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인생은 고비고비마다 그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생은 곧 한 권의 책과도 같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가 늘 접하는 그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오늘도 하나의 그림을 통해 이야기를 읽는다. 근대미술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에드와르 슬롯 머신 일러스트의 '폴리 베르베르 바' 앞에 서서.
폴리베르제르의 바 A Bar at the Folies-Bergère, 에두아르 슬롯 머신 일러스트, 1882
런던의 코톨드 갤러리. 이 보석 같은 런던의 작은 미술관에서 나는 오랫동안 실물 영접하고 싶었던, 에두아르 슬롯 머신 일러스트의 <폴리 베르제르의 바를 만났다. 드디어!
폴리베르제르의 바 A Bar at the Folies-Bergère, 에두아르 슬롯 머신 일러스트, 1882
19세기 파리, 사람들로 북적이는 화려한 바의 풍경 속에서 한 여인이 홀로 서 있다. 조명이 그녀를 비추고 있지만, 그 눈빛은 어딘가 멍하고 공허하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의 앞뒤를 이어주는 커다란 거울은 현실과 환상을 동시에 비춰주는 것 같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 속 바텐더의 모습은 어느 바의 가운데 서 있던 과거의 나를 불러왔다. 나 역시 대학 휴학시절. 어느 교외 참 예쁜 레스토랑에서 바텐더 일을 했던 적이 있었다. 2층엔 근사한 패치카가 있고, 바람냄새를 맡을 수 있던 넓은 테라스가 있고, 아름다운 전원풍경 (특히 석양빛이 너무 좋았던..) 이 한눈에 들어왔던 그곳.. 투명한 유리잔이 즐비한 멋진 Bar의 주인이었던 나날들..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리고, 그들의 웃음과 비밀이 쌓이는 공간.
어쩌면 그림 속 그녀는 시대의 화려함속에서 투명한 존재처럼 느꼈을까? 거울에 비친 자신조차 낯설게 느껴지던 순간이 있다. 아주 오랜 기억을 안고 슬롯 머신 일러스트의 그림을 보자, 그녀의 표정이 내게 조용히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에두아르 슬롯 머신 일러스트는 19세기 미술계에서 혁명가와 같은 존재였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의 틀을 깨고 도시인의 삶과 일상을 그렸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에게 예술은 이상화된 신화나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의 진실이었다. <폴리 베르제르의 바는 슬롯 머신 일러스트가 남긴 마지막 주요 작품으로, 그가 평생에 걸쳐 탐구한 현대적 시선이 집대성된 걸작이다.
이 그림은 슬롯 머신 일러스트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19세기 당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상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시골에서 막 상경한 어린 소녀들이 거리로 거리로 몰리고, 불아성을 이루는 이 도시에서 돈을 좀 벌어보겠다고 댄서나, 술집 종업원, 공장 그리고 고급 매춘부로 내몰리던 시대. 저 뒤로 맨 앞 테이블에 앉아 있는 흰옷의 여인이나 그 뒤 여인도 파리에서 알아주는 화류계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82년 파리, 그 당시, 폴리베르제르 술집은 몽마르트르 언덕의 물랭루주와 쌍벽을 이루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보다는 좀 더 고급지다. 좌우지간 이 슬롯 머신 일러스트을 보면 사람들의 끊이지 않게 웃고 떠드는 소리, 시끄러운 음악 소리, 담배연기로 자욱해진 실내, 신사복을 입고 가볍게 던지는 남자들의 추태, 또 그에 질 쎄라 받아치는 여인들의 교태... 한 밤의 농밀함을 그대로 연상케 해 준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는 그곳의 바텐더를 모델로 삼아 화폭에 담았지만, 단순한 현실의 재현을 넘어서 인간의 내면을 그려낸거 같다. 그림 속 바텐더는 화려함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어디에도 닿지 않는다. 무표정하고 공허한 얼굴, 그 뒤로 펼쳐진 거울 속 세상은 현실과 비현실을 어긋나게 반영하며 보는 이에게 묻는다. “당신이 보는 이 세계는 진짜일까요?”
그림 상단에 보이는 서커스 단원의 다리는 슬롯 머신 일러스트가 사진의 크로핑 기법을(사진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 대상의 일부분만 보이는 기법) 차용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때쯤 유럽에는 막 사진기가 도입되었는데, 당시 슬롯 머신 일러스트, 드가 로트렉 등의 그림의 단편단편들이 사진의 스냅샷같이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코톨드 갤러리 안에서
바텐더로 일했던 니의 경험이 이 그림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바의 중심에 서 있던 그 시절, 나는 늘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며 그 시간 너머의 삶을 꿈꿨다. 아마 슬롯 머신 일러스트의 바텐더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녀는 바의 한 가운데서 누구에게나 보였지만, 정작 그 누구와도 닿지 못한 자신만의 세상에 놓여있지 않았을까?
그림 속 거울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거울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때로는 그 현실을 왜곡한다. 바텐더 뒤의 거울은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그것은 마치 그림자처럼 어긋나 있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는 이 작품을 완성한 후, 건강 악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인지 <폴리 베르제르의 바는 그의 마지막 고백처럼 느껴진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자리한 고독, 누군가를 비추기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이들의 투명한 존재감. 슬롯 머신 일러스트는 세상의 화려함을 그리면서도 그 너머에 숨겨진 인간의 쓸쓸함을 말하고 있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는 이 작품을 통해 묻는다. “당신은 지금 진짜 당신의 삶을 살고 있나요?” 이 질문은 바텐더였던 나뿐만 아니라, 바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것이다.
미술관을 나서며 다시 한번 그림을 보았다. 화려함 속에서 고독하게 서 있던 그녀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과거의 나였고, 때로는 지금의 우리 모두이기 때문이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의 바텐더는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우리를 비추는 거울 같은 존재다. 그녀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푸르른 5월,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런던의 풍경은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이렇게 삶은 또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