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희서는 바카라 꽁 머니 앞에서 의상학과가 예술대학에 속해 있다는 것에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비꼬았었다. 옷 만드는 게 무슨 예술이니? 독서 토론 후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희서의 생각을 단순히 얘기한 것에 발끈했던 바카라 꽁 머니를 기억해 냈다. 표정이 기억나 웃음이 나왔다.
“응, 요즘은 인턴 하느라 가끔 와서 하고 싶은 걸 하지. 졸업하기 전에는 마음껏 쓸 수 있거든.”
졸업을 유예했다는 바카라 꽁 머니는 옷을 만드는 회사의 홍보 잡지 편집을 돕는다고 했다.
“이 천을 잘라 꿈을 이어 붙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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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디자인하고 원바카라 꽁 머니 형태가 될 때까지 자르고 연결하고 상상하며 하나의 예술이 완성되는 거지. 입는 건 눈에 보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아. 어떤 각도로 어떤 감촉으로 몸과 상호작용바카라 꽁 머니지에 따라 사는 시간이 다르게 물들게 돼. 마치 뜨거운 교감의 눈길을 서로 주고받는 것처럼 말이야.”
갑자기 초조함이 몰려왔다. 바카라 꽁 머니는 행복감에 젖어 얘기하다가도 갑자기 혼자 숙연해지거나 불안을 표정으로 가득 담아내는 정말 예술가 같았다. 그런 불안을 머리와 손을 바삐 움직이는 일에 집중하면서 살아온 것 같았다.
“이 가위만 해도 멋지지. 나의 욕망을 서걱서걱 잘라내는데도 욕망이 작아지기는커녕 다시 새롭게 왕성해지거든. 가윗날 두 개는 항상 붙어서 서로 가장 예민한 부분을 지나가며 부딪혀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지. 가장 이상적인 상호작용이 바로 가위라는 거거든. 그 소리는 또 얼마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바카라 꽁 머니지…”
바카라 꽁 머니가 정말 예술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장 절실하게 했던 순간이었다. 서로 접촉해 날을 비비며 제 할 일을 하는 가위는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야 할 숙명이라는 바카라 꽁 머니의 이어진 말에 희서는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런 열기를 가위에서 받아 꿈을 이어 꿰매고 있는 바카라 꽁 머니였다. 바카라 꽁 머니, 넌 네가 하는 일에 이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왔구나.
문득 미국에서 맹목적으로 공부만 했던 바카라 꽁 머니 자신을 떠올렸다. 허겁지겁 읽고 머릿속에 욱여넣고 발표하며 끊임없이 인정받기를 요구했던 지난 삼 년이었다. 한없이 앞으로 달리기만 했던 자신이 어리석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래서 지금 남아있는 건 뭘까. 장학금이 달려있는 박사학위 과정 입학 승인 증서를 떠올리며 갑작스러운 초라함에 마음이 작아졌다.
눈에 보이는 실체 앞에서 그 이상을 바라보며 꿈을 재단해 가는 바카라 꽁 머니와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을 쌓으면서 그걸 표식으로 남겨 인정을 구걸하는 희서 자신이 대비되어 기분이 이상했다. 비교했다기보다는 바카라 꽁 머니가 사는 세상이 너무 달라 갑자기 더 멀어진 것 같은 거리감과 이상한 신비감이 함께 몰려왔다.
희서, 너는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거니? 머리가 멍한 채로 바카라 꽁 머니와 헤어져 호텔로 돌아왔다. 바카라 꽁 머니의 작업실에서 뜬금없이 천을 만나고 가위를 만나며 그녀의 삶이 그녀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더 긴장해야 할 거야. 생각 없이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건 삶을 잃어가는 방식일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