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슬롯 꽁 머니, 슬롯 꽁 머니

태어나 줘서, 내 곁에 와 줘서

지난11월 26일은 슬롯 꽁 머니의 한 살 생일이었다.


슬롯 꽁 머니
슬롯 꽁 머니
슬롯 꽁 머니


처음이니까, 거창하지는 않아도조금쯤 특별하게챙겨주고 싶어서 냉장고에 든 재료를 탈탈 털어 조촐한 생일상을 차렸다.고구마와 닭가슴살과 달걀노른자로 작은 케이크를 만들고, 조각 치즈를 얹고, 초를 꽂고, 몇 가지 간식을 도일리 위에 늘어놓은 것이 전부인 생일상이지만빨간 보타이를 맨 슬롯 꽁 머니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제법 생일잔치 느낌이 났다.


이제 됐개? 먹어도 되개?


좋아하는 음식을 눈앞에 둔 채 사진을 찍는 일이, 슬롯 꽁 머니에게 얼마나 큰 인내심을 요하는 일인지 잘 알기에 빠른 속도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초를켠 사진은 혹시라도 슬롯 꽁 머니가달려들까 봐 걱정스러워서 딱 두 장만 찍고 얼른 촛불을 껐다.


예쁜 기념사진을 남기고, 줄곧 기다리던 케이크와 간식을 와구와구 먹는 슬롯 꽁 머니를 보노라니 불현듯감회가 새로웠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품에 안겨 우리 집에 온 조그만 강아지가 어느덧 8킬로그램이 넘는 개린이가 되어 첫 생일을 맞이하다니!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을까?


슬롯 꽁 머니 없이 살아온 시간이 슬롯 꽁 머니와 함께 지낸 시간보다 훨씬 긴데도 슬롯 꽁 머니가 없던 지난날의 삶이 더 희미하게 느껴진다.슬롯 꽁 머니를 만나기 전에도 분명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슬롯 꽁 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느끼는 행복은 내가 알던 행복과는 모습이 사뭇 다르다.


전에는순간적으로 돋아난 슬롯 꽁 머니감이 사라지면 텅 비어 황량해진 마음속에 쉬이 절망이 움텄는데,지금은 삶의 밑바탕에 은은한 슬롯 꽁 머니이 깔려 있어서 쉽게 불안해지거나 우울해지지 않는다. 절망보다는 희망의 꼬투리를 잡고, 부정보다는 긍정의 언덕에 올라서려 노력한다.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변화다.


배부르게 먹고 기분 좋게 드러누워 배를 보여주는 슬롯 꽁 머니를 바라보며 생각했다.나는 그저 우리 슬롯 꽁 머니가,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많이 웃으면서


슬롯 꽁 머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평생 보살피고 싶다고.


슬롯 꽁 머니가 아무런 걱정 없이 맛있는 맘마를 먹고, 신나게 놀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이 내게슬롯 꽁 머니을 가져다준다는 것이신기하다.한 생명을 돌보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마냥 즐겁지도 않을뿐더러 속상하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도 더러 있다. 그러나 울컥 돋아난 괴로움 위로 해맑은 미소가 내려앉으면풋,웃게 된다.


슬롯 꽁 머니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을 때마다 나는 할 말을 잊는다. 미소 짓는 슬롯 꽁 머니의 눈빛 속에는 언제나 절대적인사랑이 담겨 있다.저토록 완전하게 나를 사랑하고 의지하는 존재가 이 세상에 있다니, 바로 그 존재에게 내가 미소를 안겨줄 수 있다니… 이보다 더한 슬롯 꽁 머니이 과연 또 있을까?


누군가는 이런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깟 개한테 그렇게까지 마음을 주느냐고, 고작 개 한 마리한테 무슨 유난을 그리 떠느냐고.


그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슬롯 꽁 머니가 나에게 주는 만큼 되돌려주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사실은내가 아니라 슬롯 꽁 머니가 나를 키워주고 있다는 것을.


2015년 11월 26일에 태어나 이제는 8킬로그램이 넘는 중형견이 된 재패니즈 스피츠.


내 눈에는 언제까지고 귀여운 아가일

크지만 작은 개


매일 존재만으로나를 구원하는

작고도 큰 강아지


슬롯 꽁 머니야,


태어나주어 고맙고,
내 곁에 와주어 슬롯 꽁 머니.

오래오래 건강하자!




<귀나구 매거진 다른 글 읽기

아래 적힌 매거진 제목을 누르면 모든 글이 모여 있는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귀여움이 나를 구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