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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과 유예

0836

숨기기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 메이저사이트는 감춘다


제 몸을 숨기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피한다


숨바꼭질은 의도된 메이저사이트로서의 숙명이다


소설가김승옥처럼 힘껏 달아나거나


시인허수경처럼 국외자로 살아버리거나


생텍쥐페리처럼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리거나


쓰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것도 메이저사이트의 은둔이고


쓰기 위해 더 깊이 삶으로 천착하는 것도 은둔이다


잘 숨을 줄 모르는 메이저사이트를 아직 본 적이 없다


브런치메이저사이트 중에서도 은둔의 가치를 아는 이는 앞에 차려진 브런치의 빵 속에 들어가거나 차에 몸을 반쯤 담근 채 반신욕을 하며 은둔을 즐긴다


깊어지려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은둔에서 그 답을 얻고 꽃을 피운다


잘 숨는 자가 잘 발견한다


은둔은 장소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다


미루기


잘 포착하기 위해 메이저사이트는 잘 미룬다


순간에 발작하지 않고 한참 지난 후 열광한다


함께 뜨거워지다가 제 온도를 놓치기 싫어서다


인간의 행위 중에서 미루어서 견고해지는 건 글쓰기와 말하기다


오늘의 글쓰기는 태고부터 어제까지 미룬 것들의 총합이어야 한다


그러니 날마다의 글쓰기가 성사되는 건 성실하게 미룬 결과물이다


잘 미룬 자가 잘 미루어 짐작한다


유예는 시간에 있지 않고 인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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