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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꽁 머니, 얼마나 준비했어?

정화는 슬롯 꽁 머니가 "나"라고 했다.

나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슬롯 꽁 머니 섬세하고도 꽃봉오리같은 여자였다. 슬롯 꽁 머니 새침하지도 않았고 계산적이지도 않았다. 내가 며느리가 되기 이전부터 봐왔던 슬롯 꽁 머니 연고지도 없던 천안에 고깃집을 열어, 그 다정함을 음식 속에 녹여내고 있었다. 정화의 식당은 읍내에서 뚝 떨어져 건물 하나만 우뚝 서있는 불모지였지만, 슬롯 꽁 머니 포기하지 않았고 그의 성품을 알아챈 많은 이들이 발걸음을 하며 맛집이라는 성과를 내게 되었다.


정화의 식당에 들릴 때마다 나는 더불어 고기를 얻어 먹고선 정화의 가게일을 도왔다. 동시에 슬롯 꽁 머니 며느리가 되어도 괜찮은지 조심스레 살펴보고 있었으리라. 정화의 바람대로 나는 세상 물정에 휩쓸리지 않은 사람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 심지어 식당 이모들과 어울려 화투를 칠 줄 모르며, 맡은 일은 군말없이 야무지게 해냈다. 그런 내가 좋았는지, 슬롯 꽁 머니 집에 가는 길에 맛있는 걸 사먹으라며 꼭 오만원을 주머니에 찔러 넣어 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슬롯 꽁 머니의 아들과 결혼을 했다.


이제와서 하는 소리지만 슬롯 꽁 머니의 아들과 결혼하기까지는 많은 부침이 있었다. 반대는 온전히 내 친정쪽에서 일어났다. 나는 알콜의존증과 알콜중독증 사이를 오가는 친어머니를 이겨낼 힘이 없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어머니의 학대,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를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나로써는 이 반대를 무릅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친어머니의 반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슬롯 꽁 머니가 너무 생글생글 웃는다는 것이다. 슬롯 꽁 머니의 태도가 매우 거슬렸고, 당신의 아들이 결혼한다는 사실에 매우 들떠있는 모습이 꽤 짜증났던 것.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반대 속에서 나는 자주 쓰러졌고 친어머니의 기세에 눌려 차마 대항하지도 못했다.


나는 친어머니의 주먹에 얼굴을 다쳤고, 친동생의 발길질에 복부를 웅크렸다. 그리고 그 날밤 나는 곧장 짐을 싸고 집에서 달아났다. 순전히 내 목숨을 위해서였다. 며칠 뒤에 슬롯 꽁 머니의 아들을 데리고 집을 다시 찾았고 그와 함께 내 짐을 죄다 빼내어 나갔다. 내가 짐을 싸고 있을 때 친어머니는 집 한켠에서 내 물건들을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집어넣고 있었다.


정화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는 비맞은 유기견같은 모습이었다. 슬롯 꽁 머니 나를 감싸안았고 나는 거의 울 뻔했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건 나를 안아주는 정화의 단단한 손압을 느끼면서 내 인생도 거세게 움켜쥐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어서였다. 슬롯 꽁 머니 비어있는 방 한 칸을 내어주었고, 이후로 나도 새 학기를 맞이하면서 기숙사를 들어가게 되었다.



정화가 우리의 결혼을 결심하게 된 데는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슬롯 꽁 머니를 제대로 챙겨서 들어오는 며느리를 맞이하고 싶었겠지만, 불행하게도 정화의 예비 며느리는 책이 가득한 박스 10개와 노령견 한 마리를 가져왔다. 늙은 개는 정화를 볼 때마다 짖었고 책 박스는 집에 수북히 쌓여 있었다. 이윽고 겨울방학을 맞 은 내가 정화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화는 넌지시 결혼 날짜를 물어 보았다.


"크리스마스, 어때?"

"크리스마스요? 그날에 결혼하는 사람도 있어요?"

"있겠지. 지구 상에 그런 사람 한 명 없겠니? 시간이 너무 늘어지기 전에 결혼을 하자꾸나."


슬롯 꽁 머니제주도 오름에서 만세를 외치는 슬롯 꽁 머니



나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친정에서 반대하던 결혼을, 슬롯 꽁 머니와 함께 밀어붙여도 되는 걸까? 나의 수중에는 겨우 2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소액만이 들려 있었다. 나는 솔직하게 슬롯 꽁 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돈이 많이 없어요."

"안다."


안다, 라는 것은 내 사정을 안다는 것일까 아니면 앞으로의 고난을 안다는 것일까. 슬롯 꽁 머니 말없이 내 손을 꼭 쥐었다.


"어머니, 슬롯 꽁 머니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어요."

"안다."


슬롯 꽁 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슬롯 꽁 머니가 없어서.... 저는 책 밖에 없어요."

"안다."


슬롯 꽁 머니 뭉근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정화가 안다는 것들에 부끄러워 낯을 붉혔다. 슬롯 꽁 머니 내 등을 쓸어댔다.


"그래도 하자. 결혼. 슬롯 꽁 머니는 너라고 생각하마."


정화의 말에 눈앞이 뿌옇게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슬롯 꽁 머니 빙긋 웃었다.


다음날, 주방에 걸린 기다란 달력에는 크리스마스에 "결혼식"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것도 진한 빨간색으로. 나는 슬롯 꽁 머니가 없어 어쩐지 허전한 신혼 살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정화는 슬롯 꽁 머니에 대한 말을 일절 꺼내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화는 우리의 결혼식을 교회에서 간소하게 드려지는 성례식으로 진행하자며 너무 번거로운 절차를 갖지 말자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이미 획일화된 결혼식을 올리는 건 싫다고 하여, 전통혼례를 올릴 지 아니면 색다른 스몰웨딩을 올릴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때문에 정화의 말에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결혼식 당일, 나는 하얀색 숏 원피스와 함께 핑크코트를 걸쳤다. 슬롯 꽁 머니의 아들은 멀쑥한 정장을 차려 입었다.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서 교회 한가운데를 걸어갔다. 축복이 넘쳐나는 이곳에서, 가까이 앉은 슬롯 꽁 머니가 훌쩍이는 모습이 얼핏 비쳤다. 나는 슬롯 꽁 머니를 바라보면서 슬롯 꽁 머니에게 진짜 잘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모래성같은 그 마음을, 나는 금세 무너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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