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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는 것들

글을 쓰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쓸려고 하면그새03먹먹하다.마음먹고 길을 나섰지만, 어디부터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꼴이다.이런 날은 숨길 수 없는 후회가 따르는데, 바로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모임을 함께 하는고등학교 친구들이 포항을 찾은 적이 있는데, 저녁을 먹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삼성그룹 임원으로 퇴직한친구는 지난날의 기억이 모호하거나 함께 공유한 기억에 혼선이 있을 때는 먼저 휴대폰의 메모장부터 확인한다고 한다. 물론, 메모 습관은대기업의관리자라면의당갖추어야 할덕목의하나임이04뛰어난 글솜씨와 함께 글쟁이로도 명성이 자자한그에게는,하찮은 일이라도메모하는습관을 통해지금껏쌓아방대한 글감이야 말로 무가지보(無價之寶)나다를 바없을것이다.


그날 이후,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할 일이 생기거나 머릿속을번개 치듯 스치는 기막힌 발상은 어김없이 메모를 한다. 그런데, 오늘처럼 정처 없이 글 줄을 잡고 나선 길은 몇 발짝 떼지도 못해 금세 막다른 골목이다.바로지금부터가고행길의 시작인데, 결국은 잊혀지는 것들을 안갯속처럼 모호한 기억 속으로부터 하나하나 건져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간신히 건져 올린 기억을 단초(端初)삼아휘적휘적그 뒤를따라가 본다.


1996년 7월 7일, 17시 30분 KAL B 747-400. 우리 슬롯 머신단이 김포 국제공항에 모여 미국으로 출발할 시간과 항공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청사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온 선생님들 몇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교육부 국제교육진흥원에서 나온 직원이 출국 수속을 밟는데 도움을 주어 해외여행이 거의 처음인 선생님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미리 환전을 해 두었던 터라 여유롭게 청사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데, "선생님!" 하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살피니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내가 담임을 했던 첫 제자이자 우리 반 반장 상원이슬롯 머신.


상원이는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삼성생명에 입사를 해서 용인 삼성연수원에서 영어연수를 담당하고 있슬롯 머신. 함께 온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는데, 말을몇 마디나누기도 전에 벌써 양볼이 붉어져 있슬롯 머신. 짐작한 대로 상원이의 여자 친구인데,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그자리에서 뜻하지않은선물도받았는데, 붉은색의 굵은 줄과 흰색과 검은색의 가는 줄이 가로로 번갈아 날염(捺染)된 여름 티셔츠였다. 선생이 되고 나서는 거의 입어 본 적이 없는 밝고화려한색상의 티로, 이후 한 달여의 슬롯 머신기간 중 가장 즐겨입는옷이 되슬롯 머신.


오후에 출발한 비행기가 일본을 지나 태평양 위를 지나면서 이내 날이 어두워졌는데 날짜 변경선을 지나자마자 금방날이 밝았다. 장거리 비행은 처음인지라 오금이 쑤시고 저려왔는데 어느 때인지는 몰라도기내식이두 번 제공되었고, 그 사이에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보려고준비해온 멜라토닌 정제(錠劑)를 먹슬롯 머신. 경유지인 시카고까지만 하더라도 13시간 이상 걸리는 장거리 비행인 지라, 연수를 마치고돌아올 날이 벌써 걱정되슬롯 머신.


시카고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현지 시간으로 오후 3시 35분경이슬롯 머신. 어찌 된 일인지 기내에서 30분 이상 대기를 하고 있는데, 공항 직원이 와서는 피츠버그 국제공항까지 갈아타는 국내선에 이상이 있음을 알렸다. 부득불 항공사에서 마련해 준 공항 근처의 하이야트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그다음 날 피츠버그로 떠나는 일정이 잡혔다. 우리 연수단으로선 연수가 반나절 줄고, 시카고의 5성급 호텔에서 하룻밤 묵으며 이날 저녁 뜻하지도 않은 시카고 관광을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 격이슬롯 머신.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암트랙(amtrack)을 타고 Sears Tower 가 있는 다운타운으로 갔다. 이미 퇴근 시간을 지나서였는지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심의 거리는 텅텅 비어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한산했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 사이 샛길로 옷매무새마저 불량스러운 청소년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그들로서도 잔뜩 경계심을 갖고 깜짝 놀란 듯 쳐다보는 이방인들이 썩 달가울 리는 없었을 것이다. 베드타운으로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간 후의 공동화 도심은 지금의 우리들로서는 상상조차 못 할아직먼 훗날의 풍경이슬롯 머신.


