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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던 슬롯

0766

그게 무슨 슬롯가 있어?


언젠가부터 우리는 슬롯를 도난당한 사람처럼 슬롯 찾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왔다.


모든 것들에 이름이 있는 것은 아니듯이 모든 것들이 슬롯를 달고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게다.


왜 우리는 슬롯에 집착할까.


내가 태어난 슬롯조차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어쩌면 존재의 슬롯를 모르기에 그 밖의 슬롯들을 갈구하는지도 모르겠다)


슬롯를 알면 비밀이 밝혀질 것이라는 착각 때문은 아닐까.



슬롯 없는 행동을 할 때마다 핀잔을 받는다면 그 핀잔의 슬롯는 무엇인가.


가끔은 숨겨져 있지 않는 보물을 찾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슬롯는 오감 중에서 맛을 보는 감각과 맞닿아 있다.

(슬롯에서 미味는 맛 미를 슬롯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슬롯를 갈구하는 것은 어쩌면 식욕 같은 본능에 가까운 욕망이다.


맛을 알아야 그것을 내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탓이다.


허용하려면 승인이 필요한데 슬롯들은 혀끝에서 발생한다.


대부분의 슬롯는 언어로 찾고 발화하니 혀와 무관하지 않다.


없었던 슬롯들도 혀끝의 감각을 통해 탄생하기도 한다.


그래야 수용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OO의 맛味이 줄어서 슬롯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슬롯들의 과잉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라도 슬롯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싶다.


OO의 아름다움으로 바라본다면 슬롯는 더 가치 있어지지 않을까.


맛은 내 몸으로 들여놓기 위한 이기적 욕구가 있지만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존중하고 지켜주려는 이타적 마음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없어도 되고 없기도 하는 슬롯 찾기를 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특별한 슬롯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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