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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슬롯사이트

민병식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지금은 없어진 의정부 306보충대에서의 3일밤을 지내고 육군 모사단 훈련소로 배치를 받았다. 신병교육대에서의 훈련은 말 그대로 사회의 때를 벗기는 과정이었으니 끝말은 꼭 '다나까'로 끝내야했고 모든 일상은 훈련의 반복인 그야말로 통제의 연속이었다. 보통 자대 배치가 되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식기는 반납하면 되지만 그 당시 훈련소는 식사가 끝나면 보급받은 식판은 내무반 정해진 장소에 쌓아놓고 공동으로 이용했으며 숟가락은 6주간의 훈련기간 동안 자기가 알아서 닦은 후 자기 관물함에 보관해야하는 구조였다. 어느 날 슬롯사이트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분명 저녁 먹을 때까지 있었는데 그 이 후에 사단이 난것이다. 그건 누군가의 소행이었다.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분명 어떤 놈이 잃어버리고 취침 시간에 내 슬롯사이트훔쳐갔을것이라는 건 합리적 의심이었다. 불침번을 교대로서니 밤에 훔쳐가는 것도 어려울터 범인은 그날 불침번 선 놈중에 하나라고 추측을 할 뿐이었는데 cctv도 없었던 시절이니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었다.


슬롯사이트 잃어버리면 밥을 굶는다. 왜나면 숟가락과 젓가락을 따로 주는 게 아니라 포크와 숟가락 겸용, 일체식 숟가락이었기 때문이다.어쩔 수 없이 남들 밥먹을 때 기다리다가 먼저 식사가 끝난 동기에게 슬롯사이트 빌려 식사를 해야했다. 그러나 마냥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무슨 대책을 세워야했다. 소대장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지난 번에 어떤 놈이 슬롯사이트 잃어버렸다고 용기있게 말했다가 빠졌다고 개맞듯이 얻어터지는 것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식판 닦는 시간이 되었다. 식판을 닦는 척 눈치를 보다가 먼저 슬롯사이트 닦은 후 옆에 내려놓은 어떤 녀석의 슬롯사이트 슬쩍 하였다. 은근 슬쩍 자리를 옮겨 손잡이 쪽을 시멘트 바닥에 벅벅 갈아 표시를 한 후 옆에 있는 한 녀석에게 슬롯사이트 찾았다고 설레발을 친다. 슬롯사이트 잃어버린 녀석은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이 녀석 저녀석 붙잡고 숟가락 못봤냐고 울상이다.


"너 슬롯사이트 잃어버렸다너니 어디서 났냐?"


"응 다시 찾았어 관물함 밑에 떨어져 있었어. 내꺼 맞아. 나만의 표시가 있거든"


혹시나 해서 내 것을 조사해 보았지만 방금 전 '벅벅' 갈아만든 나만의 표시를 보여준 덕에 혐의를 벗어난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그 놈도 지난 번 나처럼 슬롯사이트 빌려 사용한다. 오전훈련이 끝나고 잠시의 휴식 후 점심식사를 위해 출발 중 소대장실 앞 선반에 숟가락이 하나 놓여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숟가락은 우리의 숟가락과는 다는 일반형 숟가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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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사이트 잃어버린 녀석은 눈을 희번덕 거리며 좋아라하고 챙긴다.


"아무 슬롯사이트이면 어때, 밥만 먹음 되지. 았싸!"


맛나게 점시을 먹고 식판을 닦고 있을 때 갑자기 다른 소대 소대장이 나타나 그 슬롯사이트에게 묻는다.


"야!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네. 제가 슬롯사이트 잃어버려서 찾고 있던 중 이게 내무반에 있기에 사용했습니다."


'야 임아! 이거 니네 소대장 슬롯사이트이야. 너 때문에니 니네 소대장 점심을 굶었잖아."


그 녀석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무차별로 사정없이 두드려 맞았고 그 대가로 저녁에 슬롯사이트 지급받았다. 얼마나 맞았던지 벌에 쏘인 듯 퉁퉁부은 입술 사이로 담배를 밀어넣으며 내뱉던 그 녀석의 말이 떠오른다.


"아! x발! 내가 소대장 슬롯사이트인지 중대장 슬롯사이트인지 어떻게 알아, 거기 놔둔 새끼가 잘못이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대했다는 그 슬롯사이트은 자신을 죽도록 팬 그 소대장보다 몇 살이나 나이가 많았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일정한 나이가되면 젊은이들이 의무적으로 슬롯사이트를 간다. 자신의 청춘을 담보로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대다수가 죽도록 싫지만 가는 것이다. 황금보다 더 귀한 젊음을 나라를 위해 내놓는 청춘 들을 생각한다면 그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일 것이다. 최근 우리의 양성평등의식은 이전과는 달리 매우 높아졌지만, 정책에 대한 생각은 남녀가 나뉘어 있다. 남성들은 양성평등정책이 여성의 입장만을 대변한다고 역차별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여성 들은 여전히 남성중심의 사회라고 하며 끊임없이 여성을 위한 나은 제도를 요구한다. 결국은 여성도 슬롯사이트를 가야한다느니 남성이 슬롯사이트가서 하는게 뭐가 있느니 서로 쌈박질이다.


누가 군대를 가는가가 중요하기 보다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나 갈만한 곳인가가 중요한 문제인듯 싶다. 모두 자신의 생각과 입장이 다르다. 사랑하는 아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기 위해 딸만 낳을 수는 없는 일아닌가. 의무병은 남자고 군인의 어머니는 여자다. 그 것 하나만으로도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아무리 군대가 좋아졌다고 해도 입대를 앞두고 있는 청년들의 마음이 숟가락을 잃어버리고 얻어 터지던 동기녀석의 하소연 할곳없는 마음이어서는 나라를 지킨다는 자부심이나 책임감 보다는 강제적인 수용생활 같을 것이다. 억울할 것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사회의 슬롯사이트다.


아장아장 걸으며 아빠 하고 달려오던 아들이 어느새 아버지보다 머리하나 만큼 클 정도로 부쩍 자라 아이가 벌써 대학교 2학년, 올해 2월에 군대를 간다. 기특하기도하고 뿌듯하기도 하지만 입대할 날이 머지 않았음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물고 빨고 애지중지 키운 귀한 아들, 아무리 요즘 군대가 월급도 오르고 18개월로 단축되었다고 하나 가고 싶어 하는 젊은이는 거의 없을 것이고 군대는 군대일 것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 일생일대의 커다란 슬롯사이트를 남겨놓은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벌써부터 층층이 걱정의 계단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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