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 꽁 머니 품속에 있을 때는 몰랐던 세상만큼 나를 품고 있는 바카라 꽁 머니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바카라 꽁 머니의 그늘을 벗어나 같은 바카라 꽁 머니 입장이 되어보니 그제야 보이는 바카라 꽁 머니의 삶, 다사다난했던 한 여자가 보였다. 바카라 꽁 머니의 일대기를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언젠가 글 솜씨가 좋아진다면 바카라 꽁 머니를 인터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가녀장의 시대를 쓴 이슬아 작가처럼 바카라 꽁 머니의 인터뷰를 소설로 쓰고, 가족이 함께 낭독하면 바카라 꽁 머니의 오랜 서러움도 조금은 남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바카라 꽁 머니의 일대기가 고된 것만은 아니었음을, 한 세기에 걸쳐 살아남은 강한 여자의 모습이었음을 보여주고 싶다.
내년이면 벌써 75세가 되시는 친정 바카라 꽁 머니. 2남 7녀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나셨다. 살아남은 자녀가 아홉이고 병으로 잃은 형제도 있다고는 하는데 자세히 듣지는 못했다. 그 당시 자녀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는 일은 흔한 일이었으니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은 출산자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그 언저리에서 외할머니는 일본에서 큰 이모들을 낳았고 해방 이후 부산에 자리를 잡으면서 바카라 꽁 머니를 낳았다고 한다. 바카라 꽁 머니 뒤로 두 명의 남동생들이 태어나니 외할아버지에게서 길을 잘 터준 집안의 복덩이라는 칭송을 얻게 된다. 총명하고 새까만 눈동자, 다부진 빨간 입술, 고집스러운 곱슬머리 바카라 꽁 머니는 외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자신만만하고 당찼던 아가씨는 그때까지도 화려했던 흑백 시절이 지나고 뾰족뾰족 가시밭길의 건조한 칼라 시절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친정바카라 꽁 머니를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정이라는 단어 때문일까, 바카라 꽁 머니라는 단어 때문일까? 결혼 후 나에게 바카라 꽁 머니가 한 분 더 생겼다. 친정과 시댁을 구분하는 것처럼 바카라 꽁 머니와 어머니를 구분한다. 어느 쪽을 더 높이고 낮추고의 문제가 아니다. 친정은 나들이 가듯이 편하게 갈 수 있지만, 시댁은 특별한 이유 없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것처럼 마음속 거리만큼의 선을 지키는 것이다. 아이 둘을 둔 바카라 꽁 머니가 되어 보니 아이 넷을 키운 친정바카라 꽁 머니가 경이롭고 가련하다.
나는 어릴 적 바카라 꽁 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했다. 나를 몇 번째로 사랑하느냐고, 나를 사랑하는 게 맞냐고 원망도 많이 했다. 바카라 꽁 머니에게 셋째 딸이지만 내 순위는 네 번째 같았다. 샘을 많이 내어서 욕심이 많은 아이로도 비쳤다. 나는 욕심이 많았던 게 아니라 관심을 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어린 시절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형제들로부터 퍼즐을 맞출 뿐이다.
형제들도 기억할 수 없는 더 어린 시절은 내 몸의 흉터로 기억한다. 단층 가정집에 방과 구분된 바깥 부엌이 있던 시절이다. 연년생으로 태어난 둘째, 셋째, 넷째를 돌보느라 혼이 쏙 빠진 바카라 꽁 머니가 가마솥에 기저귀를 삶고 있었다. 둘째 언니는 예민하여 바카라 꽁 머니 포대기에 싸여 있었고, 넷째 남동생은 손자를 끔찍하게 좋아하시는 친할머니가 둥구당가 돌보고 계셨을 것이다. 사실 남동생이 태어났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내가 기어 다녔다고 하니 그랬을 거라고 짐작한다.셋째인 나는 젖병을 물려주는 대로 들고 먹고 배가 고프지만 않다면 울지도 않고 혼자서 잘 놀 정도의 순둥이였다고 한다. 그런 아이가 소리 내지 않고 기어서 부엌 부뚜막에 올라가 하필 팔팔 끓고 있는 솥에 빠졌다. 바카라 꽁 머니에게 들을 수 있던 에피소드는 자극적이면서 신화적이었다. 어린아이가 펄펄 끓는 솥에 빠졌는데 얼굴에 화상 하나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방 건져내어 다행스러운 상황이었다고 회고하셨지만 그 후에 어떻게 처치하셨는지 까지는 안타깝게도 들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오른쪽 옆구리에 길게 생긴 흉터가 있다. 오른팔을 들고 뒤를 돌아보아야 겨우 보이는 흉터 자리는 수영복을 입어도 교묘하게 가려진다. 피부의 탄력성이 좋고 다쳐도 금방 아물며 회복력이 좋았던 젊은 시절에는 피부색과 흉터색이 구분이 되지 않아 흉터가 사라진 줄 알았다. 그래서 바카라 꽁 머니에게도 말씀드렸더니 바카라 꽁 머니는 그저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바카라 꽁 머니도 나도 흉터의 기억이 상처로 남지 않았다. 기억은 내가 보이는 대로 조작된다.
둘째 출산 후 스스로 거울 보기를 멀리했었다. 어느 날 허리 사이즈가 조금 줄어든 것 같은 느낌에 확인 차 샤워를 하고 몸을 돌려 거울을 바라보았다.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흉터가 눈에 띄었다. 넓게 퍼져 있는 몽고반점 같아 보이는 옆구리 흉터는 생전 처음 보는 거였다. 자세히 보니 미국 대륙을 닮아 있는 흉터, 이렇게 생겼었구나. 꽤 큰데 그동안 왜 못 봤을까? 언제부터 드러나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생긴 기미처럼 자리 잡고 있는 화상 흉터를 보니 새삼 당시의 열감이 생각 나는 듯했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많이 아팠겠다.
아이를 다치게 했다는 바카라 꽁 머니의 죄책감은 얼마나 컸을까? 나 보다 예민했던 언니, 나 보다 어렸던 동생, 타박 주는 할머니가 있어 마음을 제대로 돌아보기나 했을까?그 시절이 바카라 꽁 머니에게 얼마나 가혹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딸과 바카라 꽁 머니와는 친구 같을 거라는 편견이 있다. 우린 좀 달랐다.
남편은 나에게 자주 물어본다.
"장모님이랑 싸웠어? "
"아니, 왜? "
"근데 왜 그렇게 전화를 안 드려?"
"우린 원래 그래."
"장모님이랑 사이가 안 좋아? "
"아니, 왜? 우리 사이좋은데. "
"꼬박꼬박 존댓말 하길래. 처형들은 안 그런 것 같아서"
"그랬나? 우린 원래 그래."
내가 결혼하던날 나이 든 바카라 꽁 머니의 눈 색깔을 처음 봤다. 간절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버텨낸 인어 공주가 생각나는 눈이었다. 사연을 담고 있는 깊은 갈색 눈동자를 둘러싼 찰랑거리는 푸르름, 에메랄드 빛이 나는 눈빛은 바카라 꽁 머니의 한복 색깔과도 너무 잘 어울렸다. 예쁘고 고운 바카라 꽁 머니를 더 이상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친정과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셋째딸의 소식은 이제야 여유를 찾은 바카라 꽁 머니에게 큰 걱정거리가 되기 쉽다. 나는 무소식이 희소식이 된다는 말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