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기대하지않았던파라오 슬롯을 받게되면우리는 그 마음이 고마워웃음짓게 된다.삶을 살아가다 보면예상하지 못한파라오 슬롯 같은 순간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것은삶이 우리에게전해주는작지만 따스한순간순간들이다.그시간들은세상살이로차가워져 버린우리의가슴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데워준다.우리는그렇게슬며시데워진 가슴으로남은오늘을 살아낸다.
정신없이움직이는출근길속에서닫히려는문을살며시잡아주는앞서가는 이의친절함을, 멀리서 들리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며 기다리는 어떤 이의 배려를,이른 아침 카페사장님이넌지시묻는 안부 한마디를, 나른한 오후 동료가 전해 주는 차 한잔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이런, 이런 너무팍팍한 세상이잖아!'라고 외치던우리의마음들이'뭐,그래도조금은따뜻한 세상이네.'하며둥그레지고 있음을느낀다. 그래도 오늘은 괜찮은하루였다고말하며잠시웃음 짓게 한다.
육아를 하며삶속에서전해받았던반짝이는낯선 이들이 건넨파라오 슬롯들을 기억한다. 육아에 지쳐 울적한 마음을 다독여 주었던 누군가의 배려와 친절을 기억한다. 당연한 것이 아니기에감사한 마음을듬뿍담아길거리에서, 마트에서, 식당에서그 어디에선가처음 보는 이들에게 받았던사랑을, 응원을 떠올려본다.
파라오 슬롯 1."괜찮으니 천천히 하세요"
얼마전 파라오 슬롯와 집 근처 도서관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집 근처 도서관은 도보로 20분이지만 혹시 몰라 유모차를 가지고 가게 되었다.파라오 슬롯는내 손을 잡고조금 걷다말했다.
"엄마, 유모차 탈래요."
"그래, 그러렴. "내가 말했다.
유모차를 타고 가겠다는 파라오 슬롯를번쩍안아유모차에 태우고벨트를 채운 후다시도서관으로 향했다.20분을걸어 도서관에 도착했다.이제 유모차를 주차해 두어야 한다. 유모차 주차장은도서관 출입구 안쪽에위치해 있었다. 주차장이라고 하니까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유모차 2대를 세울 수 있는 소박한 공간이다.
여하튼 도서관 안쪽에 있는 유모차 주차장에 가기 위해서는 도서관문을 지나가야한다.그런데특이하게도도서관 문이유난히 무거운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다.그래서혼자서 문을 열고들어갈 때도 끄응하고 문을 밀고 들어가야 했다.따라서유모차를 밀면서 문을 열기란 더더욱어려운 일이었다.때문에평소 파라오 슬롯와 유모차를 가지고 도서관에 갈 때면 먼저 도서관문을 열어 놓고 유모차를옮긴 후다시열어둔문을 닫고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도서관 문을 낑낑 거리며 열어 놓은 후도도가 탑승한유모차를옮기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문을 열기 전문 안쪽에나오려던학생이 나와 유모차에 앉은 파라오 슬롯를쓱 쳐다보았다.그러더니유모차가 도서관으로들어오기 수월하도록 문을 안쪽으로열어 주었다.
"아이코,고맙습니다."나는 예상하지 못한 배려에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섞어학생에게고맙다는 말을전했다. 그리고문을오래잡고 있는 학생에게미안한 마음이 들어허둥지둥유모차를 도서관 안으로 옮기려했다. 서두르는 모습이눈에보였던지문을 잡고 있던 학생이 웃으며 말한다.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서두르지 마시고유모차천천히 옮기셔도 괜찮아요."
파라오 슬롯와 나는 친절한학생의 배려로 편안히 도서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우리가 지나간 후 문을 닫고 나가던 학생의 뒷모습을 조금 길게 바라보았다.맑은 인상의 학생으로부터 건네받았던 따스함을언젠가다른 누군가에게 다시전할 수 있기를 바라며.
파라오 슬롯 2.오그르르. 까꿍!
