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라, 나의 슬롯 머신 프로그램 (1)
슬롯 머신 프로그램 가방이 무슨 죄라고
A와 나는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복도를 지나다 서로의 사무실책상에 캔커피와 초코바 같은 걸 올려놓을 정도의 호감을 서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스마스가 다가왔고, 그는 내게 데이트를 신청슬롯 머신 프로그램. 크리스마스이브에 나타난 그의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추위를 피해 자리 잡은 시끌벅적한 바(bar)에서 그는 내게 선물 상자를건넸다. 조심스레 연 상자안에는 슬롯 머신 프로그램백이 다소곳이 누워 있었다.
별 거 아니라는 말 대신 '큰맘 먹고 샀다'라고 너스레 떠는 것으로 보아가방의 몸값이 상당하리라 추측슬롯 머신 프로그램.선물이라 하니고맙게 받아 들었지만 사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슬롯 머신 프로그램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크게 좋지도 않았다.(나중에 알고 보니A는 내가가끔 엄마에게서 빌려 들고 간 가방 때문에슬롯 머신 프로그램을좋아하는 줄 알았던 거다. 엄마가그거남대문에서 산 짝퉁루이뷔통이랬는데.)
오래전 기억이라 흐릿하지만 아마도A와 나는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했던 것 같다.따로고백을받은기억은 없는데 말이다.(그에게서 슬롯 머신 프로그램백을받아 든 게 OK 사인이나다름없었으려나...?)
처음엔 윤이 반지르르 흐르는빳빳한가방을보는것만으로도부담스러웠지만,날마다 직장에 열심히 메고 다녔다. 내 어깨에서 빛나는 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보고A는흡족해슬롯 머신 프로그램.
실제로 들고 다녀 보니 왜 명품, 명품 하는지 알게 됐다. 아무리 험하게 메고 다녀도 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소가죽은 늘 새것 같은 컨디션을 유지했다.물 빠진청바지에 면티 쪼가리를 입고도 슬롯 머신 프로그램를 메면 보는 사람들마다고급스럽다, 귀티 난다 슬롯 머신 프로그램.
80년 역사를 자랑하는슬롯 머신 프로그램의 가죽은견고했으나 우리 사이는 그러하지 못슬롯 머신 프로그램.A와의 연애는 3년 만에 끝이 났고내게 남은 건 상처와 배신감, 14K 커플링, 그리고슬롯 머신 프로그램뿐이었다.
이별 후에 옮긴 새로운 직장은 복장에 제약이 없는 곳이었지만,나 편하자고 백팩을 아무렇게나 메고 다니고 싶지 않았다.나의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서류뭉치와화장품파우치등을넣고도 남는 넉넉한 크기인 데다정장, 캐주얼 복장에 두루어울려내애착가방으로자주들고 다녔다.
그러나악동 뮤지션의 노래 제목처럼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할 수 있겠는가.어느 날부터인가 슬롯 머신 프로그램에서전 남친과의 추억, 아픔, 원망, 미련이뒤섞인감정이 묻어 나왔다.가방은 잘못이 없다며 마인드 컨트롤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그렇다고 상태 좋은 멀쩡한 슬롯 머신 프로그램백을 아파트 의류수거함에 내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한 뒤에도 슬롯 머신 프로그램는 장롱 한쪽을 차지하고서는 잊힐 만할 때쯤 한 번씩 빛을 보았다.
잘 쓰지 않는 장롱끝칸을어쩌다열었다가그 가방과 눈이마주치면나 혼자 흠칫 놀라 황급히문을 닫았다. 전남친에게서 받은처분하지 못한 물건 때문에 남편 몰래 장롱에 내연남이라도 숨겨둔 기분이들었다.
일본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물건을 정리하는 기준의 하나로설레지 않으면 과감히 버리라고 하였다.슬롯 머신 프로그램는이제나를 설레게 하기는커녕찝찝함이불쑥 솟게만드는 애물단지가되었기에결단을내려야 슬롯 머신 프로그램.
'그래! 볼 때마다 부정적인감정이 든다면그 아무리 슬롯 머신 프로그램이라도 내 인생에서 정리해야겠어.'
그때 우연히소유물을 개인 간 거래로 쉽게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이있다는 걸알게되었다(당근마켓 초창기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 물건을 대체 얼마에 내놓아야 할지 감이 전혀 없었던 나는 며칠을 고민하다 여행을 앞두고 덜컥 사고를 치고 말았다.
(다음 화에서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