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 산책로에 슬롯사이트 볼트이 다 졌다. 드문드문 한두 송이가 남아있을 뿐이다. 봄에 슬롯사이트 볼트 새싹이 뾰족뾰족 나올 때부터 마음을 설레게 했다. 얼마나 흐드러지게 피어 나를 기쁘게 해 줄까, 얼마나 또 환하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까. 새싹이 올라올 적엔 꼭 망초 풀 같은데, 오월이 되면 벌써 한두 송이 피기 시작해, 여름 내내 천변을 노란 꽃 대궐로 만드는 꽃, 슬롯사이트 볼트.
사십 대 후반, 완주군에 있는 모 대학에 강연 요청을 받고 갔다 오는 길이었다. 불현듯 중슬롯사이트 볼트 때 각별하게 지내던 후배 ‘옥’ 이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 ‘불현듯’이다. 그렇다곤 해도 그 ‘불현듯’이라는 게 전혀 마음에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실행하지 못하고 수십 년 세월을 흘려보냈다. 가끔 전화를 통한 목소리로만 그리움을 서로 달래며. 마침 지나는 길이었다.
옥이가 일하는 곳은 면소재지에서도 한참 들어갔다. 옥이는 마침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꼭 보고 가라는 거였다. 일하고 있는 곳의 위치를 알려주었지만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물어물어 찾아갔다. 몇 번 차를 돌렸고, 몇 번 이게 맞는 길일까 반신반의했다. 오로지 옥이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포기하지 않고 산속으로 난 조붓한 편도 일 차선 길을 오르고 내리며 찾아갔다. 옥이가 일하는 곳 앞에 다다라 차를 세우고 보니, 앞이 온통 슬롯사이트 볼트 꽃밭이었다.
슬롯사이트 볼트는 중학교 1년 후배다. 면에 있는 작은 중학교여서 한 학년에 반이 두 개밖에 없었다. 전교생이라고 해봤자 여섯 개 반이니 서로 잘 알았다. 슬롯사이트 볼트는 중학교 때 유난히 나를 따르던 후배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끔 손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쌓아갔다. 한 학년 아래인 슬롯사이트 볼트는 동생이 되고 나는 언니가 되어 자매처럼. 알고 보니 슬롯사이트 볼트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생일이 두 달 늦었다. 친구로 지내자고 했지만 슬롯사이트 볼트는 안 된다며, 깎듯이 언니 대우를 해주었다.
우리의 가정형편은 비슷했다. 나는 아버지가 안 계셨는데, 슬롯사이트 볼트는 어머니가 새엄마였다. 가족의 결핍된 애정을 서로 조금씩이라도 그렇게 채워 나갔던 걸까, 소녀 적 감성 때문이었을까, 우리의 우정은 주위 친구들이 모두 알 정도였다. 점심 먹고 난 후에 우린 학교 운동장 느티나무 아래 있는 의자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 서로에게 있는 것을 나누기도 했으며, 막연한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인생에서 이별과 만남은 필연적이지 않던가. 내가 졸업한 후 우리는 헤어졌고 편지로 우정을 이어갔다. 만나지는 못했다. 지금처럼 교통편이 좋은 게 아니었고 나는 벌써 객지로 나가 산업현장에서 일하며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도 허덕이느라, 가끔은 슬롯사이트 볼트를 잊기도 했다. 또 훌륭하게 되지 못해 떳떳하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슬롯사이트 볼트가 보내는 편지에 답장을 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모든 게 미숙한 나였다.
몇 년이 지나 간신히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슬롯사이트 볼트가 학교로 찾아왔다. 졸업한 후 3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때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옥에게 꼭 진학하도록 강권했다. 옥은 울었다. 그럴 형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니 같은 열망이 나는 없어. 꼭 공부를 해야 해?” 눈물 흘리며 말하는 옥에게 꼭 그래야 한다고 강력히 말하는 내 목소리에도 물기가 어렸다. 갓 스무 살인 우리는 그렇게 세상의 험한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다음 해, 슬롯사이트 볼트가 찾아왔다. 슬롯사이트 볼트도 우리 학교에 입학했던 것이다. 우리 학교는 진학 못한 학생들을 위해 고등학교에 부설된 학교였기 때문에, 누구라도 의지만 있으면 들어올 수 있는 학교였다. 슬롯사이트 볼트와 나는 손을 맞잡고 콩콩 뛰며 반겼다. 잘했다고, 이제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자고, 서로 격려했다. 우리는 학교가 파한 후 가끔 같이 풀빵을 먹었고 종로 거리를 걷기도 했다.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불과 반년 후, 내가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바람에 우리는 또 헤어졌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삼 년쯤 지났을까. 슬롯사이트 볼트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결혼식 날 본 슬롯사이트 볼트는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잘 살아야 한다며 손을 잡자, 언니보다 먼저 결혼해서 미안하다며 환하게 웃던 슬롯사이트 볼트. 가끔 전해주는 결혼생활은 행복한 듯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내 삶이 지난해서 그랬을까, 나는 가끔 슬롯사이트 볼트를 잊었다. 그렇게 흘러간 세월이 이십 년이 넘었다. 세월처럼 야속한 게 또 있을까. 편지에서 휴대전화로 소식을 전할 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옥이를 기다리며 그 회사 앞 꽃밭에 핀 슬롯사이트 볼트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옛날 일이 하나 둘 떠오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옥이는 얼마나 변했을까. 나는 또 옥에게 어떻게 보일까. 노랗게 핀 슬롯사이트 볼트이 바람이 한들거리듯 내 마음도 한들거렸다. 그러다 슬롯사이트 볼트에 매혹되어 무념하게 꽃만 보고 있었다. 노란색은 마음을 순수하게 만드는 것 같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게 사라지고 오로지 노란 슬롯사이트 볼트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언니! 언니 맞지?” 슬롯사이트 볼트다. 우리는 둘이 얼싸안았다. 나만큼 나이 들어 보이는 슬롯사이트 볼트지만 어릴 적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스름이 내리는데 부득이 자기 집에 가자고 슬롯사이트 볼트 이끌었다. 옥은 네 명의 아이를 낳고 농사짓는 남편과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아이들이 크면서 학비라도 보탤 심산으로 근처 회사에 다니고 있단다. 짧은 만남 후에 긴 헤어짐, 우린 늘 그랬다. 어스름이 내렸고 나는 돌아가야 했다. 내 차에 갓 수확한 마늘과 감자 등의 농산물을 슬롯사이트 볼트 남편이 잔뜩 실어주었다.
그 후 옥이를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가끔 전화는 주고받는다. 이제 회사도 그만둔 지 오래고 아이들도 결혼해서 다 잘 산다며, 언제든 놀러 오라고 옥이는 성화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는 꼭 한 번 만날 생각이다. 만나서 말하리라. 잊지 않았다고, 슬롯사이트 볼트을 볼 때마다 더욱 그리웠다고, 세월이 더 가기 전에 말하리라. 그리고 어릴 적 우정을 이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