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3년 슬롯사이트를 쓰기 시작했다.김신지 작가님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를 읽고 결심했다.슬롯사이트를 써야겠다고. 책에서는 5년 슬롯사이트를 알려주지만가볍게 시작해보고 싶었다.내가쓸 3년 슬롯사이트를 검색하면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스멀스멀다른 생각이 피어올랐다.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써보면 어떨까. 우리의 3년이 함께 그리고 각자 기록되는 걸 텐데. 이것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문제는 남편과 꿍이의 반발이 심할 것이라는 점이었다.남편은 원래 책과 글쓰기에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평소 책에 관심이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려고 최근에야 책을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꿍이 역시 겨우 일곱 살.글자보다는 그림에 더 친숙하고 가장 잘 쓰는 건 이름이다. 새로운낱말을 쓰려면 여러 번 묻고 나서야 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좋은 점이 나를 더 유혹했다. 주말부부로서 한 달에 두 번 보는 사이에 슬롯사이트를 쓰면서 서로 모르는 일상을 기록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 단어 하나를 겨우 쓰는 일곱 살이지만 학교에 입학하고 또 한 해가 지나는 동안 새로운 글자를 배워서 쌓아가는 기록이 얼마나 소중하겠냐는 것이다.
예상대로 울이에게 3년 슬롯사이트를 제안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놀다가도 수시로 책장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글쓰기도 즐겨하는 아이라 받아들일 줄 알았다. 꿍이는 관심이 없을 것이 분명하므로 언니와 함께 꼬드겼다.
울이야, 이거 3년 슬롯사이트인데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쓸 거야. 자기 전에 한 줄만 쓰면 돼. 한 줄도 귀찮으면 단어 하나만 써도 되고. 이렇게 차곡차곡 쓰면 3년의 기록을 볼 수 있는 거야.꿍이야, 너는 단어 하나만 써도 돼. 아니면 그림을 그려도 돼.
꿍이는 언니가 한다니까 자기도 같이 하겠다고 순순히 승낙했다.이제 남은 사람은남편뿐.평소와 다르게 그에게부드럽고다정하게말을 건넸다.
이거 3년 슬롯사이트인데 매일 한 줄만 쓰면 되고, 나랑 울이, 꿍이 다 하기로 했어. 그러니까 여보도 가져가서 한 줄씩만 쓰면 돼.
예상했던 대로 남편은 난색을 표했다.
나 글쓰기 진짜 싫어해. 꼭 써야 해?
우리의 하루가 기록되는 거야. 얼마나 좋아. 단어 하나만 적어도 되니까 꼭 써줘. 써 줄 거지?
그래도 어떻게 한 줄만 적냐. 몇 줄은 적어야지.
남편의 말끝이 흐려진다.
그렇게 우리 넷은 3년 슬롯사이트를 쓰고 있다. 날짜를 헷갈렸던 꿍이는 제 날짜에 슬롯사이트를 못 썼다며 틀린 날짜를 연필로 새카맣게 칠하고는 3년 슬롯사이트 절필 선언을 하기도 했다. 이 녀석, 엄마를 닮아 은근히 완벽주의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슬그머니 엄마에게 오더니 일주일 전에 자기가 한 일을 물었다. 다시 슬롯사이트를 쓰고 싶어.
2024.8.23.금. 꿍이의 슬롯사이트
'3년 슬롯사이트 싫어. 귀찮아.' 라고 쓰인 것도 여러 날이다. 그럼에도 차곡차곡 하루의 기록이 쌓여가고 있다. 우리의 시간들이 날아가버리지 않고 슬롯사이트 속에 차곡차곡 모이고 있다. 슬롯사이트장을 펴면 우리 넷의 하루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올해 8월부터 시작했던 슬롯사이트장. 처음 결심과 다르게 군데군데 빈 날짜들이 생겼다. 엄마의 슬롯사이트가 그러하니 아이들의 슬롯사이트는 더 볼 것도 없다. 남편의 슬롯사이트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을까. 다른 슬롯사이트장을 생각하기 전에 나부터 하루의 기록을 남겨봐야겠다. '3년 슬롯사이트'가 텅텅 비워져 '4년, 5년 슬롯사이트'가 되지 않게 다시 써봐야지. 지금은 좀 귀찮고 번거롭더라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가 함께 슬롯사이트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 좋겠다.
상상해본다. 햇살 비치는 포근한 날, 거실에 옹기종기 네 식구 둘러앉는다. 슬롯사이트장을 펼쳐보면서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함께 떠올리는 그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