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바카라 에볼루션 의심의 천재

Mozart - Piano Sonata No.18 K.576


https://youtu.be/h8zqdhddIfM?si=ZLaodQTqJFdpujyZ



부모님이 모아둔 몇 권의 사진 앨범 중 내가 갓 태어났을 적 사진이 들어있는 얇은 앨범이 있다. 아마도 첫딸이 태어난 뒤, 빠듯한 살림에도 장 볼 것들 목록사이에 기어이 틈을 만들어 마련했을 그 앨범은 나에게 가장 애틋한 물건 중 하나다. 분홍빛 꽃이 큼직하게 그려진 누빔 이불 위에 흰 포대기를 덮고 누운 아기의 사진은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데, 바카라 에볼루션는 사진 밑에 장난기 어린 코멘트들을 꾹꾹 눌러 적었다. “태어난 지 이틀째, 아이구 피곤하다” “낮에 푹 자뒀다 밤에 비상 걸어야지!” 같은 다채로운 문구를 읽고 있으면 멀뚱히 누운 아기의 머릿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있냐며 빤히 들여다봤을 어린 바카라 에볼루션가 선해진다. 앨범을 한 장씩 넘길 때면 어김없이 오래전 그 작은 방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카메라를 든 아빠 옆에 서서 바카라 에볼루션와 나를 바라보았다가 마지막엔 영락없이 이불에 발랑 누워 바카라 에볼루션를 올려다본다. 내게 이유 없이 쏟아져 내렸던 투명한 햇볕 같은 사랑이 다시금 생생하게 체험되는 것처럼 뺨이 간질간질해진다.


시간이 흘러 이십 대 후반이 됐을 무렵, 나는 심리상담사 앞에 앉아 눈물을 쏟았다. 이유는 엄마였다. 나를 온통 바카라 에볼루션 마음대로 휘두르려 한다고, 엄마 때문에 살기 힘들다며 생면부지의 상담사를 붙잡고 울었다. 자라오는 동안 엄마는 넘치는 사랑의 눈으로 늘 내가 해낼 수 있는 것보다 약간 위쪽을 바라봤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본 시험에서 70점을 맞고서 동그라미가 많다며 신이 나서 엄마에게 보여줬다가 벼락같이 혼나는 바람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피아노 학원에 간 기억이 있다. 욕심 많고 꿈도 많고 능력도 있었지만 결혼과 함께 연고 없는 먼 곳으로 떨렁 시집와 전업주부가 된 엄마에겐 자식 셋의 성과가 마지막으로 남은 바카라 에볼루션증명의 수단이었다. 딸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으면 엄마는 언제나 한발 빠르게 나섰다. 내가 이룬 크고 작은 성취 뒤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엄마가 안 도와줬으면 어쩔 뻔했니, 같은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지극한 사랑의 코바늘로 엄마는 길고 두터운 옷감을 수고롭게 짰지만 남모르게 성긴 구석을 남겼다. ‘허약한 자신감’ ‘스스로에 대한 믿음 부족‘ 같은 구멍들이 내 안에 남았다.


인간이라면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일인지, 내 힘으로 뭔가 해내고 싶다는 욕구가 폭발하는 이십 대 후반쯤부터 찾아왔다. 실패를 예감하면 미리 도망치는 습성으로 인한 자업자득인지 몰라도, 간절한 만큼이나 내 취업의 경로가 기나긴 우회로를 그리면서 내 안은 독기로 가득했다. 엄마는 그런 내가 더 나이 들기 전에 본인이 나서서 시집이라도 잘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한 사람을 두고 서로 완전히 다른 목표에 꽂혀있으니 그렇게까지 다투지 않아도 될 일로도 지독하게 싸우는 날이 많았다. 아마 엄마는 이러다 큰 딸이 바카라 에볼루션 품을 영영 빠져나갈까 봐 두려웠을 것이고, 나는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평생 자립의 감각을 모르는 인간으로 살아갈지 모른다는 거대한 겁에 질려있었던 것 같다. 숱한 싸움 끝에 나는 알을 깨고 나왔을까? 반쯤은 나왔으나 반쯤은 아직 그대로인 것도 같다. 어느 날에는 느리더라도 천천히 내가 선택한 것들로 삶을 일궈간다는 느낌이 들다가도, 어떤 날에는 내 행동이나 선택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엄마가 바라는 것을 내면화한 채로 무얼 고르거나 고민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선택한 결과라고 믿지만 엄마의 인정과 도움이 없이 이 모든 게 가능했을지 여전히 헷갈린다.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쯤, 어느 부자도 비슷한 갈등 상황을 겪었다. 이십 대 초중반의 나이였던 아마데우스 볼프강 모차르트와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이야기다. 모차르트의 생애 그래프에서 나와 묘하게 겹쳐 보이는 능선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오랜 시간 모차르트의 곡을 연습해 왔음에도 그동안 이 잘난 신동 천재에게 눈꼽만치도 공감할 만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아름다웠으나 늘 마음을 겉돌았고, 나처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모차르트의 곡을 연주하려면 천재의 천진난만함과 심오함을 연극하듯 흉내 내는 수밖에 없는 줄로만 알았다. 내가 발견한 ‘우리’의 공통점이란, 내면화한 부모에게서 비롯되는 바카라 에볼루션 의심이다.


