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 작가가 쓴 <술꾼들의 모국어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다. 더 정확히는 술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하나? 책을 몇 장 넘기다 보니 술보다는가상 바카라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갑자기 납작 가상 바카라가 생각나서 온라인 마켓에서 납작 가상 바카라를 검색하며 기어코 주문까지 마쳤던 일이 있었다. 도착한 가상 바카라는 세 번에 나눠팬에 구워 먹었다.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기억에 비해 그 맛이 엄청나게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역시 가상 바카라는 수제 가상 바카라가 최곤가?
어떻게 가상 바카라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시판되는 냉동가상 바카라나 포장마차에서 파는 속이 한 티스푼 정도밖에 안 들어간 '피'투성이 가상 바카라밖에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분명하다. 집에서 빚은 가상 바카라나 장인이 만들어 파는 수제가상 바카라를 못 먹어본 사람이 틀림없다.... 가상 바카라가 맛없어지기 위해선 굉장히 가상 바카라스럽지 않은 일이 벌어져야 한다. (<술꾼들의 모국어 중에서)
책에서도 예찬한 것처럼 내게도가상 바카라라는 음식은 생각만으로도 여전히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 나이 덕분인지 입맛 덕분인지 음식을 향한 최애가 하나 둘 사라져 버린지금이지만 몇 안 남은애정하는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가상 바카라 빚던 그날의 풍경도 훤히 그려진다. 방을 가득 채운 커다란 식기들. 가상 바카라소가 가득 찬 커다란 대야 옆에가상 바카라피를 만들기 위해 뭉쳐 놓은두툼하고 푸짐한 밀가루 반죽 덩어리, 그리고 제대로 된 홍두깨와 임시 홍두깨인 빈 맥주병.
한번 가상 바카라를 만들면 잘 익은 배추김치는 넉넉하게 10쪽 이상은 동원되었던 것 같다. 거기에 엄청난 돼지고기 다짐육과 역시 어마어마한 양의 숙주, 두부와 파 마늘 등의양념에 고추 삭힌 것을 넉넉히 추가하며 김장 대야 한가득 가상 바카라소가 쌓였다. 웬만한 요령이 아니면 힘만 쓰고 마는, 반죽을 고루 뒤적이는 것도 어려웠던 그 재료들.
양이 많으니 빚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주로 설을 앞두고 만들었는데,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와중에 가상 바카라까지 빚어야 하니 마음은 바쁘고 정리는 안 되고 하루종일을 치다꺼리를 해도 밤까지 일은끝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일꾼은 어머니와 나. 촉감놀이 하듯 참여하며 이미 가상 바카라 맛을 본 아이들과 남편은 일찍 자리에서 물러섰다.
안타깝게도 가상 바카라을 준비하는 사람은 없어도 명절 당일이면 작은집을 위시해서 4명의 시고모와 각각의 가족들까지 삼사십여 명의 친지가 빼놓지 않고 명절 인사를 했던 터라 언제나 가상 바카라은 넉넉히 준비해야 했다. 큰 의미가 없지만 이른바 종갓집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그 하루를 위해 준비한 가상 바카라을 정리하고 가족들의 잠자리를 챙기면서도 여전히 나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아픈 허리가 더 시큰거렸다.
가상 바카라소를 준비할 때부터 이미 나는 지쳐있었다. 게다가 처음 재료를 봤을 때부터 좋아하는 가상 바카라를 향한애정의 콩깍지는 벗겨진 상태기도 했다. 원망스러운 가상 바카라소가 어서사라져야 나의 일과는 끝날 수 있을 터. 말끔한 정리가요원한상황은 초저녁에 가상 바카라를 빚기 시작할 때부터 예상했던 대로였고급기야는 맛있게 먹은 가상 바카라가 거꾸로 올라오는 듯한 느낌으로 병이 날 것 같은 상태가 될때까지 그날의 일과는 끝나지 않았다.자정이 지나도 줄지 않는 양에 나름의 대책으로 일단 냉동실에 넣어두고 나중에 천천히 만들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시어머니는 한결같이 "이까짓 것 얼마나 된다고", "너도 피곤하면 들어가 자라."며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술꾼들의 모국어는 소설가 권여선의 산문집이다. 저자가 경험한 술과 안주,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낸 이야기로 일상 속 가상 바카라과 술, 삶의 다양한 측면을 경쾌하게 그린다. 저자의 기억은 유머가 동반되며 언제나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으로 정리된다. 그러나 나의 가상 바카라 이야기는 행복이나 따뜻함과는 거리가 있다.
