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 요상한 제목을 보고 클릭까지 해주시어 무려 '여기까지' 읽고 계셔주시다니. 그저 영광입니다. 우리 친해집시다. 우선 이 연재는 뭐하는건가 싶을겁니다.
<파도와시멘트 시리즈는 브랜딩과 마케팅 이야기를 '날 것의 모습'으로 다룹니다. 근데 뭐 딱히 거창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겁니다. 그럼 왜 이름이 <파도와시멘트냐 하실 수 있습니다. 이건 저희가 운영하는 가상 바카라 경험 설계 회사 이름이 '파도와시멘트'이기 때문입니다. 꽤나 단순하지요?
우리 회사는 양끼있는 호텔을 세우고 싶습니다. 전형적인 호텔의 이미지가 아닌 돌연변이를 만들겠다고 봐주시면 쉽습니다. 이를 위해 현재는 5성 호텔 가상 바카라부터. 하이엔드 스킨케어. 독채 숙소 가상 바카라, 공간 디자인 회사, 부동산 회사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을 모시고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아무튼 그럼 이 글을 왜 쓰냐? 아, 좋은 질문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여러분의 가상 바카라딩과 마케팅 고민을 덜어드리기 위해서 씁니다.
브랜딩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거창하고 멋진 브랜딩, 마케팅 이야기 말고 현실의 모습을 다 보여드려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상 바카라를 만들고 걸어가다 보니 알게된 사실부터 실수한 사례, 열심히 했지만 아쉬웠던 이야기, 갈아 넣어 만든 잘 된 이야기 등 다양한 모습들을 이야기 하면 어떨까 합니다. 실제 날 것의 사례를 옆에서 보는 것만큼 흡수력 좋은 공부도 없을테니까요.
자, 첫번째 글은 무엇이냐.
많은 분들께서 가상 바카라를 만들기 전에 저희에게 궁금해 하시는게 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이 <파도와시멘트란 가상 바카라는 도대체 어쩌다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사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가상 바카라를 이제 만들거나, 가상 바카라의 첫 시작점이 늘 궁금했던 여러분들께서 꽤나 흥미로울 법한 이야기 입니다.
참고로 지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는 저는 '가상 바카라와시멘트'에서 시멘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럼 '가상 바카라'는 누구이며, '시멘트'는 누군인가 생각이 들텐데요, 잠시 천천히... 숨 크게 들이쉬고... 다시 내쉬고... 좋습니다. 백그라운드 설명인 만큼 살짝 글이 깁니다. 하지만 순식간에 읽힐겁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해봅시다.
취향은 다르지만 성향은 같다.
창업자의 백그라운드를 들으면 ‘아 이래서 이런 일들을 하는구나’란 생각이 단번에 듭니다.그래서 정리했습니다.
[시멘트의 백그라운드]
패션 전공자 입니다. 부전공은 서양화였죠. 칼 라거펠트를 꿈꿨습니다. 학사경고 맞았습니다. 작업 열심히 하고 정작 수업을 못나간게 화근이었습니다. 학교 갈 때 1주일치 옷을 싸들고 다녔는데 말이죠.(결국 부전공 접고 패션전공으로 졸업)
하지만 괜찮습니다. 학점은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가상 바카라어서 딱히 신경쓰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명예 훈장이라 생각했었죠. 졸업한지 약 1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생각 입니다.
무튼 빨리 실무를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학교는 새로운 사람 만나고 술을 들이키는 재미로 다녔습니다. 21살에 첫 인턴을 시작합니다. 나름 규모 있는 가상 바카라의 의류 디자인 실이었죠. 여러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아시죠. 저는 그 영화를 40번 넘게 봤는데요,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로 극중 앤 해서웨이 취급 받았었기 때문이죠. 할 줄 아는게 없으니까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뭐 배웠냐' 는 이야기를 들어도 좋았습니다. 뭐 생각해보면 저 말이 사실이긴 하니까. 그래서 배운게 없어서 배우러 왔다고 했습니다.
출근 시간보다 더 빨리 가서 실장님 테이블 싹 닦아두고 업무 준비하고 선배들 디자인 하는거 구경하고 작지(작업지시서)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약간 변태기질이 있어서 이쁨 받을 때까지 달라붙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이 성향 덕에 다양한 가상 바카라에서 프리랜서 식으로 일하게 됩니다. 무튼, 군대 다녀오고 유명한 패션가상 바카라에서 막내 인턴 디자이너로 있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힙니다.