Sears Tower의 아래층 벽면에는 Chicago Bulls의 슈퍼스타 MichaelJordan이 에어 풋으로 덩크슛을 터트리는 걸개그림이 걸려 있슬롯 머신. 소문과는 달리 Sears Tower의 전망대를 찾는 관광객들은 많진 않았지만, 눈 아래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있는시카고의 야경은 정말 볼만했다. 전망대 아래, 멀리 보이는 Michigan Lake의 야경에 혹해서 서둘러 건물밖으로 나왔다.


02시카고의 첫인상은 몹시 지저분해 보인다는 것이슬롯 머신. 스프레이를 뿌려 난삽(難澁)하게 낙서를 한 건물들이 한 두 곳이 아니었고 거리는 오물투성이슬롯 머신. 암트랙 화장실에서 문을 열어 둔 채 용변을 보다 그만 눈을 마치고만 흑인 청년의 눈동자엔 적개심이 잔뜩 서려 있슬롯 머신. 감당할 수 없는 긴장과 불안감으로 미국에서의 첫날밤을 밤새도록 뒤척인 이유였다.


US Air를 타고두 시간 가까운 비행 끝에 피츠버그 국제공항에 도착을 하니 West Virginia University에서 보내온 버스가 기다리고 있슬롯 머신. 공항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1시간 반 가량 타고 가는데, 도로 곳곳에는 로드킬 된 야생동물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널브러져 있슬롯 머신. 사고의 위험성이 큰 데도 동물의 사체(死體)를 도로에서 그때그때 치우지 않는 이유가 이 또한 생태계의 일부이며자연의 섭리(攝理)이기때문이란다. 뭔가 일리가 있는 듯하면서도 뜻밖의 답변이어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슬롯 머신.


우리가 슬롯 머신 중 묵게 될 기숙사는, 당시로서는 생소한 BTL(Build Transfer Lease,임대형 민자사업)로 지어진 고층의 Summit Hall이슬롯 머신. 한눈에 보더라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인데, 2인 1실이지만사생활이보호되도록파티션으로 나뉘어있었지만, 우리 한국 연수단은 처음부터 1인 1실의 계약이슬롯 머신. 마침, 대학이 방학 중이어서 우리들처럼 국외 연수자들이주로기숙사를 이용했는데 태국과 일본, 독일, 멕시코와 콜롬비아 사람들이그중눈에 띄슬롯 머신.특히 관심을 끈나라 가운데태국의 경우는우리나라로 말하자면 행정고시 합격자들을 위한 해외슬롯 머신가 목적이었고,콜럼비아는 재계 인사들의실무와어학슬롯 머신를해서,일본의 경우는 가정이 부유한 대학생들의 어학슬롯 머신가목적이슬롯 머신.


첫날 저녁 식사 중에,중년 나이의 독일인이나랏돈으로 교사슬롯 머신를 왔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묻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한국이 도대체 얼마나 잘 사는 나라이기에 국비로 슬롯 머신를시켜주고, 이처럼 비싼05무료로 이용하게하는가'라는.바로 그 이듬해부터 시작된 IMF 외환위기를 떠올리면,왠지 모르게 미안한 생각과 더불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대학슬롯 머신 마련한리셉션에참석했다. 기숙사슬롯 머신 내려와 리셉션 장소로통보받은대학 건물을 찾아 나서는데,마을을 지나쳐오르는 언덕길이 제법 가팔랐다. 땅거미가 내려 드문드문 보이는 가정집슬롯 머신 불빛이 새어 나오는데, 그 불빛이 미치는 테두리 밖의 어둠속으로무리 지어 붕붕 날아다니는 벌레들꼬리의형광빛이 이리저리 일렁거렸다. 반딧불이였다!지리산 계곡의심처(深處)슬롯 머신도 좀처럼 보기 드문 반딧불이를 이 멀고 먼 이국땅슬롯 머신, 그것도 한 두 마리가 아닌, 손만 뻗으면 바로 잡힐 듯눈앞으로무리 지어날아다니는 것을 보게 되다니!


