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방비엥의 성지와도 같은 사쿠라바에 갈 시간. 사쿠라바는 블루라군과 함께 방비엥에서 다른 건 다 포기하더라도 이것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중 하나였다. 때문에 무조건 가긴 갈 건데 언제 갈지를 두고 고민을 하다가 우린 첫날로 정했다. 아무래도 지구에서 흥 꽤나 넘친다는 젊디 젊은 청춘들이 다 모이는 곳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마냥 젊지만은 않은 평균나이 35.8살의 슬롯 꽁 머니 다섯 청춘들은 상당히 기가 빨릴 것으로 예상되기에, 그나마 흥과 에너지가 넘치는 여행 초반에 가줘야 사쿠라바에서 살아서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쿠라바는 방비엥 야시장에서 두 블록 옆,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시간이 살짝 이르기도 했거니와 야시장 쇼핑으로 퀴퀴해진 몰골과 드레스코드 정비를 위해 일단 숙소로 돌아가 짧은 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올 때는 걸어왔지만 깜깜한 밤인 데다 마침 비까지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해 툭툭이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야시장 주변에 정차 중인 툭툭이가 많아 손쉽게 잡을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대부분 이미 기다리는 손님이 있거나 운행을 하지 않는 툭툭이였다. 어플로도 잡아보려 했지만 슬롯 꽁 머니 숙소가 여행자 거리와는 반대편에 있어 그런지 기사들이 좀처럼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만 가고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어 결단을 내렸다. 청춘스럽게 옷을 뒤집어쓴 채 비 맞으며 걸어가기로. 숙소까지는 약 1km. 충분히 걸어볼 만한 거리였다.
이런 게 청춘이고 낭만 아니겠나? 하며 야심 차게 걷기 시작했지만 아니었다. 현실은 그저 현실일 뿐. 얼른 숙소에 가고 싶었다^^;;
비 오는 밤의 슬롯 꽁 머니 남쏭강
숙소에서 텐션 게이지를 가득 채우고 나와 사쿠라바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부터 철철 흘러넘치는 그루비한 음악에 비둘기처럼 목이 까딱까딱, 몸이 먼저 반응했다. 노란 비둘기 입장이요~(구구구구구) 때는 오후 9시경. 아직은 대체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슬롯 꽁 머니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일단 자축 웰컴 드링크 삼아 목부터 축이기로 했다. 시작은 가볍게(?) 칵테일로. 마침 9PM~10PM은 '행복한 시간(HAPPY HOUR)'으로 모든 칵테일이 5만낍(약 3,100원)이라니(원래는 7만낍=약 4,400원) 완전 개이득템!!!
※한화 금액은 2024년 1월 환율 기준
음료가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이제는 거의 종교의식이 되어버린 "땀깐~"을 다 같이 외치곤 홀짝홀짝 칵테일을 마시며 분위기 탐색에 들어갔다. 테이블이 서서히 하나둘 채워져 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휑했던 슬롯 꽁 머니는 다소 일찍부터 흥이 오른 한 무리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어떤 무리들인가가 봤더니 한국에서 온 패키지팀 어르신들이다. 슬롯 꽁 머니를 독점한 채 무대를 열심히 찢어놓고 계셨다. 그중 현란한 춤사위의 백팩아재가 단연코 눈에 띄었는데 가이드님인 듯 보였다. 테크닉, 유연성, 예술성, 리듬감은 영 꽝이었지만 텐션만큼은 슬롯 꽁 머니 파이터에 나가도 될 만큼 뒤지지 않았다.
입장!
끝까지 봐주세요ㅋㅋㅋ (씬스틸러 등장
슬롯 꽁 머니들만의 성스러운 건배 의식, 땀깐~
어디 가서 절대 빠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흥
어르신들이 올라가 계셔서 그랬을까? 내외국인 할 것 없이 감히 범접할 수가 없었다
행복한 시간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패키지팀 어르신들이 대거 퇴장하셨다. 여행일정에 사쿠라바는 10시까지로 되어 있는 듯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막상 텅 빈 슬롯 꽁 머니를 보니 천천히 우상향 중이던 흥이 천천히 우하향으로 바뀌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역시 술이지. 마침 칵테일도 바닥난 상태. 행복한 시간이 끝났기에 주종을 맥주로 변경했다. 물론 당연히 비어라오다.
