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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 꽁 머니, 그 붉은빛의 한

화분 위에 붉은 바카라 꽁 머니꽃 한 송이가 함초롬히 누워있다. 비둘기처럼 내려온 아침햇살에 노란 꽃술이 반짝인다. 평화로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귀여운 아기의 싱그러운 얼굴 같다. 살던 숲을 떠나 우리 집에 온 지 이태 만에 선물로 예쁜 꽃을 피워주었다. 꽃잎을 반쯤 벌렸을 때, 좁은 화분 속에서 드디어 제자리를 잡아가는구나 하고 내심 반가웠다. 붉은 꽃 속에는 작고 가는 콩나물이 가지런히 숨어있는 것처럼 노란 씨방이 들어있다. 손가락으로 튀면 노란 꽃술가루가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체 반짝거리는 파란 나뭇잎 속에서 얼굴을 살며시 내밀고 있다가 어느 날 바닥에 꽃을 눈물처럼 툭 떨어뜨렸다.


바카라 꽁 머니꽃은 나무에서 한번 피고 땅 위에서 또 한 번 피워 두 번 핀다고 한다. 모든 꽃은 화려하게 피웠다가 메말라가는 모습으로 시든 꽃잎이 한 잎 한 잎 초라하게 땅에 떨어진다. 바카라 꽁 머니꽃은 나무에서 핀 꽃이 아름다운 모습이 절정에 달했을 때 꽃잎 한 장 상하지 않고 꽃술 하나 떨어지지 않은 아름다운 본연의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흐트러지지 않은 청초한 모습으로 바닥에 붉은 꽃수를 놓는다.

몇 년 전, 시외삼촌댁에 들렀다. 집을 둘러싼 울창한 숲 속에 바카라 꽁 머니나무가 울타리처럼 집을 감싸고 있었다. 요란하게 우는 매미 떼가 바카라 꽁 머니나무에 앉아 음악회를 하고 있었다. 사람 기척을 느낀 바카라 꽁 머니나무 아래서 꿩 한 마리가 푸드덕 거리며 날아갔다. 집 주변에 군락지를 이룬 바카라 꽁 머니나무숲은 여름에는 매미들의 쉼터가 되고, 엄동설한의 혹독한 한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오는 길목에 붉은 꽃을 피워 아름다운 화원을 만들어 운치가 있었다. 꽃핀 바카라 꽁 머니나무 가지에는 참새들이 쉴 새 없이 모여들었다. 딱히 쉴만한 곳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예쁜 꽃을 보고 모여드는지 참새들이 바카라 꽁 머니나무 가지마다 앉아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


바카라 꽁 머니나무 숲을 보는 순간 바카라 꽁 머니꽃의 추억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어린 시절, 동네 꼬마아이들과 아침마다 집 뒤 바카라 꽁 머니 숲에 가서 땅바닥에 떨어진 바카라 꽁 머니꽃을 한 바가지씩 주워 실로 꿰어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두르고 다니던 옛 풍경이 스쳐간다. 희미한 옛 추억 속에 잠시 머물러있는 내가 바카라 꽁 머니나무에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본 남편은 외사촌 동생한테 튼실해 보이는 작은 바카라 꽁 머니나무 한 그루 캐어달라고 부탁했다.

“형, 이 바카라 꽁 머니나무 가져가요. 장작 팬다고 도끼질하는데 도끼가 빗나가서 옆에 있는 바카라 꽁 머니나무뿌리를 찍었지 뭐예요. 죽을 줄 알고 그냥 나뒀는데 살아났어요. 도끼날을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난 강한 놈이에요.”

뿌리를 보니 흉터선 쪽에 도끼 자국이 두툼하게 목피 두께가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과거의 상처 자국으로 선명하게 나 있었다. 도끼날을 맞고 시들 거리며 죽어가던 바카라 꽁 머니나무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꿋꿋이 살아났다. 마치 전쟁터에서 총탄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전사처럼, 해풍을 맞으며 최적의 환경 속에서 햇볕과 바람으로 자연 치유되어 몸에 상처가 아물어가자 푸른 잎을 풍성하게 달고 가지를 뻗어 나갔다. 강한 신체적 특성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서 힘겹게 살아나자 뿌리내리고 자란 숲 속의 안식처에서 살지 못하고 또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운명을 맞았다. 이제는 좁은 화분 속에 갇혀 도심의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인 아파트로 옮겨졌다.


시동생이 다른 나무를 두고도 애써 상처 난 바카라 꽁 머니나무를 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척박하고 비좁은 화분 속에서 살아야 할 나무는 강해야 뿌리를 제대로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다고 계산하고 일부러 죽음 직전에 살아남은 나무를 캐어 주었다. 화분에 심고 물을 주어서 정성을 쏟았더니 불안전하게 지나온 제 운명을 말해주듯 쪽 곧지 않고 몸을 구부린 채 어떠한 공격에도 제 몸을 방어하려는 듯한 휘어진 모습으로 화분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한 해 동안 심하게 몸살을 앓고는 몸에 새겨진 상처의 무늬를 서서히 지워갔다. 그다음 해에는 제법 큼직한 꽃봉오리를 만들었다. 베란다 한쪽에서 잠깐씩 놀러 오듯 들어오는 햇볕을 쬐고는 꽉 막힌 콘크리트 벽속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붉은 미소로 꽃잎을 열어주었다. 꽃잎을 반쯤 벌린 모습으로 상처 난 과거의 슬픈 운명을 간직한 채 아침이슬처럼 눈물 어린 꽃잎을 모으고 있었다. 드디어 새로 만난 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나는 아침마다 꽃이 나무에 붙어있나 확인했다. 화분 속의 재래종 바카라 꽁 머니꽃은 고향집 뒷산에서 화려하게 피웠던 모습의 신비감을 선물해 주었다. 거실에서 잘 보이는 곳에 화분을 옮겨 놓았다. 한참 동안 우리에게 보여주던 예쁜 꽃을 밤사이에 감추었다. 바카라 꽁 머니나무도 제 살던 고향 숲을 그리워하는지, 살던 숲을 떠나서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야속한 운명을 탓했을까, 꽃을 뿌리 쪽에 살며시 떨구어 놓았다. 새 주인에게 아름다운 꽃을 선물하고 한해의 의무를 끝냈다.


나는 해마다 바카라 꽁 머니꽃이 피기를 간절히 기다렸지만 기대했던 만큼 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올해도 바카라 꽁 머니나무 잎을 뒤적거리며 어디에 꽃을 숨겨놨을까 하고 찾아도 꽃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년에는 침묵의 시위를 끝내고 여인의 화려한 입술 같은 붉은 꽃을 피워서 지나온 상처를 씻고 건강하게 살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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