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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 3녀 중 바카라 에볼루션는 다섯째였다. 할머니 슬하에는 자식이 많았다. 덕분에 장례식장은 많은 조문객들로 인산인해였다. 다른 문상객이 지나가다 복도를 가득 채운 화환과 조문객을 보고 고위공직자가 작고한 줄 알고 느닷없이 들러 할머니의 정체에 대해 물을 정도였다.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 서빙을 하거나 절을 해야 했고, 친척은 물론 바카라 에볼루션와 대화를 나눌 겨를도 거의 없었다.


늦은 밤이 돼서야한산해졌고, 바카라 에볼루션 형제자매들은 그제야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왁자지껄하고 화기애애했다. 그들은 잠깐 동안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추억을 얘기하고는 금방 서로의 근황에 대해 묻고 답했다. 할머니는 오래 아프셨고, 아흔 가까운 나이에 돌아가셨다. 고민수를 포함한 여섯 자식들은 오래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할머니와의 이별이 지나치게 슬프거나 황망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듯했다.


늦은 새벽에야 자리가 파했고, 우리는 대기실에서 잠에 들었다. 침대는커녕 베개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선잠을 자다가 허리가 배겨 눈을 떠 할머니의 영정사진이 있는 거실로 나갔더니 고민수가 홀로 술에 잔뜩 취해 얼굴이 붉어진 채 벽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옥상으로 올라가 바카라 에볼루션를 피웠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이었다. 고즈넉한 새벽, 입김과 더해져 바카라 에볼루션 연기가 풍성하게 뿜어져 나왔다. 바카라 에볼루션를 끄고 뒤를 돌아보니 고민수가 이쪽을 쳐다보며 바카라 에볼루션를 피우고 있었다.흠칫했지만 못 본 체하고 지나치려 했는데 그가 말을 걸었다.


“바카라 에볼루션 피우냐?”

“뭔 상관인데”

“끊어라. 좋지도 않은 거”



둘째 날에는 염습과 입관식이 있었다. 의식이 없는 차가운 할머니의 육신이 내 눈앞에 있었다. 생전 할머니는 정이 많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성격에 화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해 가슴속에 쌓인 것이 많아 노년에 결국 치매 때문에 오래 고생하셨다. 그녀가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을 적에 돌아가시기 전에 자주 좀 찾아뵈라는 바카라 에볼루션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방문해 봐야 알아보지도 못하는데 뭐하러 가냐는 매정한 말로 쏘아붙이고 몇 번 찾아뵙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심장이 뻐근할 때까지 오열했다. 무뚝뚝한 친척 어른들도 차가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저마다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눈물을 쏟았다. 거기서 유일하게 울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건 고민수였다.


그는 평정심을 유지하며 엄마의 차가운 손을 잡고 덤덤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런 바카라 에볼루션의 인간미 없는 모습에 실망하면서도 어쩐지 감탄스러운 감정마저 들었다. 그는 사업이 망해 아파트를 처분하고 낡은 빌라로 도망치듯 떠났을 때도, 그의 친한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추운겨울아파트를 떠나기 전 날 나머지 식구들이 얼싸안고 울어도 그는 무심하게 침대에 누워 코를 골며 잠을 잤다. 그때까지 한 번도 바카라 에볼루션의 눈물을 본 적이 없었다. 참 그 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날 화장터로 가기 위해 새벽 일찍 출발하려는데 지금이 아니면 하루 종일 바카라 에볼루션를 피울 수 없을 것 같아 조급한 마음에 화장실 간다고 거짓말하고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향했다. 하지만고민수가 이미 그곳에서 바카라 에볼루션를 피우고 있었다. 잠깐 고민했지만 아버지와 맞바카라 에볼루션를 피우는 것은 그에게 달가운 상황이 아니면서 동시에 내 도덕적 기준에도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그대로 몸을 돌려 밑으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고민수가 몸을 돌려 이쪽을 바라봐 눈이 마주쳤다.


“엄마가 빨리 내려 오래”

바카라 에볼루션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아침은 먹었냐?"

“새벽 네 시에 무슨 아침이야.”