다행히 스테이지 공석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맥주를 가져오는 사이 재야에 숨어있던 슬롯 꽁 머니이 하나둘씩 본색을 드러냈다. 어느새 무대는 발 디딜 틈 없이 꽉 채워졌다. 점점 무르익는 분위기에 우하향하다 최저점을 찍을 뻔했던 우리의 흥도 다시 급우상향 치더니 급기야 도저히 가만히 서있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고개는 까딱까딱, 어깨는 들썩들썩, 상체는 흔들흔들, 하체는 리듬감 있게 스텝을 밟으며 소심하지만 나름대로 넘치는 흥을 표현했다. 주변 테이블의 외국인들도 이런 우리를 보며 함께 신나는 분위기를 즐겼다.
슬롯 꽁 머니는 잠시 쉬었다 가실게요~
이내 채워진 슬롯 꽁 머니
슬슬 시동 걸리는 중
고막과 가슴을 쿵쾅 쳤던 음악이 이제는 무감각해질 정도로 흥도 오르고, 술도 오르고, 분위기도 달아오르자 소심했던 우리들의 퍼포먼스도 한껏 격해졌다. 비록 소심한 몸짓의 율동 수준이었으나 그 마저도 반경이 커지자 (사람이 많아진 탓도 있지만) 테이블 사이 빈 공간, 우리가 서있는 자리가 유난히도 좁게 느껴졌다. 이럴 거면 그냥 스테이지로 나가는 게 낫지 않나 싶었지만 그쪽도 사정은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더 좋지 않았다. 때가 너무 늦었다. 스테이지는 이제 주변까지 사람들로 둘러싸여 마치 영화 '월드워Z'에 나오는 예루살렘 장벽에 몰린 좀비떼를 보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우린 방슬롯 꽁 머니 흥부자로 남아 우리끼리 광란의 밤을 즐겼다.
혹 무너지는 건 아닐까 살짝 무섭기도...
슬롯 꽁 머니에 출현한 좀비떼
사쿠라바의 분위기는 절정을 찍었다. 그즈음 스테이지의 경계가 무의미해질 정도 사람들이 스테이지 주변으로 몰렸다. 에이,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제는 우리도 나가 놀기로 했다. 결국엔 방슬롯 꽁 머니 탈출. 언제 또 나가보겠나? 사람을 한 명씩 제쳐가며 스테이지와 최대한 가깝게 침투했다. 꼭대기까지는 못 갔지만 한 칸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약간의 높이감이 있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스테이지에서 바라보는 시점 밑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다들 어떻게 놀고 있는지가 훤히 보였고, 다들 알아서들 흥에 취해있었다. 우리가 슬롯 꽁 머니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지 점령 후 신난 1인
확실히 스테이지에서는 한층 더 높은 텐션에서 놀다 보니 에너지가 소모가 컸다. 방슬롯 꽁 머니에서 놀 때보다 기가 훅훅 빨렸다. 해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잠시 충전을 하기 위해 우리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덧 사쿠라바의 영업종료 시간, 오전 12시(새벽 0시)가 다가왔다. 마지막 곡으로 찰리푸스의 'See You Again'이 흘러나왔다. 클로징에 딱 맞는 DJ의 센스 있는 선곡. 다들 노래를 따라 부르며 떼창을 시작했다. 사쿠라바는 순식간에 찰리푸스 콘서트장 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 다섯 청춘들 중 친화력이 가장 좋은 니나킴이 한 무리의 외국인 친구들을 몰고 왔다. 이름도, 나이도, 국적도 모르지만 우리는 다 같이 어깨동무하고 떼창을 했다. 이것이 진정한 위아 더 월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발산했다.
노래가 끝나고 클로징 멘트와 함께 피크를 찍었던 분위기도 차츰 내려앉았다. 함께 어깨동무를 했던 외국인 친구들과도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사쿠라바에서 친해진 사람들끼리 2차를 가기도 했는데 슬롯 꽁 머니도 이대로 가기는 살짝 아쉬웠지만 툭툭이 기사와의 약속된 시간(돌아가는 시간까지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마음과 달리 몸은 더 이상 놀 체력이 남아있질 않았다. 육탄전이 예상되는 다음날 여행일정도 고려해야 하니 아쉽지만 방비엥에서의 광란의 밤은 여기까지 하는 걸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 툭툭이를 타고 가며 소주 밑잔만큼 남아있는 흥과 아쉬움은 슬롯 꽁 머니끼리 다시 한번 See You Again을 떼창 하는 것으로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