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한 가상 바카라가 있었습니다. 검은 머리의 가상 바카라는 사랑하는 사람을 강 건너로 떠나보내는 검은 사신을 죽도록 싫어했습니다. 난 검은 사신이 너무도 싫은데 왜 내 머리는 사신처럼 검은 것일까? 가상 바카라는 자신의 굽은 머리카락의 끝이 사신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무서워 사신이 활개 하는 밤마다 가상 바카라 머리를 원망했습니다.

가상 바카라는 사신을 이기고 싶었습니다. 마을에 사신이 찾아오지 않으면 사랑하는 사람들과영원히 헤어지지않을 텐데...

가상 바카라와 같은 검은 머리를 한 가족들과, 가상 바카라의 검은 머리에 이끌려 친해진 사람들과, 가상 바카라를 빼닮은 검은 머리의 딸아이가 생기고,

가상 바카라의 검은가상 바카라에도하얀 실이 늘어갈수록 가상 바카라의 바람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그러나가상 바카라는 사랑만으로는 저승사자를 이길 수없었습니다. 가상 바카라가 사랑하던 마을사람들은 하나둘씩 강 건너로 사라져갔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어릴 때부터 가상 바카라를 아끼던 마을의 현자가 가상 바카라를 불렀습니다.오래간만에 할머니를 찾아온 가상 바카라에게 할머니는 넌지시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강을 건넌 이후에는, 이 집에 네가 얼마나 자주 왔는지내가알 길이 있을까.

또한너는 강을 건넌 나를 등불도 없이 홀로 찾아올 수 있을까...”

한여름의 새벽,가상 바카라는 꿈에서 깨어 주위를 둘러봅니다. 시퍼렇게 깊어진 여름밤의 여백은 새벽 내내 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가상 바카라는몽롱함을 걷어 올리고 어수선한 마음을 내려 앉혔습니다. 먹빛 하늘을 바라보다 노트북을켭니다.커서가 연등처럼깜빡이며 가상 바카라에게 드문드문 난 하얀 머리를 비춥니다.

‘그래, 푸른 밤에는 사신에 닿지 않을 수 있어.’

문서 창이 덧대주는 불빛에 의지해가상 바카라는세상의 정리와 관련된 언어들을 써 내려갑니다.

나는 우선 산자락에 난 꼬불꼬불한 산길을 생각합니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가파른 오르막도 과거가 되어 마침내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중반을 넘어선 인생길을 뒤돌아봐도 산길처럼 굽이굽이 가파르고 완만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하고 보내기를 수십 년. 꽃이 피고 초록의 숲이 우거지고 단풍이 물들다 지고, 마침내 나목이 겨울을 맞이하기까지...

능선 한 자락의 산길은 누군가들의 고요와 번뇌로 굳었다 녹았다를 반복합니다. 돌아보면 굽이굽이 낯익은 사연들이 폭폭한 흙먼지를 일으키다 가라앉으며 군상이 오고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죽을 만큼싫었던 가상 바카라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영원한 이별이 잦아져갑니다. 그러나 그 영원한 이별의 대가만큼, 생명이 넘치는작고 통통한손들에게실타래 같은 중년의 횟빛 가상 바카라카락을 기꺼이 내어줍니다.

유한의 끝자락이 보이지도 않고,보인다하더라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 더미로 펼쳐둔 채로. 작고도 위대한 손에 내 작은 인생을 능히 넘겨줍니다. 작았던 나의 인생을 쥐고 웃는 아기의 모습에,가상 바카라는 가상 바카라 사신이 과거처럼마냥두렵지는 않습니다.

여명의 빛이 밝은 빛과 교대하며, 세상이 마침내 골고루 빛나는 기적의 일상. 바람같이 사소한 나와 나의 인연들이 오늘도 기적처럼 다시 살아났습니다. 나는 꿈속 성현의 말을 소생의 기념으로 다시금 읊조립니다.

“눈을 감으면 나는 당신이 온 걸 알 수 있을까.

당신은 눈 감은 나를 찾을 수 있을까..."

P.S문우이신 이은호 작가님의 글 ‘우리 형’을 읽고서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사유해 온 인생의 끝맺음을 조심스레 내어놓습니다. 꼬마였던 작가님의 심신에 영양분을 듬뿍 챙겨주신 은인의 비보에 상심이 크실 작가님께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