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은 항상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내가 좋아슬롯 꽁 머니 건축가 ‘알바로 시자(Alvaro Siza)‘의 나라이자 ‘에두아르도 소토 데 무라(Eduardo Soto de Moura)‘의 나라이자 스페인처럼 비옥한 영토가 넘치게 충족한 먹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두어 번의 엄청 진지한 나의 여행 계획은 매번 경제적인 이유로 좌절되었다.
베를린을 떠나 서울로 향하기 전, 아내와 나는 유럽의 마지막 여행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슬롯 꽁 머니. 어린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는 높은 난이도를 염두하고, 적절한 여행경비를 계산하기 위해 많은 검색을 슬롯 꽁 머니. 특히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유난히 비싼 베를린의 항공권을 고려해 좀 더 영리한 루트를 짜야슬롯 꽁 머니.
사람들이 휴가로 많이 향하는 목적지는 이러나저러나 비싸다. 그러니 휴향객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 경로를 적절히 이용해 유럽의 남쪽으로 향하자 했고, 그렇게 탄생이 노선이 스위스를 거쳐 포트투갈로 향하는 루트였다. 스위스는 고가의 물가로 휴향객에 많지 않고, 같은 이유로 스위스 출발 포르투갈 비행기표도 저렴슬롯 꽁 머니.
그렇게 드디어 포르투갈로 향하게 됐다. 다양한 볼거리와 풍부한 먹거리 외에,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나의 오랜 친구, 미구엘 덕분이었다. 베를린과 슬롯 꽁 머니을 오가다 아빠가 되며 슬롯 꽁 머니에 아예 정착한 그와 만난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난 상태였다.
슬롯 꽁 머니은 내가 베를린에 살기 시작한 2번째 해에 알게 되었다. 그는 독일 향기 가득한 막스 두들러(Max Dudler) 사무실에 나에 이어 ‘비독어권’ 인물 2호로 안착했다. 우린 줄곧 나와 같은 팀으로 정말 많은 작업을 함께 했다. 당시 우린 모두 30대의 싱글이었고, 자연스레 우리는 친구처럼 동료처럼, 싱글의 삶을 즐겼다.
그는 사회 이슈들에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일종의 ‘만담가’였는데, 그래서 우리 대화의 폭은 대체 종 잡을 수가 없었다. 남북한 얘기부터, 포르투갈의 민주화 과정까지, 그와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떨고 있노라면, 일상의 스트레스에 눌린 머리가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다. 야근이 많았기에 저녁도 많이 먹고, 그래서 자연스레 늦게까지 어울리곤 슬롯 꽁 머니.
그러던 그는 근무 3년 차에 슬롯 꽁 머니으로 돌아갔다. 그를 엄마같이 돌봐주던 할머니의 요양을 돕기 위해서였다. 할머니의 상태가 나아지자 그는 다시 주변의 권유로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왔고 그 후 얼마뒤, 유럽의 코로나 록다운이 시작됐다. 당시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어르신들을 위해 조심에 조심을 더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도 그중 하나였다.
결국 그는 슬롯 꽁 머니으로 다시 돌아갔지만 그때부터 그는 슬롯 꽁 머니에서 재택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코로나라는 초유의 사태가 낳은 최고 이례적인 근무형태 중의 하나일 것이다. 같은 도시나 지척의 거리에서 재택근무야 이제 일상적이지만, 시간대만 같은 먼 도시에서의 재택근무는 충분히 기존의 ‘근무형태'와 또 다른 새로운 형식이었다. 그만큼 그의 작업은 고부가가치로 인정을 받았다.
그 뒤로 5년 가까이 아직도 그 이례적인 근무 형태를 유지슬롯 꽁 머니 건 아마 순전히 그가 일을 너무 잘하기 때문이다. 손이 빠른 건 기본이고, 사회 관심사가 넓다 보니 관심가지며 참고슬롯 꽁 머니 프로젝트의 범위도 다양하고 무엇보다 둥글둥글 한 성격 덕에 누구나 한 번 일하며 계속 일하고 싶어 한다. 유머러스한 감각과 세심한 배려는 어느 팀 분위기도 유하게 만든다.
코로나로 인해 슬롯 꽁 머니으로 돌아간 그즈음부터 그는 여자친구와 진지한 미래를 주고받고 그 후 얼마 뒤 아빠가 되었다. 우리 둘 다 아빠가 되며 개인적으로 만나는 건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나누는 전화통화는 극강의 사교채널이자 수다를 털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채널이었다.
스위스를 돌고 돌아 도착한 슬롯 꽁 머니은 너무 흥미로웠다. 고저차가 거의 없는 베를린에 살다 보니 다양한 고저차와 그에 얽힌 도시의 모습들이 눈을 시종일관 즐겁게 했다. 덕분에 2살 아이를 태운 유아차가 유난히도 덜그럭 덜그럭 힘들어했지만, 대서양의 산해진미로 가득 채워진 슬롯 꽁 머니은 이미 너무 따뜻했다.
그리고 슬롯 꽁 머니에 도착 한 둘째 날, 미구엘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드디어 만날 약속을 잡았다. 대서양이 널찍하게 내다보이는 해변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둘이 만나 어느새 두 가족을 이룬 우리 모두는 참으로 열심히 수다와 음식을 즐겼다.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각자의 방법으로 소통하며 그 시간을 즐겼다. 사람이 많고 아이들이 많은 모임에서 어차피 진지하고 오랜 대화를 나누기 힘들지만, 이렇게 지난 시간과 현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건이다.
우리끼리 ‘해산물의 날’이라 부르는 이 날, 슬롯 꽁 머니의 벨렘(Belém) 근처 바닷가 레스토랑 포르투갈리아(Portugália)에서 식사를 했다. 뱃사람들이 즐겨했다는 식사와 신선한 대서양의 해물은 그날의 만족도를 더 근사하게 만들었다. 영어와 한국어, 포르투갈어, 어른과 아이 등등 미구엘네 가족과 만나기 전, 마냥 어렵게 생각되고 은근 염려하던 마음도 금세 버터처럼 녹아내렸다.
다다음날, 슬롯 꽁 머니의 다음 목적지인 포르투갈로 향하기 전 고마운 마음에 선물도 전하고 인사도 할 겸 우리 가족은 다시 한번 만났다. 우리 두 가족은 단체사진을 찍으며 다음엔 꼭 서울에서 만나자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들을 꼭 한국식 해산물이 넘치는 곳으로 안내하리라 농담했다.
은퇴 후 슬롯 꽁 머니 근교에서 와인농장을 운영하는 꿈을 꾸는 그는, 어릴 적 포도 수확철이 되면 온 동네가 사람들이 모여 발가락이 까매질 때까지 포도를 발로 밟은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마치 한국에서 겨울철 김장철에 사람들이 모여 함께 김치를 만들며 겨울을 준비하듯 그 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담긴 은퇴 후 꿈을 가지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그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그를 보며 멋지기도 하고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언젠가 그의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날을 고대해 본다.
근처에 있던 슬롯 꽁 머니의 친구까지, 역시 식당은 우르르 몰려가야 푸짐하게 먹을수 있다.
슬롯 꽁 머니 시내를 유럽스럽게 만들어주는 옛날 트램은 유아차를 동반한 여행객에게 한국의 버스와 같은 계단식 고난을 준다. 그러나 그 실내는 과거로 여행한듯한 낭만이 있다.
알바로 시자의 포르투갈 파빌리온은 지금도 여전히 웅장한 스케일과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밑으로 쳐진 지붕은 정적이지만 스릴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