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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우지 않고 함께 자란다

책 읽다 말고 딴생각 슬롯 꽁 머니

오늘 아침 신도림역에서 김밥 한 줄을 샀다. 1500원짜리 소박한 김밥만 사 먹다가 오늘 처음 3000원짜리 치즈김밥을 샀는데, 밥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들어가 한 줄을 두 번에 나눠 먹었다. 출근한 직후 8시에 먹고 반은 좀 전에 먹었다. 점심은 패스다. 요즘 나는 말 그대로 우왕좌왕이다. 벌려 놓은 일(원고)은 많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헷갈리거나 대부분 슬롯 꽁 머니가 싫다. 안 그래도 슬롯 꽁 머니 싫은데 쌓이니까 더 슬롯 꽁 머니 싫은 게 일. 이럴 때 나의 소심함은 꽤 효과적으로 능력 발휘를 한다. 즉 소심해서 욕먹는 걸 두려워하거나거절 따위를 잘 못슬롯 꽁 머니 때문에 어떻게든 해낸다. 이번에도 나의 소심함에 기대 보련다. 일이 워낙 많다 보니 하루를 꽉꽉 채워서 일한다. 회사 일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쉴 틈이 없다. 사실 쉴 틈이 나면 나는 개인적인 원고 작업을 슬롯 꽁 머니 때문에 놀아도 노는 게 아니지만 요즘은 정말 바빠서 원고 쓸 엄두도 잘 내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요즘 안 하던 짓을 좀 하는데, 집에서 글을 쓴다. 좀처럼 없는 일이다. 육아와 살림 덕분에 원고는 언감생심 노트북 켜보지도 못할 때가 많지만 (사실 핑계일지도 모르지) 최근 아들이 태권도에 다닌 뒤부터 밥만 먹으면 곯아떨어지기에아무것도 안 슬롯 꽁 머니도 민망한 시간들이 좀 늘었다.


슬롯 꽁 머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요녀석하고 대화하는 재미가 있다. 내가 하는 말을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이해를 하고 본인 의사 표현을 명확히 하다 보니 대화가 되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할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 글자를 배우기 시작했는지 집에 오면 스케치북에 A, B, C, D 같은 알파벳을 하나씩 써 놓고 오늘 배운 거라며 보여준다. 슬롯 꽁 머니가 조금 잘못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제대로 가르쳐주기보다 본인이 터득한 걸 자랑하게끔 둔다. 틀리게 알고 있다고 굳이 슬롯 꽁 머니의 기를 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글자 하나 써놓고 자랑하는 것만 봐도 지금 얼마나 스스로를 대단하게 여기고 있는데, 굳이 자신감을 꺾을 필요가 있을까. 그런 거 일일이 틀리다 맞다 고쳐주지 않아도 슬롯 꽁 머니는 너무너무 잘 자라고 있다. 최근에 그걸절실히 깨달은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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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친정 엄마와 언니네 식구가 모여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남편, 형부, 언니가 술잔을 기울였다. 나는 운전 담당이라 콜라만 벌컥벌컥. 남편은 별다른 주사가 없다. 굳이 꼽자면 자는 거다. 그렇다고 뭐 길바닥에서 자는 건 아니고 그냥 집에 돌아와 기절하듯 잠든다. 그날도 1차 소주에 2차 맥주까지 거나하게 마시고 내가 운전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이미 조수석에서 잠들었고 아들은 초저녁에 잠을 좀 자서 잠들지 않고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빌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남편을 흔들어 깨웠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이럴 때 나는 그냥 깨우는 걸 포기하고 좀 더 자고 올라오도록 먼저 집에 들어간다. (시동을 다 꺼놓고 올라가기 때문에 보통 여름에는 더워서 올라오고 겨울엔 추워서 올라온다. 애써 깨울 필요가 없다) 그날도 아들에게 “아빠가 깊이 잠들었네. 우리 먼저 올라가자.”라고 말하고 아들과 차에서 내렸다. 이미 밤 12시가 넘어서 얼른 슬롯 꽁 머니를 씻겨 침대에 누웠다. 늘 그렇듯 팔베개를 해주고 둘이 꼭 껴안은 채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한 5분쯤 지났을까? 품에 안겨 있던 아들이 조용히 말했다.


“엄마, 아빠가 걱정돼.”


설핏 잠들었던 나는 슬롯 꽁 머니의 말에 잠이 확 달아났다. 걱… 걱정?! 걱정이란 말을 쓰다니. 놀란 가슴 진정하고 슬롯 꽁 머니에게 물었다. “그럼 아빠 데리러 갈까?” 슬롯 꽁 머니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고 슬롯 꽁 머니 손을 꼭 잡고선 주차장으로 갔다. 창문을 똑똑 두드리니 일어날 참이었는지 남편이 제법 빨리 깼다. “서하가 아빠가 걱정된데.” 남편은 “오구, 엄마보다 낫네~”하며 아들을 안아줬다.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남편이 씻는 사이 다시 침대에 누웠다. 기분이 한결 나아진 아들은 다시 잠들었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깊이 잠든 듯했다.


내 슬롯 꽁 머니가똑똑해서, 지독히 감성적이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뭐랄까. 본능 같은 게 잠재돼 있다가 언어로 표현되는 단계인 것 같다. 다음 날 아들에게 ‘걱정’을 어디서 배웠냐 했더니(내가 가르쳐준 기억은 없어서) 어린이집에서 배웠단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다양한 얼굴 표정이 그려진 카드를 보며 슬프다, 기쁘다, 같은 기분을 배웠다며 내게 이야기했던 게 떠올랐다. 나는 슬롯 꽁 머니를 훌륭하게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훌륭하다는 것의 기준도 잘 모르겠다. 슬롯 꽁 머니는 그냥 자라고 있는 것 같다. 때론 나보다 커 보인다. 내가 슬롯 꽁 머니를 키우는 게 아니라 우린 함께 크고 있다. 아참, 그리고 다짐 하나를 했다. 아들 걱정시키는 부모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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