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해시 게임 바카라의 엉덩이골을 본 후

세상을 떠난 해시 게임 바카라가 남기신 것들

결혼 생활 17년 동안 12번 이사를 했다. 크기도 구조도 다양한 집으로 옮겨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버리는데 달인이 되었다. 오랜만에 설 연휴에 한국에 들어와 며칠 내내 한 일도 짐정리와 버리기였다.

30여 년 만에 처음 이사를 한 집에서는 진기한 보물과 쓰레기가 한데 섞여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꽁꽁 싸둔 보자기의 매듭을 간신히 푸니, 한 번도 사용한 적 없는 아름다운 이국의 쟁반이 나타났다. 낡아서 바스러진 나무 상자 안에는 역시 단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금도금된 찻잔 세트가 들어있었다. 내가 시집올 때 해온 그릇 세트도 포장도 풀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마지막까지 막그릇만 쓰다 가신 해시 게임 바카라께 왜 진작 꺼내드리지 못했을까. 자책해 보지만, 해시 게임 바카라가 살아계실 때 시도를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해시 게임 바카라는 당신은 좋은 게 필요 없으니 내게 가져다 쓰라고 하셨고, 나 역시 해외에 살아 운반이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해 왔었다. 밥솥이나 믹서기 등 다양한 주방용품이 쌍둥이처럼 두 개씩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쌓여 있었는데, 모두 두 딸에게 고루 나눠주고 싶은 해시 게임 바카라의 마음이었다.

잔뜩 뒤집어쓴 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했다. 젖은 머리를 말리고 싶었지만 헤어드라이어가 안방에만 있다. 오랜 망설임 끝에 안방에 들어갔다. 시해시 게임 바카라의 마른 두 다리가 보였다. 지난 17년 늘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단정한 옷차림만 봐 왔던 터라 흠칫 놀랐다. 트렁크 팬티 차림의 해시 게임 바카라가 나보다 더 놀라셨을 것 같아 얼른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머리를 말렸다. 뒤통수에서 계속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흘깃 보니 해시 게임 바카라가 파스를 붙이지 못해 애만 쓰고 계셨다.

“제가 붙여 드릴까요.”

당연히 거절하실 줄 알았는데, 해시 게임 바카라는 뒤로 돌아 며느리 앞에 엉덩이골 일부를 드러내셨다. 엉치뼈 부근에 파스를 붙였다. 마르고 탄력 잃은 노인의 무른 살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해시 게임 바카라는 사랑하는 아내만 잃은 것이 아니었다.

결혼 후 내내 시어머니를 친정엄마보다 애정하면서도, 시해시 게임 바카라에 대해서는 꽤 먼 거리를 유지해 왔다. 해시 게임 바카라의 강직한 성품이 차게 느껴진 데다, 가부장의 권위에 대한 무의식적인 거부감 때문이었다. 해시 게임 바카라의 연약한 속살을 본 후, 홀로 남겨진 해시 게임 바카라가 처음으로 가깝게 느껴졌다. 어쩐지 그 역시 어머니가 남겨둔 마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