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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런 사설 카지노’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13개월 된 아들과 소아과에 갔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와 아이를 자꾸 쳐다봤다. 보고 고개를 돌렸다가 또 보고, 눈을 맞추고 말을 거는 사람도 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가 아직 아기라서 쳐다보는 건가? 아니면 너무 예뻐서? 이상해서 동생에게 이야기했더니 이리 저리 이유를 찾다 내가 쉬지 않고 아이한테 말을 건네서 쳐다본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요즘 아이가 ‘빠방, 말’과 같은 유아어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에 장단을 맞춰서 대화하는 내 모습을 사람들이 신기해했던 거다.

오래 전,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한 친구만 아이가 있었는데, 뷔페에 도착하자 친구는 아이를 아기 의자에 앉히더니 갑자기 그림책을 꺼냈다. 그리고는 내성적이었던 내 친구는 큰소리로 영어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정적이 흘렀다. 나와 친구들은 황당하고 민망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내 친구가 왜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며 키득거리며 이야기 했다. 난 나중에 아이가 생겨도 사람 많은 곳에서 절대 노래를 부르거나 혀짧은 소리를 내지 않을 거라고 말했던 기억도 난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난 ‘그런 사설 카지노’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많았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혀짧은 소리로 아이와 대화해서 보는 사람만 민망하게 만드는 ‘그런 사설 카지노’, 책 한 권 한 권 골라서 사주지 않고 전집으로 왕창 사서 안기는 ‘그런 사설 카지노’, 아이가 남긴 밥을 아무렇지 않게 주워 먹는 짜장면을 싫어하는 ‘그런 사설 카지노’, 아이 것은 최고급으로 자신의 것은 최저가로만 사는 ‘그런 사설 카지노’, 아이에게 습관적으로 미안해하고 죄책감 가지는 ‘그런 사설 카지노’, 항상 자신보다 아이가 먼저인 ‘그런 사설 카지노’. ‘그런 사설 카지노’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지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난 정확하게 내가 되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런 사설 카지노’가 되었다. 사람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하루 종일 아이와 같이 옹알이하고, 가성비는 역시 전집이라며 전집 만능주의자가 되었고, 아이가 남긴 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아이 것은 유기농, 무독성, 친환경만 사고 내 것은 오늘 행주를 샀다. 아이가 넘어져서 울면 넘어지기 전에 못 봐서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한다. 나는 ‘그런 사설 카지노’가 되었다. 임신했을 때만 해도 이기적인 사설 카지노가 되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었는데. 1년 전만 해도 도도한 현대 여성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전통적인 한국의 어머니가 되어버렸다.


사설 카지노


어릴 때, 항상 자신의 것은 챙기지 않고 나한테만 좋은 것을 해주려는 사설 카지노가 불만이었다. 나를 자신보다도 남편보다도 우선시 하는 것이 미안하고 부담스러웠다. 사설 카지노의 낡은 속옷이, 내가 입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버릇처럼 말하는 게 싫었다. 나는 다른 사설 카지노가 되고 싶었다. 쿨한 사설 카지노, 생각하면 웃긴 사설 카지노,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설 카지노가 되고 싶었다. 그랬었는데 1년 만에 이렇게 되어 버렸다.


내가되고싶지않았던건아이를우선시하는사설 카지노의모습이었는데, 은연중에나는희생적인사설 카지노를미련하다고생각하고있었던것같다. 우리는사설 카지노라는존재에대해온갖것을요구하고잣대를들이대고평가질을한다. 한쪽에서는모성을강조하면서미화시키고, 최근에는부부관계를최우선시하면서자식을위해희생하는것은어리석다고생각하는경향이있다. 나는후자쪽의생각을하고있던사람이었는데, 아이를낳고전자의모습을보이는스스로가당황스럽다.


그런데내가그렇게되기싫었던‘그런사설 카지노’가되고보니이게뭐어때서?라는생각이든다. 아이밖에모르는자식바보사설 카지노든, 여전히자신이우선인사설 카지노든뭐어떤가? 70억의사람이있으면70억의다른사설 카지노들이있겠지. 뷔페에가서큰소리로영어동요를불러서아이를얌전하게만드는사설 카지노도있고, 병원에가서도집에서처럼아이와쉬지않고말하는사설 카지노도있다. 세상에‘그런사설 카지노’는없다. 각기다다른사설 카지노들만있을뿐이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사설 카지노로 변신하고 성장할지 모르겠다. 내 모습을 짐작조차 못하겠어서 궁금하고 두렵고 설렌다. 다만 이제는 어떤 사설 카지노가 되겠다나 안 되겠다는 그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뷔페에서 동요 부른 내 친구를 비웃었던 내 모습을 반성하면서.

사설 카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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