파라오 슬롯와 둘이 비행기를 타고 서울 친정집에 갔었을 때 일이다. 당시 파라오 슬롯는 26개월 아기였다. 조용하고 소박한 동네에서 평화로운 인생26개월을보내온파라오 슬롯에게 서울은 꽤나 복잡하고 시끄럽게 느껴졌다. 비행기안을 메우는소음에파라오 슬롯는불안함이이미극에 달해 있었다. 파라오 슬롯는비행기에서 내려서도 연신 나를향해 두 팔 벌려안아줘를 외쳤다. 하지만친정집에 가려면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을 가야하는 여정이 아직 남아 있었다. 파라오 슬롯를 안은 상태로갈 수는 없었다.파라오 슬롯를달래고 달래유모차에 앉히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파라오 슬롯가 사는 동네는 지하철이 없었기에 파라오 슬롯는인생26개월 차에 처음 지하철을만나게 되었다.그래서서울 여행을 계획할 때비행기에서 내린 후.지하철로 1시간을 이동하는 부분이 계속 마음에 걸렸었다.지하철 안에서1시간 동안파라오 슬롯가지루해 할 수도 있고 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하철 외에 다른 이동수단이 없었다.
"OO행 열차가 들어옵니다. 손님 여러분 께서는 안전 선 안으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열차가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쑤우우우우우웅웅"굉음을 내며 열차가 들어왔다.
괜찮은가 싶어파라오 슬롯의 얼굴을 살피니 이미 귀를쩌렁쩌렁 울리는 안내 방송이 시작될 때부터파라오 슬롯는겁에 질려 있었다. 그리고 열차가 들어오는 굉음을 듣고는울음을 터뜨릴까 말까 고민하는 듯 보였다. 열차가 멈추자유모차를 밀며 열차에 올라탔다. 공항을 지나는 열차라 그런지 이미 열차 안은승객들로가득 차 있었다.고개를 돌려 요리조리 살펴사람들이 좀 덜 붐벼 보이는곳으로갔다.
유모차를 세우고한숨을 돌리는데열차가 한 정거장도 가기 전에 파라오 슬롯가 큰 소리로 외쳤다.
"으아아아아아아앙, 엄마, 무서워!! 무서워!! 내려!! 내려!!"
파라오 슬롯는 어두운 터널 안을 지나는 지하철을 탔다는 사실이 무서운 것인지, 아니면 무엇이 무서운 것인지알 수 없었다. 파라오 슬롯는계속 무섭다며울기 시작했다. 고요한 지하철 안에 파라오 슬롯의 울음소리와 무섭다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지하철에 앉은 승객들의 눈이 동시에 나와 파라오 슬롯를 향했다. 사람은 많지만 고요한 지하철 안.그 안에서 울려 퍼지는지하철이무섭다는 아기의 처절한 절규.도겸이의 목소리는지하철 안에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지하철이 무섭다며 파라오 슬롯가 우는장면이 웃기며 귀여웠는지 몇몇 승객은 파라오 슬롯와 나를 보고 킥! 하고 웃음을 참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웃기고 슬픈 상황이었다.이대로 가다가는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처절하게 울고 있는 파라오 슬롯를 데리고 계속전철 안에 있을 수는 없었기에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하나 고민하던찰나였다.그때파라오 슬롯가다시울면서 외쳤다.
그런데파라오 슬롯를안아주었더니 신기하게도파라오 슬롯의울음이멈추었다.하지만사람이 많았고,공간이 비좁았기때문에 파라오 슬롯를 안으며유모차까지함께잡으려니만만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안긴파라오 슬롯가울음이멈추어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파라오 슬롯를 안고 한 정거장두 정거장 지나치다 보니이상한 느낌이들었다. 나에게 안겨 있던 파라오 슬롯는등 뒤에서뭐가 재미있는지 까르르 까르르 웃고 있었다.
"뭐지?"
지하철이 무섭다는 파라오 슬롯가 갑자기 울음을 그치고, 웃고 있다니. 좀 이상했다. 하지만그때는 한 손으로는파라오 슬롯를 안고 있었고,한 손은유모차도 잡고 있었기에지금등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앞에 있던 까만유리창에어떤할머니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그르르 까꿍" 할머니께서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셨다가 손을 떼면서파라오 슬롯를 보며방글방글 웃었다.
"왕!" 이번에는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셨다고 손을 떼면서파라오 슬롯에게눈을 동그랗게 뜨는 표정을 지으셨다.
