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덟 살 이후로 슬롯사이트에 살아본 적이 없다. 30여 년 전, 어린 시절 기억이 남아있는 저층의 작은 슬롯사이트는 아버지의 사업 자금 밑천이 되어줘야 했다. (엄마 말에 따르면) 그 뒤로 몇 번 슬롯사이트에 살 기회가 있었지만 잘못 선 빚보증, 사업 부도 위기 등으로 슬롯사이트 몇 채가 날아갔다고 한다.우리 가족은 슬롯사이트와 인연이 영 없었던 건지 아버지의 사업이 자리 잡고 난 이후에도 부모님과 함께 산 집의 형태가 슬롯사이트였던 적은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슬롯사이트라는 낯선 공간에 대해 경계심과 호기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수도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슬롯사이트단지임에도 말이다.
살기 너무 편하다며 슬롯사이트를 찬양하는 동생도 분가하고 얼마 안됐을 때는 (작은 층간 소음에도 잠을 못 이루겠다고) 슬롯사이트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았었다.나도 동생처럼 결혼으로 독립하길바랐던 적이 있었는데, 삼십 대 중반의 이별 후유증은 생각보다 요란했고 이후 내 결혼의 행방은 점점 묘연해져 갔다. 나이 든 자식이 부모에게 빌붙어 살았을 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몸소 겪은 자로서 단언하자면 이건 (서로에게) 꽤 심각한 비극이다. 부모-자식 간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는 조화를 이루기 어렵고, 가족도 종국엔 다 타인에 불과하다는 차디찬명제를매 순간 깨닫는다.
대내외적인 압박들로 나가고말 거라는 결심만 수만 번, 그럼에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주 핑계는 돈이었고그다음은슬롯사이트 살이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그럼에도 현재 나의 경제력, 슬롯사이트라는 자산의 환금성, 여자 홀로 살아야 하는 현실과 안전성을 모조리 고려하면 슬롯사이트가 답이었다. (특별한 이슈가 없다면) 나는 2년 뒤 가족과의 비극(?)을 종식시키고 내 생애 첫 집인 슬롯사이트에서 나 혼자 산다를 시작한다.
미래 입주민으로서 슬롯사이트에 대해 선행학습한다는 마음으로 저번 주'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봤다. 역시나 내 흥미를 잡아끈 설정은 온 세상을 쓸어버린 대지진이 아니라 그 와중에 건재한 황궁슬롯사이트라는 공간적 배경이었다.
나는 평소에도 슬롯사이트를 볼 때마다 참 독특한 건물이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구분'소유권'이란 것이 분명 존재하지만, 결국 공동구매한 수많은 가구가 쪼개 쓰는 형태의 주택.
내 집인 듯 내 집 아닌 내 집 같은 헷갈림을 주는데도, 등기라는 종이 위에 (소유자로) 이름 석자 올리기 어려운 가격이 깡패인 주택.
특정 지역에만 몰리는 수요의 폭발을 좁은 땅 덩어리라는 공급의 한계 속에서 풀어낸 최상의 주택.
부녀회장 지휘하에다 같이 모여 대책을 세우고, 주민대표를 일사천리로 뽑은 다음, 외부인 몰아내기에 대한 투표와 그 결과를 단행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슬롯사이트란 주거공동체의 거침없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생존을 향한 인간의 적응력은 늘 감탄을 자아내지만 극한 상황에서 한 배를 탄 여럿이 뭉치니 현실적 생활력이란 것이 한층 더 폭발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향한 공동의 합의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다양한 슬롯사이트 군상들이 모여있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 어마무시한 균열의 잠재력을 내포한다. 슬롯사이트의 욕망과 욕망이 충돌했을 때의 파괴력은 지진의 그것못지않다. 파멸로 가는 행태와 강도로 보면자연재해인지진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공포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의 매력은 천편일률적으로 생긴 슬롯사이트 안에서 천차만별의 캐릭터가 살아숨 쉰다는 것에 있다.심지어슬롯사이트는개인적인삶의 공간이다. 밖에서 제 아무리 그럴듯한 가면을 뒤집어쓴다 한들 그걸집에서까지쓰고 있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이 영화는 눈을 반만 뜨고 봐도 맨얼굴을 드러내는 슬롯사이트의 천태만상이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세상이 폐허가 된 마당에도 자가와 전세를구분 짓기 하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슬롯사이트 입주민들에게는) 지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라고 욕먹으면서외부인이랑먹을 것과 잘 곳을 나누는 슬롯사이트이 있고, 변화한 현실에 대한빠른판단과 적응으로 기민하게 살아남는 슬롯사이트이 있으면, 극으로 치닫는 집단 이기주의를 두려워하고 염려하며 바라보는 슬롯사이트도 있다.지킬 대상이 너무도 분명해서 오직 그것만이 기준이 되는 슬롯사이트이 있으면, 모든 걸 다 잃고 지킬 게 없을때의 광기가 어디까지 뻗쳐 나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슬롯사이트도 있다.
어떤 이야기든 인물이 여러 명 등장하면그중 하나에 나를 투영시켜 몰입하곤 했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인물 여기저기서 수많은 내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이 위협받고 오늘과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이건 선하고 저건 악하다고 단언할 수 있었을까?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는 확신이 가능했을까?
영화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경계에 관객을몰아세우고 끊임없이 질문을 내던진다.
'슬롯사이트다움'이란 무엇이고, 나와 남의 삶을 대하는 '슬롯사이트적인' 선택이란 과연 무엇인가?
입주도 하기 전에 너무 콘크리트 디스토피아에 심취했나싶긴 하지만, 섬뜩한 분위기와 스산한 스토리 그안에 담긴근원적인질문들은내취향의코어만을 저격했다.
영화를 다 보고 극장 밖으로나왔더니이미 밤이었다. 송도 신도시의 수많은 슬롯사이트가 자아내는 불빛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집으로 운전하며 오는길에 마주한풍경의8할또한즐비한 슬롯사이트들이었다.
내 미래의 슬롯사이트는아직까지평당 얼마의무슨브랜드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분양권 계약서로실재하고 있다. 그공간이'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가될지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슬롯사이트'가 될지는살아봐야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