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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우붓의 이탈리아 가상 바카라
도착한 다음 날 저녁 숙소 근처에 있는 이탈리아 가상 바카라엘 갔다. 우붓 첫날의 요란한 세리머니를 겪은 후 제대로 된 한 끼를 못 먹었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비건 카페 스위트 어니언을 찾기 전인 데다가 어디라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2월의 저녁은 남국인데도 금세 어두워지려는 기색이었고 마음도 따라 바빠지기 시작했다.
목소리에 활기가 묻어나는 이탈리아노 셰프는 가상 바카라식을 먹을 수 있냐는 내 질문에 파스타를 추천해 줬다. 육수를 쓰지 않고 가상 바카라으로 해 줄 수 있다고 흔쾌히, 그러나 알아듣기 힘든 발음의 설명이었다. 그때 내가 원했던 건 담백하고 깔끔한 '알리오 올리오' , 파스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그나마 가끔 생각나는 게 '알리오 올리오' 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집은 겉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지만 속은 아마도 피자집 정도 되는 가상 바카라이었나 보다. 요리로서의 그 '파스타'가 별로였는지, 내 입맛이 '파스타' 자체를 거부했던 건지 아무튼 그것은 그냥 파스타였다. 마늘 향이 듬뿍 올라오는 알싸한 맛의 '알리오 올리오'는 결코 아니었고, 달큼한 토마토 맛이 나는 토마토 파스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말을 하며 음식을 주문했고, 짧지 않은 시간을 음식을 기다리며 보냈다. 마침내 내 가상 바카라 파스타가 나왔고, 창 밖을 보니 어둠이 내려와 거리를 덮고 있었다. 어둠을 보자 드는 생각은이제 비로소 '완벽한 가상 바카라자의 시간이 시작되었구나' '완벽한 고독의 순간에 가까워졌구나'라는 거였다. 먹는 둥 마는 둥한 첫 끼였지만 그 느낌의 발현만으로도 괜찮았다.
수다스러운 이탈리아 남자의 가상 바카라을 빠져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밤 길이 그리 낯설지가 않은 것도 이상했다.
한낮의 KA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