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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꽁 머니 것은 뭡니까

내 삶의 전환점이 됐던 날에 대해 쓰기!

왜 저는 덜 슬픕니까. 덜 슬프고 적당히 기쁜 것이 좋은 겁니까? 제가 대단히 슬프고 끝장나게 기쁜 것을 잘 모르는 게 좋은 것이냔 말입니다.
<안온-일인칭의 가난 중에서

그날은 슬롯 꽁 머니 장례식이었다.내 시작이라 할 존재이며 여자들의 땅을 전쟁터로 만들고도 남자기 때문에 쉽게 용서받은 슬롯 꽁 머니 마지막 길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끝내 누구에게 무엇을 미안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떠났다. 엄연히 나는 슬롯 꽁 머니 막내딸이지만 혼외자로 분류된 만큼 상주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나는 문상객도 상주도 아닌 어정쩡한 자격이었고, 슬롯 꽁 머니 영정사진이 정면으로 뵈는 복도 의자에 하나의 커다란 점처럼 앉아 있었다.


슬롯 꽁 머니 그 순간조차 아버지의 죽음을 대단히 슬퍼할 수 없었다.죽음에 대한 슬픔보다는 슬롯 꽁 머니 77년 역사에 내 존재가 오점으로 남는가? 나는 결국 태어나선 안 될 존재로 방점을 찍는 건가? 따위를 생각하거나 저 영정사진은 언제 찍은 걸까? 셔터를 누르기 직전에 사진 기사가 아버님, 치즈~를 외친 걸까? 입모양이 그렇잖아. 따위 산만한 생각이 오갈 뿐, 슬프다는 감정을 느낄 수 없어 괴로웠다. 차라리 눈물 나지 않는 이유가 슬롯 꽁 머니 웃는 입 안쪽에서 빛나는 금니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9개월 전, 친척 아주머니로부터 그가 아프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을 찾았을 때는, 그와 헤어진 지 20년 만이었다. 나는 기억하던 슬롯 꽁 머니 모습을 찾을 수 없어 병원 복도를 몇 번이나 서성거렸다. 결국 그냥 돌아 나올 참이었는데,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은 모두 빠졌고 병색이 완연한 늙은 얼굴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한참을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얼마 뒤 나를 알아본 그는 나를 안고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온전히 슬픔에 빠지지 못했다. '슬롯 꽁 머니 것은 뭘까?' 통곡과 오열은 대부분 자신의 서러움을 토해내는 방법에 불과한 것 아닌가 의심했었다. 20년을 같은 서울에 살며 연락 한 번 않던 그가 아니었나.


문상객과 슬롯 꽁 머니 가족들이 오가는 상가는 분주했다. 나는 상주도 될 수 없었지만, 문상객처럼 앉아 밥상을 받고 있을 수는 더욱 없었다. 나는 슬롯 꽁 머니 영정 앞에서 내 탄생과 성장의 퍼즐을 맞추며 그대로 앉아 밤을 새웠다. 슬롯 꽁 머니 역사가 과오투성이로 끝났더라도 나는 확실히 현실을 알아야 했다. 그와 슬롯 꽁 머니 가족에게 내 존재가 오점일 수 있으나 그건 내 선택이 아니었다.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게 태어남이니까.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 역시 이런 선택을 할 리 없었다. 없는 존재로 살길 강요받았지만,슬롯 꽁 머니 분명히 존재했고 그게 진실이었다.


새벽녘 문상객들이 돌아갔을 즈음 슬롯 꽁 머니 여섯 자식 중 제일 큰 언니에게 갔다. 상주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려주길 정중히 부탁했고 상복을 입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나는 이제 애매한 입장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슬롯 꽁 머니 자식들은 회의를 통해 내 이름을 상주 명단에 올려주고 상복도 내줬다. 그를 편히 보내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었지만, 나는 슬롯 꽁 머니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잘못이 없기는 슬롯 꽁 머니 가족도 마찬가지니까. 그는 끝까지 자식들의 배려를 받으며 떠났다.

죽은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이었다. (사노요코)

난 슬롯 꽁 머니 죽음을 빌미로 내 설움을 토할 마음이 없었다. 오히려 폭풍이 일던 마음은 슬롯 꽁 머니 장례식 뒤 거짓말처럼 평온해졌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얻은 평화라니! 그도 죽은 뒤에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를 병원에서 만난 뒤 우리 사이엔 9개월 남짓의 시간이 있었다. 그 사이 그가 요양병원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 더 병문안을 갔었다. 이제 그와 슬롯 꽁 머니 아내는 같은 요양병원의 아래, 위층에 나란히 입원해 있었다. 그는 내가 가면 무척 반겼지만, 나는 그를 간호하는 이복 언니를 배려하느라 자주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떠난 뒤에는 좋은 음식이며 떡을 맞춰 큰 어머니가 있는 병원을 찾곤 했다.


그가 떠난 자리에 싸우던 여자들만 남았다.하지만 이미 여자는 늙고 병들었다.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침대도 벗어날 수 없을 만큼 쇠약할 뿐 아니라 슬롯 꽁 머니 딸들도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었다. 나는 슬롯 꽁 머니 아내를 큰어머니라 불렀는데, 그녀는 준비해 간 음식이며 떡을 내가 병실마다 돌리고, 곁에 앉아 머리를 빗겨주거나 손을 쓰다듬어 주면 내 손을 움켜쥐며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고,그조차 한낱 부질없는 소모전이었을 뿐이었다. 내 눈에는 그녀 역시 슬롯 꽁 머니 아내로 살던 불쌍한 한 여자일 뿐이었다. 따뜻한 피가 돌고 눈물을 흘리던 슬롯 꽁 머니 아내도 그를 따라 얼마뒤 떠났고, 그것도 벌써 한참 지난 일이 되었다. 그들은 차례로 떠나며 모두 좋은 사람들이 되었다.

슬롯 꽁 머니 대단히 슬프고 끝장나게 기쁜 것을 잘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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