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 살이 되고, 동생이 여덟 살이 되던 해, 동생이 아팠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고 동네 의원에 다녔다. 차도는 없고 오히려 점점 더 아파져 큰 병원으로 옮겼다. 바로 수술실로 슬롯갔고, 2년 남짓 투병하다 끝끝내 하늘의 별이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별이 된 동생은 볼드모트처럼 이름을 말할 수 없는 자였다. 우리 모두 커다란 슬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입을 닫았다. 나는 울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슬픔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면 나를 통째로 삼킬 것만 같아서. 열두 살 아이는 그대로 어른이 되었고, 그 일이 있은 후 40년쯤 지났고, 이제야 그 무게가 조금 가벼워졌다고 느낀다.
그동안 한 개인의 가족사로만 생각해 왔다. 후원하는 한국소아암재단에서 보내주시는 잡지가 있다. 무심결에 인터뷰를 읽다가 한 문장에서 눈이 멈췄다. 아직도 소아암 환자에 대한 처우는 30년, 40년 전과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너무 비극이다. 그래선 안 된다.
그래서 내가 보고 듣고 느꼈던 이야기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억을 발굴해 먼지를 털어내니 원고지 1,000매짜리 소설이 되었다. 제목은 ‘빨간 모자’라고 지었다. 신춘문예에 두 번 응모했다. 한 번은 재슬롯 원고지 800매짜리 장편으로, 다른 한 번은 슬롯 원고지 80매짜리 단편으로. 재작년과 작년 모두 탈락이었다.
나는 부디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슬롯져 같은 상실과 아픔을 겪은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소아암 환자가 있었던 가정의 이야기는 굳이 보고 싶지 않을 만큼 슬프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이들에 대한 처우가 30년, 40년 전 같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