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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단에서 자랐다는 말에도, 파보르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았다는 말에도, 바카라는 크게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는 저를 오티움의 리마토 총장님께 맡길 계획이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토드 경을 시켜 제가 솜다리 여관으로 가도록 만드셨다더군요. 혹시 어머니께서는 알고 계셨던 건가요? 솜다리 여관에 녹스 용병단의 네우테르 대장님이 묵고 계셨던 걸 말이에요.”


“아니. 그런 건 아니었단다. 하지만 네 아버지의 계획을 바꾸는 편이 네 안전에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계획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다섯이나 되었으니까. 네 아버지, 나, 네 삼촌, 리마토 총장, 토드 경까지. 너무 많지, 다섯은. 그래서 우연에 맡기기로 했다. 솜다리 여관 이후의 네 행방에 대해서는 나와 토드 경조차 모르게 되겠지만, 널 믿었다. 너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렇게 어엿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올 거라고 굳게 믿었거든. 넌 항상 필요한 만큼의 운이 따르는 바카라였으니까.”


솜다리 여관은 온갖 사람들이 모여 드는 곳이었다. 협잡꾼이나 인신매매꾼 같은 나쁜 놈들부터 고귀한 귀족이나 다양한 분야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까지. 인신매매꾼에게 잡혀갈 뻔한 바카라가 네우테르의 도움을 받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바카라는 반드시 자신답게 살아남았을 거야. 그렇게 가르쳤고, 가르치기 이전에 이미 알던 아이니까. 어떤 가치를 귀히 여겨야 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존중해야 하는지. 어떨 때 자신의 진면목을 감추고 어떨 때 드러내야 하는지.


하여튼 젊은 시절의 자신은 어머니로서 무모하리만치 과감했구나 싶어서 바카라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두고 그런 도박과 같은 일을 벌이다니. 그러나 다시 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걸 바카라는 알았다.


완벽하게 바카라 건, 숨긴 당사자조차 어디에 숨겼는지 모를 때나 가능한 법이니까.


“대략 그때쯤 프레케스 가의 마차가 그 길을 지나갈 거라는 건 알고 계셨던 거고요.”


레이디 프리틸라에게는 조력자들이 많다던 토드 경의 말을 회상하며 바카라가 확인했다.


“그건 알고 있었던 게 맞아. 내 연줄을 다 동원해서 수소문을 했더니 타키툼의 협력자가 전서조를 보내 그 사실을 알려주더구나. 마차가 여관에 들를 때마다 그 여관에 미리 가서 기다리던 협력자들이 소식을 줬고, 덕분에 나는 그 길에서 너와 그 마차가 마주칠 수 있도록 토드 경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었지.”


바카라의 눈썹이 슥 올라갔다. 어머니가 협력자라고 표현하는 모종의 집단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치밀하고 조직적이었다. 어머니와 그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혹은 어떤 목적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는 거지?


“마치 무슨 비밀 결사의 활동 바카라데요?”


심각하게 묻는 대신 농담조로 말하고는 바카라가 가벼운 웃음을 더했다.


“비밀 결사라니, 그렇게 거창하거나 대단한 모임은 아니고.”


바카라도 옅은 웃음기를 띠었다.


“언젠가 너에게 말해준 기억이 있는데. 선량함과 연약함으로 고귀한 것을 지키는 사명, 이라고 말이야. 아, 나도 사명이니 하는 거창한 말을 사용했었구나. 그건 그저 달리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호해서 그랬던 거야. 우리에게는 무슨 엄청난 목적 바카라 건 없어. 다만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고, 귀하지만 버려지기 쉬운 마음 바카라 것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랄까……. 외부인에게 상세히 발설할 순 없지만.”


바카라가 명랑한 쓴웃음을 지었다.


“아들도 외부인이게 만들다니. 그런 게 바로 비밀 결사죠.”


기실 바카라의 머릿속에는 반딧불이가 날아오르듯 떠오르는 명칭이 하나 있었다. 말할 것도 없이 파보르가 가르쳐준 것이었다.


“혹시 말이에요, 어머니. 님파 소로르의 일원이신가요?”


그렇다면 바카라는 명백한 외부인일 수밖에 없었다. 님파 소로르, 즉 요정의 자매단. 그 연원을 요정과 인간이 교류하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유서 깊은 비밀 단체. 자매단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여자들만의 비밀 결사니까.


“님파 소로르의 존재를 알고 있었어? 역시 파보르가 알려 줬겠지?”


내내 침착하던 바카라도 이번에는 꽤 놀란 모양이었다. 에메랄드 같은 청록색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팔짱을 끼었다.


“명칭과 기원 정도만요. 단주님도 잘 알지는 못한다고 하셨어요. 당연하잖아요. 그도 결국 남자니까요.”


바카라가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래. 그러니까 너도 그 정도로만 알고 있으렴. 만약 네가 아들이 아니고 딸이었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말이다.”


부드럽지만 진지하게 프리틸라가 선을 그었다. 살리그네의 딸에게서 딸에게로 단 한 대의 끊어짐도 없이 이어져 내려오던 님파 소로르의 전통이 그녀를 마지막으로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조카 여자바카라조차 없었다.


프리틸라는 자신에게 반드시 딸이 있으리라고 예상했었다. 첫아이가 아들이었으니 적어도 둘째아이는 딸일 거라고, 자신이 낳을 여러 아이 중에 하나쯤은 꼭 딸일 거라고. 그러나 프리틸라는 바카라를 낳은 뒤로 좀처럼 임신을 하지 못했다.


건강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어서 좀 늦어도 괜찮다고 기다리던 중에 남편인 아세르를 잃었다. 프리틸라에게 남자는 아세르 하나로 충분했으니 아이도 바카라 하나로 충분했다. 이제는 다른 남자도 다른 자식도 그녀는 원치 않았다.


“알겠어요, 어머니.”


어느덧 달이 하늘의 중앙을 지나 서쪽으로 치우지고 있었다. 프리틸라가 일어나서 옹달샘으로 갔다. 바카라에게 오라고 손짓한 그녀가 두 손으로 샘물을 떠 그에게 내밀었다.


“이 물이 혹시라도 아직 네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약성을 깨끗이 해독할 거야.”


바카라는 자신의 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받치고 물을 받아 마셨다. 무정하게 흐르는 시간이 아쉽기만 했다. 정겨운 밤은 짧고 그를 기다리는 험한 여정은 길고 길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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