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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흔적 없는 슬롯 머신 게임

주변에 누군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구강암 수술 후 스스로 자기 치유를 하며 살고 있는 친구, 벽안슬롯 머신 게임. 아프다고 누워있는 것이 아니고,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마쳤으니 스스로 자기 관리를 하며 지내는 친구다. 그의 일상은 아프기 전과 다름이 없다. 다른 사람들은 그가 지금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삶을 치열하게 그리고 동시에 한가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아프다고 하면 벽안이 떠오른다. 그리고 어떻게 지내냐며 뜬금없이 안부를 묻는다. 평상시에 그 친구 생각을 늘 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군가의 아픈 소식은 그 친구를 떠오르게 만든다. 내게 아픈 사람은 모두 벽안슬롯 머신 게임.


늘 활기차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친구가 있다. 어디에서도 그의 밝은 에너지는 빛이 난다. 그가 없을 때도 잘 지냈는데 걷기학교에서 같이 걸으며 이제는 그가 없으면 한 구석이 빈 느낌이 든다. 나를 그에게 의존하게 만든 친구, 범일슬롯 머신 게임. 늘 에너지 넘치는 그 친구가 무릎이 아프다고 하고 독감으로 힘들다고 하면 나도 괜히 힘이 빠진다. 평상시에 전화를 잘하는 편이 아닌데 독감 소식을 듣고는 매일 전화를 한다. 아마 그가 귀찮았을 것슬롯 머신 게임. 서로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마음이 쓰여 궁금해서 전화를 자주 하게 된다. 밝은 목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도 밝아지고, 힘든 목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도 힘들어진다. 내가 범일이 되어가고 범일이 내가 되어간다.


어제 이 두 친구를 만나 한강변을 여유롭게 걸으며 시간을 함께 보냈다. 죽음 얘기를 한다. 세 명의 공통점이 있다. 장례식을 치르지 않겠다는 점슬롯 머신 게임. 벽안은 죽기 전에 그간 신세 진 사람, 폐를 끼친 사람, 보고 싶은 사람 리스트를 만들어 만나고 싶다고 한다. 범일은 시신 기증까지 한 상태고 사전 장례식이 의미가 있을 거라고 한다. 나는 죽자마자 화장 후 산골하라고 딸에게 이미 얘기를 했다. 다만 유골을 어디서 뿌리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범일이 농막에 나무를 몇 그루 심어놓았고, 그중 나무 한 그루가 내 나무라고 한다. 이미 갈 곳이 만들어졌다.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라는 화두가 있다. 나무!


범일이 “삶은 허공에 흔적이 남지 않은 슬롯 머신 게임”이라는 표현을 한다.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슬롯 머신 게임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추가 설명도 곁들인다. 참 좋은 표현이다. 각자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슬롯 머신 게임이다. 그 슬롯 머신 게임이 비록 남에게 보이지 않고 무의미할지라도 슬롯 머신 게임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 파문의 에너지는 영원히 존재한다. 자신이 만든 업으로 태어난 삶이므로 업보를 기꺼이 수용하며 슬롯 머신 게임을 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어떤 보상도 기대도 희망도 불필요하다. 그냥 할 일을 할 뿐이다. 슬프다 울 일도 없고, 기쁘다 웃을 일도 없다. 그냥 울고 싶을 때 울면 되고, 웃고 싶을 때 웃으면 된다. 웃음과 울음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도 말자.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지는 자전거처럼, 슬롯 머신 게임이 멈추는 순간까지 계속 슬롯 머신 게임은 계속되어야 한다. 업보를 수용하며 살아가는 지혜이자 방편이다. 상황이 나쁘다고 불만할 필요도 없고, 좋다고 좋아할 일도 없다. 평상심이 불심(佛心)이고, 불심이 무심(無心)이다. 의식적으로 할 일이 없으니 한가롭다. 그냥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두 친구는 오랜 기간 자신들만의 슬롯 머신 게임을 하며 살고 있다.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돌보는 일, 지적 장애인과 지체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 등을 20년 이상 꾸준히 해오고 있다. 흔적 없는 슬롯 머신 게임이기에 그 슬롯 머신 게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눈에 띄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세상에는 이런 아름다운 슬롯 머신 게임을 하는 흔적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연말마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내는 흔적 없는 슬롯 머신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흔적이 없기에 찾을 수 없다. 또 찾아서도 안된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방법이다. 흔적 없는 슬롯 머신 게임을 흔적 남기려는 시도는 정상적인 피부를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과 같이 무의미한 일이다.

해인(海印)은 바다에 인장을 찍는 것이다. 흐르는 바닷물에 인장을 찍어봐야 그 인장 자국이 남아있을 리가 없다. 해인은 부처님의 법이 온 세상에 두루 펼차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법은 세상에 가득하지만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굳이 흔적을 찾는다면 우리 마음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각자 지니고 있는 불심이 바로 그 흔적이다. 근데 불심, 즉 부처님 마음은 어디에도 없고 보이지 않는다. 흔적이 없다. 허공에 슬롯 머신 게임하는 것과 같다. 흔적은 없지만 늘 존재하며 온누리에 펼쳐져있다. 텅 빈 충만이다. 텅 빈 충만, 허공에 슬롯 머신 게임, 해인은 모두 부처의 세계를 표현한 단어에 불과하다. 부처의 세계는 삼라만상에 존재하지만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있지만 없다. 색즉시공이다. 하지만 없지만 있다. 공즉시색이다.


나는 무엇으로 허공에 슬롯 머신 게임을 하고 있을까? 걷기, 글쓰기, 심리상담, 이 세 가지가 나만의 슬롯 머신 게임이다. 그리고 명상이 이 세 가지의 바탕이 된다. 이 세 가지를 통해 봉사를 꿈꾸어왔다.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두 친구를 만나 흔적을 없애버렸다. 생살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났다. 그 대신 허공에 흔적 없는 슬롯 머신 게임을 마음속에 담았다. 담을 물건은 없지만, 그럼에도 담았다. 내 마음의 해인이다.


도반의 힘은 크다. 어쩌면 마음공부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다. 스승의 존재도 물론 필요하지만, 도반의 존재 역시 스승 못지않게 중요하다. 스승은 누구인가?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모든 사람, 물건, 상황, 유정, 무정 등 삼라만상 모든 것이 스승이다. 그러니 도반도 당연히 스승이 될 수밖에 없다. 선재동자는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나서는 구도보살이다. 그 선지식 중에는 뱃사공, 아름다운 여인, 노인, 어린아이, 땅의 신, 보살 등 다양하다고 한다. 나의 선지식은 비단 어제 만난 두 친구뿐만 아니고, 걷기학교에서 만난 모든 분들, 그간 살면서 만난 모든 분들, 그리고 흔적을 남기려는 슬롯 머신 게임을 하며 마주친 수많은 상황들, 삶의 모든 과정이다.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만나 깨우침을 얻었듯, 나 역시 흔적 있는 슬롯 머신 게임을 통해 흔적 없는 슬롯 머신 게임을 깨우친다. 깨우치고 나니 삶이 화롯불에 떨어지는 눈송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알게 된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우리네 삶은 희극이며 동시에 비극이다. 이 사실만 알 수 있다면 삶은 무척 한가해지고 여유로워진다. 비극은 흔적을 남기려는 슬롯 머신 게임에서 비롯되고, 희극은 흔적 없는 슬롯 머신 게임에서 시작된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좋은 이유는 인생을 비극에서 희극으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이 열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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