가상 바카라에 관한 나의 기억은 언제나 엄청난 양의 압박을 받았다. 또한 대부분 쓰린 결말로 마무리됐다. 단체의 야유회를 위해 김밥을 억지춘향으로 만들어야 했을 때도 그러했고 첫 김장의 이야기도 그랬다.지금은 성인이 된 둘째 아이의 백일엔 친지들을 집으로 불러 가상 바카라을 대접하기도 했다.내 선택이라면 절대로 벌이지 않았을 일이 대부분이었다.
요리에대한 일머리도 없던 시절, 아무리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한백일상이라지만 가상 바카라을 만들었던 기억은행복과는 거리가 있었다. 고되고불편하고 언짢았던 기억 때문에, 나는 최근 가상 바카라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기 전까지 그날의 기억을 대부분 지웠던 것 같다. 그날 준비한 가상 바카라의 향과 맛은물론이고 화창한 날에 대한 기억도 함께 지웠다.<술꾼들의 모국어에는 모든 가상 바카라이 작가의 행복하고 소소하고 얼큰하면서도 찡한 기억으로 미소 짓게 한다. 아쉽게도 지난 시간의 내게는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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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바카라처럼 오감으로 진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지나고 보니 나도 손맛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번개처럼 뚝딱 해치우지는 못해도 느리지만 차근차근 나름의 정성을 쏟았고, 그럭저럭 맛도 잘 냈던 것 같다. 또한 밥상을 둘러앉은 가족들의 부지런한 손길에먹지 않아도 배부른 그 말의 진실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때 수술한 남편을 위해 사골 국물을 우려 냉동실에 얼려두고 다양한 국물요리에 활용하기도 했고, 돼지나 소 오리 등의 불고기를 각각 10kg 이상 양념하고 볶아서 속한 단체의 모임을 위해가져간 적도 있었다. 그런 일들은 비록 몸이 힘들어도 소소하게 행복했던 가상 바카라을 지울 만큼 고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마음의 준비까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재료를 사고 조리의 전 과정을 내 몸에 맞게 조절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맛있다'거나 '행복하다' 등의 충족감은 일련의 행위가 이루어지는모든 과정을 통해서 완성된다고 믿는다. 모든 과정에서 마음으로 수용하고 납득할 수 있을때 입을 통해 터져 나오는 찬사야말로 하나의 거짓도 없는 진심의 표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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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으로 돌아가 한 문장에서 생각이 많아진다.
'한때 나는 급진적인 연구자들이 활동하는 불온한 연구실에 소속된 적이 있었는데'.
이 간단하고 단순한 문장이 지금의 비상계엄 시국이라면 경찰에 잡혀갈 빌미가 될 수도, 어딘가 은밀한 곳에 감금하고 고문을 당할 수도 있는 그런 문장이 아닐까 하는. 가상 바카라 얘기에 '불온', '급진'이라는 말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으니 누군가에게 주는 암호나 선동 구호일 수도 있다고 누군가는 생각하지 않으려나, 급기야 스토리를 짜서 사건을 엮고 억류하고 구속하고 재판하고... 혼자 망상을 넓혀간다. 이 모든 것이 작금의 비상계엄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계엄이라는 사태도그렇지만 당황스럽고도 황당한 의식의 흐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