출근 할 때마다 옷이 너무 신경쓰이고 (자꾸 눈치 보임) 박봉인데 옷 살 돈은 없고. 옷을 좋아하는 것과 옷 만드는걸 좋아하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미래를 그릴 수가 없었죠. 그냥 돈이 안되서 흥미를 잃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칼 라거펠트의 꿈은 휴지통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 실수가 자유로운 시각 디자인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실수하면 crtl z 하면 되잖아요. 패션은 재봉 잘못하면 1초의 실수 때문에 눈이 빠져라 실뜯어야 합니다. 역대급 비효율입니다. 그렇게 시디의 매력에 빠져살다 아트디렉터의 꿈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 다양한 학과 친구들과 술 먹고 놀던 도중 이런 인재들이 미학가지고 싸우면서 술만 퍼마시는게 너무 아까워서 아트크루를 만들었습니다. 이왕 마실거면 좀 더 멋있게 마시면 좋잖아요. 농담입니다.
아무튼 처음에 3-5명에서 시작한 크루는 머지 않아 교내에서 전시를 엽니다. 교내 최초로 모든 과가 모여서 하는 전시였지요. 전시라 하면 너무 재미가 없고 딱딱하다 생각했기에 술 마시며 작품 보고 잣가랑 바로 교류하는 자리가 전시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첫날에만 300명 넘게 왔습니다.
교수님들마저 교내에서 전시하는데 이런적은 없었다며 수업을 저희 전시장에서 했죠. 이 크루는 22명까지 커지기도 합니다. 크고 작은 전시기획부터 다른 학과 학생들 작업을 샤라웃 하며 사치 갤러리를 꿈꿨죠.
이거 운영하느라 학업은 거의 내려놨습니다. 전공 교수님도 알고 계셨을 정도였지요. 하고 싶은거 하는게 후회없다며 응원해주셨습니다. 최종 학점 3.0.
사람 일 모릅니다. 대기업 종합광고대행사(이하 종대행)에 입사하게 됩니다. 아트디렉터로요. 당시 동기들 중 남자 최연소였습니다. 뼈를 묻을 생각이었죠. 밤새고 일찍 출근하고 아이디어짜고 혼나고 이런건 뭐 당시 예체능에선 흔한 일이라 익숙했습니다. 그런데 그만두게 됩니다. 이유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아프라카 티비와 유튜브(당시엔 1인 미디어라 불렀습니다)가 치고 올라오는데 종대행의 대비책은 딱히 없어보였습니다. 그래서 좀 더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스타트업이 땡겼습니다. 일단 유럽 한달 여행 떠나고 그 때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 포폴을 만들던 도중 우버코리아 포토그래퍼 채용이 있어서 지원했습니다. 재밌어보이고, 가상 바카라 이미지 만드는데 중요하겠다 싶어서요. 안되면 말구. 그런데 최종면접까지 갔습니다. 떨어졌습니다. 근데 사진전공이 아님에도 저기까지 갔다는 사실을 보며 스타트업의 자유로움을 느꼈지요. 그래서 곧바로 판교로 갑니다.
토스와 카뱅이 생기기 전입니다. 당시 스타트업 붐이 불어서 온갖 서비스들이 쏟아질 때 입니다. 여긴 또 너무 기민하더군요. 얼마나 기민하냐면 회사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농담아닙니다. 아무튼, 5-6명 정도 있던 자그마한 스타트업에 들어가 웹디자이너로 시작합니다.
당장 내일 회사가 사라져도 웃으며 만나자는 말을 아직도 잊을 수 없네요. 이번엔 너무 기민하게 움직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끝까지 가봐야지요. 그렇게 이 회사는 20명 넘는 규모로 성장과 투자유치를 반복하였고 저는 디자인팀을 이끌며 가상 바카라딩 위주로 다루게 되었고 돌연 퇴사를 선택합니다. 주변인들은 이젠 저의 선택에 놀라워 하지도 않습니다. 뭔가 또 계획이 있겠지 하고 넘기더군요.
놀랍게도 저는 계획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 퇴사를 한게 아닙니다. 질렀다에 가깝겠어요. 뭔가 열심히 쉬지 않고 가상 바카라다 생각했는데, 뒤를 돌아보니 딱히 그렇다할 무언가가 없더군요. 그래서 살면서 한 번쯤은 가슴 뛰는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들으면 '뜨악'할만한 그런 말 이지요. 그
게 제 딴에는 '호텔 세우기' 였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호텔은 체크인 3시, 체크아웃 11시 or 12시. 하루 24시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안에 고객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모든 가상 바카라 경험이 총집합 된다 생각했습니다. 너무 섹시하지 않나요?