바카라 에볼루션에게 아버지 레오폴트는 단순히 부모에만 그치지 않았다. 세 살 때부터 자신을 엄격하게 가르친 음악 선생님이자, 음악가로서 한 세대를 앞서 겪은 선배였으며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고된 연주 여행을 늘 함께한 친구이자 매니저이기도 했다. 책 『바카라 에볼루션, 사회적 초상』에 따르면 바카라 에볼루션는 태어나면서부터 유독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고 인정받으려는 성향이 강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정은 일찍이 아들에게서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고서 집안의 신분 상승이 가능해지리라는 기대를 품은 채 자식에게 헌신했던 아버지의 성향과 맞물려 공고하게 부자 관계를 결속시켰다.


그러나 돈독했던 부자 사이에도 균열은 일어났다. 몇 가지 조짐이 들썩거리던 중, 1781년 바카라 에볼루션가 잘츠부르크 궁정음악가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일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표면적으로는 잘린 것이었지만 바카라 에볼루션도 내심 간절히 바라던 결과였다. 그는 자유로운 음악 활동을 억압하고 잘츠부르크의 명성을 높이는 데에만 자신을 이용하려 드는 대주교 아래에서 결코 일할 수 없다는 뜻을 비치며 자유 음악가로 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반면 레오폴트는 아들이 성인이 되면서 신동의 후광을 차츰 잃자, 잘츠부르크에서나마 자신처럼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가장 노릇을 해주기를 바랐다. 이미 잘츠부르크 궁정에서 일하기 전, 바카라 에볼루션는 다른 도시에서 돈을 벌거나 일자리를 구해보겠다며 시간과 돈을 낭비한 이력이 있었다. 레오폴트는 자유 음악가란 ‘방탕한 꿈’일 뿐이라고 모질게 꾸짖으면서 바카라 에볼루션의 선택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당시 바카라 에볼루션는 자신의 해방 소식을 아버지에게 편지로 전했는데, 이에 대한 아버지의 답장은 남아있지 않다. 『바카라 에볼루션의 편지』에 따르면 “바카라 에볼루션가 아버지의 편지에 화가 나서 찢어버렸으리라“고 추정된다.


하지만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자유롭지 않은 채로 부모와 엇갈린 선택을 하면 고난과 시련은 몇 배로 극렬해진다. 뜻을 이루는 데 따르는 자연스러운 어려움에 더불어 하루빨리 자신의 방식으로 증명해 부모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과 조바심이 내면을 옥죄어 오기 때문이다. 이미 깊숙이 내면화되어 있는 부모의 눈은 바카라 에볼루션 안에서 더 부풀려지고 왜곡되어 매 순간 자신을 감시하고 의심한다. 나를 믿지 못한 채로 빨리 자신을 증명하려던 조바심이 내 20대를 앙상하게 갉아먹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바카라 에볼루션 역시 반대를 무릅쓰고 잘츠부르크를 떠난 뒤 앞으로의 계획을 밝히는 편지에서 “가능성 있을 듯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생각하기만 해도 저는 아주 비참해집니다”(빈, 1781년 5월 16일, 『바카라 에볼루션의 편지』)라고 말했고, 입장을 철회하라는 아버지의 편지에 “최고인 우리 아버지, 저는 아버지 마음에 들기 위해, 제 행복과 건강과 생활을 희생할 작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명예도 저로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빈, 1781년 5월 19일, 『바카라 에볼루션의 편지』)라는 답신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편지글들 속에서 사랑받는 딸이고 싶은 동시에 온전히 내 힘으로 서보이지 못했다는 좌절감을 향해 발길질하던 파릇한 내가 겹쳐 보였다.


바카라 에볼루션는 잘츠부르크 탈출 이후 나름의 고군분투 끝에 아버지 앞에서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1785년 빈에서 열린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K.466 초연은 성공적이었고, 이 자리에 아버지 레오폴트가 참석해 있었다. 레오폴트는 다음날 당대 저명한 음악가인 하이든으로부터 “신 앞에서, 그리고 정직한 인간으로서 말하는데 아드님은 지금까지 제가 직접 만난 혹은 이름을 아는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작곡가입니다.“라는 아들에 대한 찬사를 접하기도 했다. 혹자는 이 일이 부자의 화해 계기가 되었다고도 하고, 그럼에도 아버지가 반대하는 결혼까지 겹치면서 부자 사이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내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바카라 에볼루션가 잘츠부르크와 아버지라는 두 상징적 대상으로부터의 표면적 독립 이후, 음악적으로 한층 더 자신에게 충실해졌다는 평을 받는 작품들을 대거 남겼다는 대목이다. 심지어 그는 아무리 애를 써도 원하는 만큼 돈이 벌리지 않고, 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끊임없이 돈을 빌려야 하는 인생 후반의 상황에서도 ‘어렵다’ ‘음표가 너무 많다’는 혹평에 그다지 타협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789년에는 신청자가 단 한 명뿐이라 바카라 에볼루션의 연주회가 취소됐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더 큰 자리에서의 구직도 여러 번 시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바카라 에볼루션가 남긴 피아노 소나타 중 마지막 작품인 18번 K.576 역시 비슷한 시기에 쓰였다. 그가 죽기 2년 전인 1789년에 쓰인 이 곡은 프로이센의 왕으로부터 프리데리케 왕녀를 위한 피아노 소나타 6곡과 왕을 위한 4중주곡 6곡을 의뢰받아 작곡되었다. 하지만 의뢰받았다는 총 12곡 중에서 피아노 소나타와 사중주 각각 한 곡씩만 남았다. 찰스 로젠이 『고전적 양식』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악 사중주곡과 피아노 소나타가 각각 한 곡씩 완성되었을 때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주문자가 주문을 취소”했다고 전해진다. 이 곡은 지금까지도 바카라 에볼루션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대위법이나 협주곡의 기법이 곳곳에 쓰였다는 이유에서다.


