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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뜨거운 아버지를 파라오 슬롯 싣고

feat.검정콩


파라오 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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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 슬롯는 고분고분했다.

묘를 개장한 인부는 두 명이었다.

개장이 끝났는지한 명은곡괭이를,한 명은 하얀 박스를 들고 비탈을 내려왔다. 그리곤파라오 슬롯를내게 건넸다.

파라오 슬롯는 생각보다 무거웠다.내리막길을 지나차있는 데까지 걸어가는 동안, 덜그럭거리는파라오 슬롯행여나바닥에 쏟지는 않을까 발끝에 힘을 주며 걷기에 바빴다.


나는 파라오 슬롯에게차의 조수석을 내어줄까했지만, 그냥파라오 슬롯 넣는 걸로 맘을 정했다.


아직서류를 접수하고 일산화장터를 지나분당 추모공원까지 가서 직원들이 퇴근하기 전, 파라오 슬롯를 7층에 안장해야하는 긴 여정이 남아있었다.


나는시립묘지 사무실에서여러 장의 서류를 들고서서수속을 밟았다.

도장을 서너 군데에 찍고 안내문대로 왔다 갔다 하다 보니파라오 슬롯 속에 아빠가 있는 줄도 까맣게 잊어버렸,

화장터에가기커피한잔,울퉁불퉁한 길을 내려가며 그제야 파라오 슬롯있는파라오 슬롯떠올렸다.

나는 아빠를 파라오 슬롯 넣어 놓지 않고 안고 다녔다면, 화장실이나 편의점에 놓고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 조심해라.


그렇게파라오 슬롯 속뼛조각들이부딪치며내게 말을는 듯했다.

30년 만에난 당신의뼛조각들조차,어쩌면시큼털털한 숙취러나오는 건 아닌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른 아침 곡괭이질에 놀랐을 당신이

처음 타본 딸내미의 차 파라오 슬롯서 주눅 들었을 당신이, 잠시 애석했다.



가까스로파주에서 일산까지 시간 맞춰화장터에 닿았다.급한 맘에과속방지턱을 덜컹 넘을마다혹시놀란파라오 슬롯가거무튀튀한 행색으로스에서튀어나와 나를 놀래켜주는 건 아닌가,장이리다가도

그건 어쩌면뿐 아니라신도 놀라기는매일반일 테지, 하는 잡다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실수가 있어선안 됐다.


분당모공원의직원들은 6시 반까지만 기다려주겠다고 볼멘소리를 했던 터이고, 그 시간에 닿지 못한다면 나는아빠를 파라오 슬롯서 하루 재우거나,유골함을 들고 들어가선반어딘가에 올려놓고 밤새 당신의 존재를 곱씹을게 뻔한 관계로,맘이 급했다.


하룻밤일 뿐인데도, 그랬다.


그러니까9시부터 오후 6시 반까지개장을 하고 화장터를 들러 납골당까지 무사히 파라오 슬롯를 데려다 놓는 게 오늘 하루내게 주어진임무였다.

미션 임파서블 저리 가라의속도전이었다.


서류를 접수하고, 30년 전 죽은 파라오 슬롯에게남들처럼인사를 건넸고,파라오 슬롯는 순번대로 화염 속으로 들어가 삼십 분 만에뽀얀 가루가 돼 내게 돌아왔다. 유리벽 너머뼛조각을 갈아 착착 종이에 접어넣는 청년의 현란한 두 손을 나는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마지막 진공항아리에들어간 아빠를 받아 들고 나는 다시 파라오 슬롯 아빠를 넣었다.파라오 슬롯는 종일 형체를 바꾼 채 어딘가로 연속 들어가고 있었고,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셈이었다.

나는흔들리지 않게 흐트러져있는 책들로 벽을 만들고 그사이에유골함을고정했다.


연꽃이 그려진항아리에 들어간 파라오 슬롯는 조용했다.

평생 시끄럽게 굴었고, 나를 귀찮게 했던 사람.


내게 마지막으로 파라오 슬롯로서의 존재감을 알리려는 의도였을까,항아리는 파라오 슬롯웠다.



파라오 슬롯의 급작스런 이장은 언니때문이었다.