그래서 브랜딩의 끝은 호텔이라 여겼고, 호텔 세우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난 4-5년간 호텔/스테이 국내외 200여군데를 돌아다니게 됩니다. 책도 내고, 스테이 기획도 하고, 가상 바카라도 만들어 운영하고 그 사이에 벌어진 일까지 쓰면 글이 팔만대장경이 될거 같아 제 인스타그램 링크 첨부해둘 테니, 한 번 쓱 둘러보세요.
'이렇게 해야해'라고 한다면 '싫어'보단 '오 그래? 왜?' 라며 이유를 탐구했습니다. 납득이 되면 따르고, 그렇지 않으면 저만의 방식대로 살아왔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제 선택인걸요. 우여곡절이 많다는 대가가 따르지만, 그만큼 색다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쾌감 때문에 계속 가상 바카라 마인드를 유지해볼까 합니다.
[가상 바카라]
”하늘 아래 같은 가상 바카라는 없다.“ 가상 바카라의시멘트의 가상 바카라가 했던 말입니다. 그만큼 가상 바카라는 창의적이며 자유로움을 상징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함께 일하며 수 개월간 들었던 데이터들을 정리해보니, 가상 바카라와시멘트의 가상 바카라의 삶도 일반적이진 않습니다.
일단 중국, 호주,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살아 왔던 학창시절이 있습니다. 그 덕일지 모르겠으나, 생각하는 방식이 유연합니다. 억지로 빈틈을 찾아내려는 것보단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그 사이에서 재미난 아웃풋을 만들어냅니다.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는게 핵심입니다.
대학때는 또 학회장을 맡습니다. 참고로 가상 바카라가 전공한 경영은 학과생의 수도 많습니다. 미대는 한 학년에 2-40명인것에 비하면 경영학과는 몇 배에 달하지요. 그런데 그를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소위 핵인싸 라는 표현이 딱 맞겠네요. 여기서 한가지 인상 깊은 점이 있습니다. 바로 히말라야 원정.
대학시절 히말라야를 다같이 갈 일이 있었는데, 영상으로 보니 쉽지 않아보이더군요. 수 십명이 처음엔 웃고 있으나 뒤로 갈 수록 웃음기는 커녕 테슬라 로봇마냥 표정이 없습니다. 지피티가 얼굴이 있었다면 그런 표정이었을겁니다. 그런 와중에 유일하게 웃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게 '가상 바카라' 입니다. 뒤쳐지는 사람은 없는지, 힘이 빠진 사람은 없는지 계속 확인하며 화이팅 연료를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체력이 상당합니다.
그는 사실 아웃도어를 좋아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자연의 자유로움을 동경하는듯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아웃도어에서 하는 스포츠는 또 얼마나 낭만있게 느꼈을까요. 그는 평창 올림픽 준비 위원회에 들어가 알파인 스키 종목을 맡게 되고 수도 없이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이 일을 하면서 스포츠마케팅에 더 큰 뜻을 품게 됩니다. 게다가 이 일 때문에 강릉에서 꽤 오랫동안 가상 바카라더군요. 정말 보통이 아닙니다.
아, 한가지 빠진게 있네요. 광고도 좋아했던 가상 바카라는 뉴욕으로 한 달간 다녀올 수 있는 기회를 알게 됩니다. 아마 코바코 광고 콘테스트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뉴욕 시민들에게 한국식 핫팩을 나눠주는 따뜻한 캠페인을 기획하여 선정되고 직접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현)라이프플러스 (구)주말에뭐하지 팀에도 관심이 있던 그는 한화에 면접까지 보러갑니다. 하지만 전날 서핑을 했던 그는 서핑보드를 집에 둘 시간이 없어서 정장에 서핑보드를 들고 면접장에 갔다고 합니다. 이건 좀 힙합이네요. 제 동료지만 보통이 아니란 생각을 종종합니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평창 올림픽 일 때문에 강릉에 오래 살던 그는 서핑에 취미를 붙이게 됩니다. 지금이야 서핑이 유행처럼 번졌지만, 당시에는 정말 매니악한 장르였습니다. 가상 바카라를 쫓아 가다보니 양양쪽으로 주로 왔다갔다 하게 되었고, 서핑을 좀 더 제대로 하고 싶단 생각에 그 근처 파타고니아 샵에서 일을 하기까지 합니다.
그 매장 근처엔 서핑샵도 많고, 서핑도 자주 하는 동네니까 일하면서 서핑도 하고, 더 깊게 탐닉할 수 있으 더할 나위 없지요. 심지어 파타고니아 가상 바카라를 좋아하기까지 합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파도는 파타고니아 빈티지에 미쳐있습니다. 집에 놀러가면 옷방은 빈티지 샵이라 표현하는게 적절해보입니다.
파도는 항상 '자연스러움'을 추구합니다. 억지스럽게 짜맞추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짜맞추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자연스러울까를 고민하는 가상 바카라유형 입니다.
