는 여론재판이 더 중요한 기준이 되는 사회에서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자 하는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


저자가 환자들이 조력사망을 원하는 이유가 신체적 고통보다는 주로 자율성과 의미의 상실이라고 말하는 부분은 사실 처음엔 의외였다. 그건 내가 신체적 고통을 줄여주는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내과의사여서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통증은 차라리 마약성진통제로 다스릴 순 있지만 호흡곤란, 부종 등의 증상은 좀처럼 환자가 편해지는 수준으로의 조절은 어려워서 늘 애를 먹곤 한다. 호스피스 의료기관에서MAiD를 진행하게 되는 말기암환자인 레이의 암성 상처 (malignant wound)도 조절이 좀처럼 어렵고 자존감을 크게 떨어뜨리는 증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나의 존재가치를 찾기 어렵다는 실존의 문제가 조력사망을 원하는 이유라니, 그것이야말로 정신건강의학과, 성직자, 자원봉사자들이 협업하는 호스피스 진료로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충분한 호스피스 진료를 받으면서도 해결되지 않는 고통이 있었고 결국 저자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우리는 이런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인식때문에진료를 거부하기도 하고, 너무 늦게 호스피스에 의뢰되어 기다리다가 사망하기도 하며, 본인의 상황에 맞춘 (집에서의 거리또는 가정호스피스 제공 여부)호스피스 서비스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 우리 실정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지만 그래도 에볼루션 바카라 원하는' 결론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에볼루션 바카라 원하는' 상황이 되지 않을지, 고통에 대한 해답으로 너무 쉽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되지 않을지가 걱정이다.


이 책은 최근 의대생들에게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토론 수업을 준비하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기 전 수업을 하고 그 이후에 후반부를 읽었다. 다 읽고 나서 수업을 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본과1학년 학생들에게 조력 사망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는데 이것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에볼루션 바카라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여기까지는 일반인의 인식과 비슷하므로 놀랍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조력사망을 개인의 권리를 수호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내가 우려하였듯이 고통을 줄여주는 수단으로서만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이 일부 있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동의가 없어도 식물인간이나 치매 환자에서도 조력사망을 고려할 수 있다며 너무 멀리 나가버리는 학생들을 보며 좀더 단호하게 말하지 못한 것이 좀 후회가 된다. 자기결정권의 존중이 MAiD를 비롯한 서구 여러 국가에서의 조력사망허용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자 이유였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너무 위험한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실제 병원에서도 모든 것이 빨리빨리, 대충대충 진행되며 연명의료계획서조차도 종종 의료진과 가족들의 면책수단으로 변질되어버리곤 에볼루션 바카라(실제 책 <그렇게 죽지않는다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썼다는 이유로 가벼운 질병에도 병원으로 모셔가기를 거부에볼루션 바카라 요양원 환자의 가족들이 나온다) 우리 상황에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은 너무 쉽게 잊혀지곤 에볼루션 바카라 가치가 된다. 책의 영문부제가 'Empowering Patients at the End of Life'라는 데서 볼 수 있듯 생애 말기에 있는 환자에게 자율권과 결정권을 주는 것이 조력사망의 가장 중요한 이유임을 이해한다면 조력사망에 대한 찬반이 반드시 대립되는 가치관의 충돌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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