선후 관계나 정확한 정황, 이유를 자세히 알기는 어렵지만, 말년에 돈벌이와 구직이 갈급한 상황에서도 눈에 띄는 음악적 타협이 없었던 그의 음악들을 미루어보아 그에게는 자신에 대한 단단한 믿음의 결정체가 형성된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모차르트도 한때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앞두고 아버지의 심중을 지레 떠올리며 스스로를 검열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잘츠부르크 사건’ 이후 부자 관계는 달라졌다. 다르게 바라보자면 아버지에 대한 모차르트의 태도, 즉 바카라 에볼루션 의심을 다루는 태도에서 어딘가 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지금의 나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8번 1악장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나에게 이 곡은 상반되는 두 목소리의 은근한 기싸움으로 들린다. 8분음표로 절도 있게 시작을 여는 두 마디는 넌지시 날아오면서도 당당하게 꽂히는 바카라 에볼루션 의심의 물음표 같다. 반면, 연달아 이어지는 16분음표들의 재잘거림은 그에 천연덕스럽게 응수하는 두 번째 목소리다. 명랑한 듯, 하지만 결코 쉽게 지거나 주눅 들지 않는 기개가 모차르트를 닮지 않았을까 이입해 보게도 만든다. 둘의 대화는 왼손과 오른손으로 나뉘어 팽팽한 언쟁을 이루기도 하고, 어느 시점에는 잠시나마 화해하거나 한쪽이 상대를 설득해 내기도 한다.


나는 이 곡을 초등학교 6학년 때 콩쿨을 위해 연습했었다. 잠들 때까지 배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꼼지락거릴 정도로 피아노를 좋아했지만, 늦깎이로 준비하게 된 예중 입시의 기로에서 두 번의 콩쿨 결과가 그다지 성에 차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 단호하게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다. ‘정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라는 바카라 에볼루션 의심의 목소리 한 마디에 잽싸게 다른 길로 달아나는 쪽을 선택하는 건 내가 삶의 중요한 순간들마다 자주 반복해온 나쁜 버릇이다. 하지만 이제 모차르트의 삶을 빌려 이 곡을 연습하며 생각한다. 바카라 에볼루션 의심을 완전히 걷어내는 게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되 천연덕스럽게 응수할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에게 온전히 충실해 보는 것. 어떤 외부의 요동에도 흔들리지 않을 방법은 그것 하나뿐이라고 말이다.


내 문제를 직시하기 두려워서 오랫동안 방패 삼고 누명을 씌워왔던 바카라 에볼루션는 이제 새로운 탐구의 대상으로 보인다. 집안일을 도맡고 세 아이를 뒷바라지하고 아빠의 사업장에 직원들 몫까지 반찬을 해다 날랐으면서 그 와중에 아무리 자식이라한들 어떻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토록 많은 양의 관심과 헌신을 한결같이 쏟아부을 수 있는지 말이다. 내 나이가 가장 무서워했고 사랑받고 싶어 했던 때의 바카라 에볼루션 나이를 서서히 넘어서게 되어서일까, 어쩌면 나름의 발버둥을 거쳐 이제 조금은 단단해졌기 때문인 걸까. 아직도 본가에 들르면 밑반찬이며 좋은 것들을 더 못 담아줘서 안달인 바카라 에볼루션에게 “도대체 내가 뭐 예쁘다고 그래?” 물으니 바카라 에볼루션는 이렇게 답한다. “몰라, 병이야.”


앞으로도 종종 나는 어떤 바카라 에볼루션 의심 앞에서 주눅들고 위축될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적어도 가짜 답 뒤에 숨고 싶지는 않다. 그럴 때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8번 1악장을 펼쳐 재잘거리는 음표들의 명랑함과 단단함을 한껏 들이쉬어도 좋을 것 같다. 이제 나는 실패하기 전에 달아나라고 속삭이는 바카라 에볼루션 의심에게 ‘나는 간절한 것에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었어’라고 전하고 싶다. 그것이 내게 이유 없이 쏟아부어진 큰 사랑 앞으로 부칠 수 있는 가장 좋은 답장이라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