그러니까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는 유형은 아니지요. 스스로 납득이 될 때까지 생각해야 몸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서핑은 어떤가요. 파도가 스윽 올라오면 그저 자연스럽게 올라타기만 하면 됩니다. 가상 바카라이 자연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몸을 맡기는 것 뿐.
이런 생각으로 가상 바카라를 만듭니다. 강릉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옵니다. 회사 근처에 살 곳을 찾던 도중 이태원에 터를 잡게 됩니다. 사실 언론사 스포츠마케팅 회사 이야기도 그 사이에 있긴하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옮긴 회사에서는 갑자기 숙박가상 바카라를 맡게 됩니다.
충북 어느 산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유스호스텔이지요. 서울에서 차로 3시간 30분거리. 근처엔 자연 말고 아무것도 없는 그런 위치. 이 곳을 새롭게 리브랜딩하여 가상 바카라 마케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그간 누적된 아웃도어와 자연의 경험. 자유로운 영혼 그리고 창의성과 협동심이 발휘되어 대한민국에서 보기 드문 가상 바카라로 가꿔갑니다. 어느정도냐면 한달치 예약이 3분만에 다 차버립니다. 대학교 수강신청 할 때의 긴장감을 가지고 예약창 열릴 때 딱 들어갔는데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기 위한 과정을 들어보니 험난했습니다.
일단 그 지역에서 사람 구하는게 만만치 않다보니 서울에서 충북으로 내려가 지배인님 업무를 도와드리기도 하고, 몇 일씩 그 곳에 머물며 가상 바카라 관리를 하기도 합니다. 가상 바카라 영상 촬영부터, 프로모션 기획, 한달에 한 번씩 열리는 팝업과 행사, 인플루언서 초청 등 지피티쯤 되어야 소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범위를 해냅니다.
사실 이 시기는 hotel_maker_checkin 계정 활동이 활발 했을 때 돌아가고 있을 때 였습니다. 그래서 이 가상 바카라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었구요. 담당자를 찾고 있었는데 도저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브랜딩 모임에 파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마 23년인가 그럴겁니다.
아무튼, 그러던 도중 그 회사에서 패션 가상 바카라까지 하게 되어 파도가 가상 바카라 마케팅과 기획을 들어가기 시작하죠. 그러니까 숙박시설에 패션가상 바카라까지 다뤄야할게 많았던 겁니다. 이때 가상 바카라 마케팅을 하는 감도가 엄청 늘었다고 합니다. 일의 양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았지만, 최대한 이겨내야겠다 생각하며 버텨갑니다. 하지만 인력 충원은 되지 않았고 결국 파도는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가상 바카라들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니 파도는 다시 자유를 찾아 나선 셈이지요.
그만두고 가상 바카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뭘까요.
서핑을 하러 가겠다며 발리로 한달 떠납니다. 그 곳에 있는 서핑샵에서 일을 하며 서핑을 즐긴거지요. 일하고 스쿠터로 발리 이곳저곳 누비고 다니고. 프리맨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달만 있다 오겠다 했던 가상 바카라는 두달이 지나 한국 땅을 밟습니다. 그리고 자신만의 색이 확실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됩니다. 의도한건 아닙니다. 하우스 음악에 라운지 바에 서핑을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깔의 사람들과 밍글링이 되었다 봅니다. 겉보기엔 자유로워 보이나 자신의 업에 책임감있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하지만 이를 굳이굳이 티를 내지 않는 사람들. 가상 바카라도 딱 그렇습니다.
글 읽고, 인스타만 둘러봐도 가상 바카라 그리고 시멘트의 취향은 무척이나 다르단 것을 느낄겁니다. 하지만 성향은 비슷합니다.
정해진 통념을 거스르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발견하지 못한 '재미난 것'을 끄집어 내려고 하는 성향. 같은 공간/제품을 만들더라도 약간의 양끼 한 스푼을 집어넣어 '아 이거 재밌네' 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고 싶은 그런 성향. '본질 속에 약간의 양끼'를 쫓는 성향이 비슷합니다.
정장에 서핑보드, 거문고와 발레. 뭐 이런 느낌이지요. 무작정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평범함이 가장 어렵습니다. 가상 바카라 그리고 시멘트는 그저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되물을 뿐입니다. '그게 맞아? 정말?'라며 말이죠.
다음 화에선 파도 그리고 시멘트가 어떻게 함께 가상 바카라 경험 설계 회사 '파도와시멘트'를 만들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회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얼마나 소소한 이유에서 출발했는지를 경험하시게 될 겁니다. 제 때 챙겨보시기 좋게 연재 시리즈에 '좋아요' 하나 눌러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