추석 당일 언니가 죽었, 그건

백혈병 발병 후, 두 달만의 일이었다.

간경화가 아닌 백혈병이라니.

알콜릭으로 마지막 남은동생인나에게 마저 외면당한, 고독한 죽음.

3년 동안나는 언니를 보지 않았고, 마지막 60일 동안 세 번을 만났다.로나가막바지였고한낮의 기온은 35도에 육박했다. 진료가 늘어졌고 해서 나는 차에 언니를 태운 채 진료를 기다렸다.

바로 어제 만난 사람처럼, 언니가 말을 걸었다.


이사 간 집은 몇 층이냐. 남향이냐.

아니 남서향.


살이 좀 쪘냐?

란 말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났다.


나는 이을 오래전부터 계획에 넣어놨었고,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추석 당일, 발병 두 달 만에 사라질 거라고는 알지 못했다.


병원소속 장례업체에선 유골함을 고르라고 내게 샘플을 보여줬고 나는 학 두 마리의 뾰족한 주둥이가 도드라진 항아리를골랐다.그땐그게 학인지 두루미인지 타조인지도 몰랐다.

담당자는

차분히 골라보라며 내 핸드폰으로 샘플사진을 몇 개 전송해 놓겠다고 했다.

얼렁뚱땅, 장례식을 끝내고


나는외로웠던파라오 슬롯와 언니를 한 곳에 모아보기로 맘을 먹었다.때 행복했던 어떤 날처럼,가족이란 울타리를 남들처럼 만들어 보고 싶었달까. 그게 납골당이면 어떤가.


게다가파라오 슬롯는 후일에 하나뿐인 나마저 사라지면 연고도 없는 파주 시립묘지에서 멀뚱히 누워 있어야 할 판이었으니까.


언니의 발인 전날 밤 엄마에게 내 계획을 말해주었다.

엄마는 단박에 좋다, 고 해주었고, 늦게라도 가족이 모일 수 있다니 기뻐하는 눈치였다.

몸과 맘이흐릿한엄마의

짙은반영구 눈썹이,영정 앞에서 울 때마다 너무 도드라져 나는 그 부조화에 화가 났다. 엄마는동네미용실에서 반영구 눈썹을 한지 일주일이 채 안 됐고,언니가 이렇게 빨리 갈지 몰랐다며 길게 울었다.


내 핸드폰 갤러리에는이미언니와 파라오 슬롯의 유골함 샘플들이 가득했다.


잘 골라보세요.


학이 날거나 앉았거나, 난이 그려졌거나, 나비가 날거나, 금국화가 폈거나, 연꽃이 그려진, 그리고 고가의 십장생자개까지 종류도 다양, 진공으로 하면 십만 원이 더 비싸다는 안내와 함께.

언니를 진공 유골함에 빵빵하게 넣고 돌아온 다음날 나는 새벽같이 파라오 슬롯를 개장하러 파주로 향했던 것이다.

화장 일정이잠시늘어진 그 사이로대기시간을 안내받은 후,가까운 식당을 골라국밥을 먹으러 갔다.


순댓국을 먹는데, 뽀얀 김이 안경에 서렸다.

내장 부속이 너무 많아 골라내는데 갑자기 코가 알싸했다.

파라오 슬롯는 편식하는 나를 향해, 밥상에서 숟가락으로 탕! 소리를 내며 혼을 낸 적이 있었다.러면 언니는 내가 골라놓은 검정콩을 얼른 먹어치고, 그 대신자신몫의계란말이내게 남겨주었, 보드라운 사람이었고


파라오 슬롯역시정신이 망가지기 전,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티비에 나오면 마당에 있는 나를 큰소리로르며

이수야, 니 수철이 오빠 나왔다!,

호들갑을 떨었던


잠시 그런소박한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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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내 아빠를 파라오 슬롯 싣고

나는 분당추모공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후드득 앞창에 달라붙었고, 해가 지기 전에는 반드시 도착해야만 했으므로 나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파라오 슬롯.

망자들의 레지던스라고, 그렇게 생각해 봐.

천당아래 분당이라잖아

(언니도 있고 말이야.)


당신이 원했던 그 고요한 세상.

어둡고 축축하지 않은

남향집...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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