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씨 속 슬롯 꽁 머니 하나

잘 익은 감을 먹다가

툭 삐져나온 슬롯 꽁 머니를 쪼개어 보면

그 속에 얌전히 들어 있는

앙증맞은 슬롯 꽁 머니 하나.

장난감인양가지고 놀다

자근자근 씹기도 하지만

이 하찮은 슬롯 꽁 머니에서부터

잎이자라고 줄기가커 간다.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

보란 듯 서 있다.

학창 시절,4교시가 끝나기 무섭게

양은 도시락 뚜껑을 열면

감씨 속 슬롯 꽁 머니처럼

흰 밥 위에 다소곳이 놓여 있던

닳은 슬롯 꽁 머니 한 자루.

늘어 가는 공부량만큼

바빠지던 슬롯 꽁 머니.

조그만 나룻배한 척

밥을 싣고 사랑을 실어

그 길이 반들반들해질 만치

나르고 또 나르는 동안

'나'라는 잎과 줄기도

어느새 쭉쭉 뻗어 나갔다.

잎이 넓은아름드리나무되어

그늘을 드리울 수 있을 만큼이나.

감을 먹다

입 안에 굴러다니는 슬롯 꽁 머니를 꽉 깨물면

그 옛날 미명 속에 시작되던

슬롯 꽁 머니의바쁜하루와

가슴을 뛰게 하던 구수한 밥 냄새가

내 그늘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둥우리를 튼다.

가을이라 감이 제철이다.

누구나 감을 먹을 때 한 번쯤은 감씨를 쪼개 보았을 것이다. 그 안에 슬롯 꽁 머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하얗고 조그만 슬롯 꽁 머니은 배아이다. 씨앗 안에 들어 있는 싹을 말한다. 슬롯 꽁 머니 모양에서 둥근 부분은 나중에 잎사귀가 되는 부분이고, 손잡이는 줄기가 되는 부분이다.

배아는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배젖에서 영양을 공급받아 점점 성장한다.

어릴 때는 감씨 속에 있는 슬롯 꽁 머니이 정말 신기했다. 조그만 모종삽 같기도 하고 슬롯 꽁 머니 같기도 했다.

엄마한테 슬롯 꽁 머니을 꺼내 달라고 하면 엄마는 단단한 어금니로딱하고 큰소리가 날 만큼 힘을 가해 단단한 감씨를 열어젖히셨다. 그리고 요정이 숨겨 놓은 하얀 슬롯 꽁 머니을 꺼내 주셨다.

이 얼마나 즐겁고 신비로운 놀잇감인가.어른이된 지금도슬롯 꽁 머니를열 때면설렘을 감출 수 없다.

감씨 속에 슬롯 꽁 머니이 들어 있는 모양새는, 양은 도시락 속에 밥슬롯 꽁 머니이 들어 있는 모양과 닮았다.

만화가 그려져 있는 타원형 은색 도시락 속에는 윤기 좔좔한 쌀밥이 담겨 있었고, 그 위에는 끝이 포크로 돼 있는 슬롯 꽁 머니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반찬통은 별도였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밥뚜껑과 반찬 뚜껑을 열었을 때, 안 좋아하는 반찬이 들어 있어 실망한 날도 있었지만 슬롯 꽁 머니가 솜씨를 발휘하신 날은 친구들의 부러움을샀기에조금씩 나눠 먹었던 기억이 난다. 볶음밥, 미역줄기볶음, 장조림 등이었을 것이다.

공부가 이어지는 고단한 학교 생활에 지쳐서, 도시락을 먹을 때면 슬롯 꽁 머니가 보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반찬에는 슬롯 꽁 머니 음식 특유의 향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슬롯 꽁 머니를 쪼개어 보면 도시락이 연상되고, 도시락을 생각하면 엄마가 생각 나는 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 가을에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엄마를 그리워해 본다.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카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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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무리하게 시도하지 마시기를 권유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