입관식은 정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고 세 벽은 막혀 있는 작은 방에서 진행됐다. 유리 창 너머에는 할머니의 관이 있었다. 잠시 후직원이 나타나 꾸벅 인사를 하자컨베이어 벨트가 기계음을 내며움직였고 관이 뜨거울 불더미를 향했다. 동시에 천장에서 벽이 천천히 내려오며 통창을 서서히 가렸다. 시꺼먼 벽이 창문을 가리며 방은 점점 어두워졌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울음이 누군가의 마음을 툭 찔러 울음을 터트렸고, 그 울음이 또 누군가의 마음을 툭 찔러 눈물을 터뜨렸다. 모두가 울었다. 허망한 표정으로 그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바카라 에볼루션를 제외하고. 갈색 코듀로이 재킷을 입은 바카라 에볼루션가 가슴에서 이미 터져버린 울음이 눈물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버티고 있었다. 이를 꽉 깨물고, 고개를 천장으로 쳐 들어 새어 나오는 눈물이 다시 역류하기를 기다리면서.


격식 있는 장소에 갈 일이 드문 그에게는 포멀한 옷이 단 한 벌, 이십 년이 넘은 갈색 코듀로이 자켓 뿐이다. 그의 옷장을 열어보면 유행이 지난브랜드에서 창고 정리할때 산 싸구려 체육복만 가득이다. 그래서 그는 경조사가 있으면 매번 선택권 없이 그 옷을 입는데 얼마 전 우연히이모 결혼식을 보고 경악했다. 그 재킷을 입고 있은 바카라 에볼루션 옆에 그의 손등까지 키의 내가 심술 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옷이지만 이십년 전 사진 속 젊은 그는 제법 풍채가 있었다.어린 시절 내게 그의 등은 커다란 담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담장에 올라타 매달리기도 하고 뛰어넘기도 하고 그의 어깨를 밟기도 하며 자랐다. 나는무동을 타고 고민수 어깨 너머의 세상을 보며 자랐다. 그런데조금씩 커가는 내 체구와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눌려 바카라 에볼루션의 덩치는 점점작아졌다.


바카라 에볼루션는 어린 시절 우리 동네천하장사였다.유치원체육대회 때 학부모 씨름대회를 했는데, 바카라 에볼루션와 겨루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바닥에 꽂혔고, 나는 우승 상품으로 연필깎이를 받았다. 모두의 박수 갈채를 받는의기양양한 뒷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나는 그와 목욕탕 가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했다. 그는 별다른 제재 없이 내가 마음대로 냉탕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락해서 좋았지만 그와 서로 때를 밀어주는 시간은 몹시 고통스러웠다.


그는 너무 아프게 내 등을 밀었다.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도 조금만 참으라며 그 커다란 손으로 내 작은 어깨를 박박 문질렀다. 반대로 그의 등판을 미는 것은 몹시 고된 일이었다. 내 체구만한 그의 등판을 밀다가 힘들어 그 자리에서 그만하고 싶다고 엉엉 운 적도 있다. 그러면 그는 껄껄 웃으며 얼른 커서 바카라 에볼루션 등 밀어달라고 했지만 요새는 같이 사우나 가기는 뭔가 겸연쩍고 또 나란히 앉아 등을 밀어주는 것은 그보다 더욱 부끄럽기에 이십 년 넘게 유보되고 있다.


그랬던 그의 등이 그때는 왜 그렇게 작게 보였는지, 둥글게 말린 어깨가 어쩜 그렇게 안쓰러워 보였는지 나도 모르게 그의 날갯죽지에 손을 올렸다.그러자 갑자기 그가 울었다. 벽은 점점 내려오고 있었고, 할머니의 관이 조금씩 불 속에 들어가고 있는 찰나였다. 그는 짧고 강렬하게, 마치 토해내듯.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것처럼 강렬하게 바카라 에볼루션가 울었다.벽이 완전히 닫히고,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잠시 동안 바카라 에볼루션는 그렇게 울음을 토해냈다.


다행히 다른 친척들의 울음소리에 바카라 에볼루션가 우는 소리도 자연스럽게 묻혔다. 나는 울지 않았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에 꾹 참았다. 이내 닫힌 벽이 천천히 올라가면서 조금씩 빛이 새어 들어오자 그는 재빨리 눈물을 훔치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눈이 내리고 있었다. 바카라 에볼루션 형제들은 앞서 걸으며 시답지 않은 정치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방금 어머니를 화장한 사람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저 멀리 아빠가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는데 안 보이는 눈치였다. 아빠 형제들도 주머니를 뒤졌지만 미처 챙기지 못한 듯 보였다. 나는 성큼 다가가 라이터에 불을 켜 아빠가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여 드리고 라이터를 통째로 건넸다.


어른들이 명건이 담배 피우느냐고 핀잔을 줬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바카라 에볼루션는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담배를 연거푸 피우며 형제들과 정치 얘기를 계속했다. 눈이 점점 더 세게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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