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태어나서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대전을 떠나본 적이 없는 대전토박이셨다. 교직생활도 대전에서 시작하셔서 대전에서 끝내셨으니 나는 대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전학은 커녕 슬롯 꽁 머니도해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초등학생 때 학급에 가끔 오는 전학생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아이로 보였다.나도 아버지처럼대전에만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대전에서 서울, 서울에서 제주도, 제주도에서도 서귀포에서 제주시..... 2년에 한 번씩은 슬롯 꽁 머니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은 슬롯 꽁 머니를 굉장히 번거롭고 귀찮은 일로 여긴다.
하지만나는 슬롯 꽁 머니 설렌다.
아무 것도 없는 깨끗하고 텅빈 공간을 내 슬롯 꽁 머니대로 채워넣는 것도 재미있고,무엇보다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롭게 시작한다는 기대감과 에너지가 느껴져 좋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가는 것도 재미있다.또한 나에게 슬롯 꽁 머니는 집을 옮기는 단순한 의미가 아닌 묵은 짐을 한 번 크게 덜어내고 주변을 가볍게 만드는 하나의 의식이다.2년 전 제주도의 타운하우스에서 지금 사는 아파트로 슬롯 꽁 머니를 올 때 주변 사람들이 한결 같이 한 말이 있다.
"이 많은 짐이 슬롯 꽁 머니 들어가?"
그도 그럴 것이 50평이 넘는 타운하우스에정원을 관리하던 잔디깎기를 비롯한 수많은도구들, 수영장, 캠핑장비, 주말마다 고기파티를 할 때 썼던 웨버, 야외탁자......이런 물건들을 30평대 아파트에 넣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서 넉넉하게 살고 있다. 오히려아파트에서 제공된 팬트리나 붙박이장 공간이 여유 있게 비어 있다. 아파트로 슬롯 꽁 머니를 하기 몇 달 전부터마당에 있던 물건들은 대부분 당근마켓으로 처분하거나, 과감하게 버렸던 결과이다. 짐을 정리할 때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생각이 있다.
'이거 언젠가는 쓰지 않을까?'
혹시 이러한 슬롯 꽁 머니이 들었다면 장담한다. 그 물건은 절대로 쓰지 않는다. 무조건 버려야 한다.
슬롯 꽁 머니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은별로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잘 사고, 그 물건을이고지고 다닌다. 타운하우스에 살 때 마당에 수영장을 설치한 적이 있다. 그때는 마치 수영장이 없으면 전원주택에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수영장에 아이들이 들어가 논 것은 처음 설치했던 날과 손님이 왔던 날 딱 두 번이었다. 아파트로 슬롯 꽁 머니를 할 때 버리기가아까워 차 트렁크에 매일 싣고 다녔었는데, 어느 날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지?' 라는 생각이 들어 곧장 분리수거장에 버리고 왔다. 그러자 낑낑대며 움직이던 자동차가 갑자기 쌩쌩대고(물론 내 느낌이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당장 내일 슬롯 꽁 머니를 해도 가볍게 떠날 수 있도록 집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수영장을 처음 설치했던 날
몇 해 전,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대전집을 정리한 적이 있다. '20평대의 작은 아파트에서 짐이 나와봤자 얼마나 나오겠어?'라고 슬롯 꽁 머니가 끊임없이 나오는 짐에 나뿐만 아니라 이삿짐센터 사람들도 경악을 했다. 결국 계약상의 금액보다 웃돈을 주고 나서야 짐을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시 느꼈다.
'한 곳에 오래 사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구나!'
여러 직업중에 그래도 안정적이고 변화가 적은 직업이 교사라는데,
슬롯 꽁 머니 어쩌다 역마살을 타고나서 나이 40이 넘어서 제주도까지 내려오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이렇게 피곤하고 번거롭게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덕에가볍게 살고 있는 것 같아 위안을 가져본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슬롯 꽁 머니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슬롯 꽁 머니는 필요치도 않은데 무겁게 끌고만 다녔던 물건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