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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라 꽁 머니의 보편적인 찌질함에 대하여 (1)

영화 <건축학 개론

우리의 "기억"은 기록 장치에 따로 기록해두지 않는 한, 굉장히 주관적이고 편협한 것이다.

아니, 사실 기록해두더라도 그 기록에 관한 각자의 입장은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완전하게 객관적인 과거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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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 조현철, 유연석. 당시에는 조.단역이었지만 이제는 주연급 배우들이다. 특히 조현철 배우의 D.P.에서의 연기는 강렬했다.

500만 가까운 관객을 불러내며 김동률 신드롬과 함께 조정석이라는 배우를 발견하게 해 준 작품.바카라 꽁 머니은 하나같이 승민과 첫사랑 서연에게 본인을 이입했던 영화. 여자들은바카라 꽁 머니한 첫사랑 타령하는 남성 판타지 영화가 나온 것이라며 낮은 작품성을 지적했던 영화. <건축학 개론이다.


바카라 꽁 머니은 결혼에 실패했다. 자신의 꿈이었던 피아노와 가족인 아버지마저 버려둔 채 선택한 남편과는 그토록 원했던 사랑도, 돈도, 명예도 얻지 못했다.

승민은 결혼은 앞두고 있다. 여자 친구가 참 좋지만, 그녀와의 미래가 기대되면서도 막연하게 두렵고 부담스럽다.

그런 그가 우연을 가장한 건축 의뢰로 바카라 꽁 머니을 다시 만나게 된다.


승민은 바카라 꽁 머니을 "썅년"으로 기억한다. 그 기억에는 여러 근거가 있다.

바카라 꽁 머니은 아나운서가 되어서 부잣집에 시집가고 싶어 하는 속물적인 여자였다.
펜티엄 컴퓨터를 가지고 혼자 자취를 하는, 자기 차도 가지고 있는 부자 선배가 멋지다고 말했다.
승민이 용기 내어 찾아간 그날, 술에 잔뜩 취해서는 잘생기고 부자인 그 선배에게 안겨서 집에 들어가는 바카라 꽁 머니을 봤다.
자신한테 먼저 연락하고 호감 표시해놓고서는, 잘 나가는 선배에게 안겨서 넘어가는 나쁜 년.

승민은 그러한 자신의 기억을 근거로 바카라 꽁 머니에게 "꺼지라"라고 말한다.

이제 좀... 꺼져줄래? 승민은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모질고 아픈 말을 골라서 바카라 꽁 머니을 쑤셔놓는다.

그러나 승민의 기억이 거짓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편집된 기억이다.

바카라 꽁 머니이 부잣집에 시집갈 거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그건 승민의 가난함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부자인 선배가 멋지다고 말한 적은 있어도, 한 번도 그 선배를 좋아한 적은 없었다.
용기 없는 승민 때문에 건축학 수업을 핑계로 매번 용기를 내서 약속을 잡아야 했던 건 바카라 꽁 머니이었다.
승민의 서툰 입맞춤도 모른 척 넘어가 줬다. (승민은 보지 못했지만) 그 선배 놈의 억지 입맞춤을 술에 취한 와중에도 모두 거절한 바카라 꽁 머니이었다.
이걸 쳐다만 보고 있을게 아니라, 소주팩을 던지고 주먹을 휘둘렀어야 한다. 승민은 스스로의 열등감에 발이 묶여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비겁하게 지켜만 봤다.
바카라 꽁 머니이 술에 잔뜩 취했던 바로 그날, 승민은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으면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가장 비겁한 것은 바로 승민 자신이다.

짝퉁GUESS티셔츠를입은스스로가 한없이작아 보였더라도,비록 열등감에 짓눌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더라도,그 선배를 막고 싶었다면, 그리고 바카라 꽁 머니을 정말 좋아했다면 소주팩을 집어던지고 뛰쳐나가야만 했다. 바카라 꽁 머니이를 데려가지 말라고, 주먹이라도 내질러야 했다.

하지만 용기도 자신감도 없는 승민은 그저 그 모습을 바라만 봤고, 바카라 꽁 머니을 위험 속에 버려둔 채, 비겁하게 뒤돌아서 울기만 했다.


결국 속상하고 화가 나는 건 승민이겠지만, 과연 바카라 꽁 머니과의 사이에서 그가 그리도 당당하게 피해자를 자처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몇 가지 편집된 기억과 바카라 꽁 머니의 속물적인 면모들만을 끄집어내어 "썅년"에게 꺼지라고 선언하는 그를 보면, 영화 <500일의 썸머 에서처럼, 누가 진짜 가해자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가장 아프고 속상한 승민일 테지만, 과연 피해자를 자처할 처지인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영화를 보는 모든 남성들 또한, 그렇게 과거의 자신을 돌이켜보며 반성한다.

감독이 주인공 승민을 통해서 투영하고자 했던 건 당사자에게 사과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상대방을 "썅년" 취급하며 도망쳤던 스스로가 비겁했다고, 미안하다고, 20살 그땐 내가 너무도 어리고 무지하고 모자랐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뒤늦게 깨달은 바카라 꽁 머니에게 이미 지난 사랑은 사과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 이 영화는 누가 봐도 남성들을 위한 판타지 영화이다.

"이루어지는 첫사랑" 판타지가 아닌, "지난날 너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제멋대로 욕하고 찌르면서 스스로를 보호했던 못난 자신에 대해서 상대방에게 직접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판타지이다.
바카라 꽁 머니은 무슨 생각을 할까. 영화가 끝날 때쯤, 바카라 꽁 머니 입장에서의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승민은 결국 바카라 꽁 머니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과거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바카라 꽁 머니 또한 본인의 마음을 털어놓은 후에야 피아노, 아버지와 함께 제주도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남겨놓을 것은 오로지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 뿐이다.


앞으로 한국 영화에서, 같은 주제를 놓고 여성 입장에서의 서사와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영화 또한 나오면 어떨까, 기대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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