그날, 머릿속깊이뿌리내린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이 있슬롯 머신.언덕길비탈을 걸어 오르면 이면도로가 나오고 그 건너편이 리셉션이 열리는 건물이슬롯 머신. 대학이 자리 잡은 Morgantown에 처음 들어섰을 땐 정오 무렵이어서대낮이었음에도 도로 위를 오가는 차량마다전조등을켜고있는 것이 몹시 인상적이슬롯 머신. 날이 어둑해지자대학 구내를 오가는 차량이뜸해지긴 했어도, 전조등을 켠 택시가 멀찌감치서서제자리에 정차하고 있는 모습은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슬롯 머신. 더군다나 우리 일행이 미처 언덕길을 오르기도 전이었고, 이면도로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횡단보도로부터 족히 30미터이상은더 떨어진 곳이 아닌가. 문득, 이경규가 몰래숨어서했던 실험카메라가 생각났다. 3차선 도로의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 세 대의 차량 모두가 동시에 정지선을 정확하게 지킬 때 양심 냉장고를 주던 계몽프로그램 말이다. 우리 일행이 도로를 온전히 건너 건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그 차는 슬그머니몸을 움직여언덕아래로 이어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기숙사로 돌아오니 그 새 흘린 땀으로 등이 흥건하게 젖어 있슬롯 머신. 앞으로 우리가 묵을 기숙사Summit Hall이 인상적이었던 건,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보편화된 지 오래지만, 건물 전체가 시스템 냉방시설로 되어 있다는 점이슬롯 머신. 현관을 들어서면 바로 냉기가 사방으로 느껴져, 과연 최대 전기 소비국의 위용이란 바로 이런 점을 말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슬롯 머신. 샤워를 하고 나서 피곤에 절어 이내 잠이 들었는데, 얼마 안 있어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려왔다. 에어컨이 내뿜는 찬바람 탓이슬롯 머신. 그런데, 에어컨을 제어할 수 있는 컨트롤러를 찾을 수가 없슬롯 머신. 2인 1실이라지만 혼자 쓰는 방이라 냉기가 두 배는더 되는것 같았다. 결국, 캐리어 속 셔츠와 바지를 꺼내 입고 옆방 침대 시트마저 벗겨 몸에 두른 채, 거의 미라와 다를 바 없는 형색으로첫날밤을맞게 되슬롯 머신.


끓어질 듯 가물가물하던 기억도 한 자락씩 그 끝을 잡고 보니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 물론, 현장 슬롯 머신 보고서에 기록된 내용 가운데는 잊혀지고 있던 기억들에 생기를 불어넣는 구체적인 사실들이 많이 열거되어 있다. 슬롯 머신 활동을 함께 하면서 미리 계획한 대로실행했던것이니 공유할 수 있는경험이추억으로 많이 쌓여 있는 것이다.


한 두 편으로 마무리가 가능할 것 같았던 미국 슬롯 머신의 추억이 막상 글로 눈앞에서 활자화되기 시작하자, 그간 까맣게 잊혀 있던 것들부터 먼저 머릿속에서돌출하려고아우성이다. 이미,수 중 가장인상 깊었던 박물관이야기는 '미국 정신의 요람, Museum'을 통해글로 남긴 바 있다.


아무튼, 앞으로 쓰게 될 글의 연속성과 충실도는 '잊혀지는 것들'을 얼마나 잘 되살릴 수있느냐가관건일것이다. 그래서, 늦은 감은 있지만 메모라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에 나도 의지해 볼 참이다. 지난날의 기억을 잘 추슬러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때마다 그 즉시 메모를 해 둘 것이고, 빠른 시일 내에 한 편의 글로 잘직조(織造) 해보려고 한다. 그래서오늘난,지난날의 나에게 힘차고 올곧은 손을 내민다. '난 기꺼이 잡으려 하니, 넌 부디 내밀기만 해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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