이 모습을 본 파라오 슬롯는 고개를 젖히고 꺄르르 웃었다.
알고 보니 파라오 슬롯가 지하철이 떠나갈 듯 무섭다고 우니까할머니께서내 등 뒤에서파라오 슬롯에게까꿍 놀이를 해주고 계셨다. 처음 보는 할머니의 까꿍 놀이에 신이 난 파라오 슬롯는 엄마 품에 안겨 까르르 웃고 있었다. 그렇게등 뒤에서 할머니와 파라오 슬롯의까꿍 놀이는계속되었다.20분쯤 지나고,할머니께서이제 내려야 한다고 하셨다.그리고 말씀하셨다.
"애기엄마. 애기데리고 지하철 타기참 힘들어요. 그치요?그래도 애기가 순하네. 엄마가 잘 키워요. 나는 이제 내려요. 아가야, 울지 말고 엄마랑 잘 가렴.까꿍."다정한 목소리로 할머니가 말했다.그렇게할머니는 내리셨지만 지하철 안에는 할머니가 남긴 다정함으로 가득차 있었다.
파라오 슬롯 3.파란 우산
여름 장마철어느 날이었다.파라오 슬롯와 놀이터에 나와 놀고 있을 때였다. 파라오 슬롯와 그네도 타고 시소도 탔다. 그런데 저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곧이어 빗방울이 투둑투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소나기인 듯했다. 파라오 슬롯를 데리고 집으로 가자니 가는 길에 비를 잔뜩 맞을까 싶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파라오 슬롯야, 소나기가 올 것 같은데 우리 조금만 기다리자. 기다리면 곧 지나갈 거야."
소나기가그치고나면 그때 집에 파라오 슬롯와 돌아갈 생각이었다.주변에비를 피할 곳이 있는지살펴보았다.마침놀이 기구 중에 뾰족한 성탑이 있었는데 그 아래가 원두막 같았다. 순간그 아래에서 비를 피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성탑 아래쪽으로 파라오 슬롯를 데리고 들어갔다.주위를 둘러보니갑자기 내린소나기를 피해 모두들 집으로 달려나간 상태였다.놀이터에는 파라오 슬롯와 나만 남아 있었다.
더 굵은 빗줄기가쏟아지기 시작했다. 파라오 슬롯와 내가 피한 성탑 틈새로도비가 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가서 비를 피해야 할 상황이었다. 비가점점 세차게 내렸다. 주위를 살펴보니빗방울이 굵어지기 전,미처 집으로 가지 못한 사람 몇몇이오두막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파라오 슬롯야, 저기로 가자."나는파라오 슬롯에게 저기 오두막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파라오 슬롯를 안고 오두막으로전속력으로뛰기 시작했다. 나는 비를 좀 맞았지만 다행히 파라오 슬롯는 괜찮았다. 우리는 먼저 오두막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오두막 안에는 할머니와 초등학생 손자 한 팀,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분이 계셨다.
내 생각과 달리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굵은 빗줄기는 그칠 줄 몰랐고,여기저기에서 천둥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파라오 슬롯는 이게 무슨 소리냐고 깜짝 놀라묻고 또물었다.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한분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여기저기 전화를 하시다가 천둥 번개가 치고 있는 빗속으로 뛰어나가 버리셨다.
그렇게 할머니와 손자 그리고 나, 파라오 슬롯 이렇게네 명이 오두막 안에 남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할머니와 손자는 우산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천둥 번개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하늘이 밝아졌다가 뒤 이어 우르르쾅 천둥소리가 반복되었다. 그렇게 15분 정도 흘렀을까 이제는 비만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손자는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채비를시작했다. 갑자기할머니께서 나와 파라오 슬롯를 보더니 말씀하셨다.
"우리 우산이 두 개 있거든요. 이거 줄 테니 아기랑 쓰고 가요. 우산 없잖아요."
"아니에요.곧 비 그칠 것 같아요. 저희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쓰고 가세요." 할머니 마음이 고마웠지만 우산을 받는다고 해도 언제 돌려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그냥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여기 두고 갈게요.쓰고 가요. 애기 비 맞게 하는 거 아니야." 할머니는 파라오 슬롯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말했다. 할머니는진한 파란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그려진 우산을 의자에 두고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