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너희들 키우느라 바쁘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엄마다. 마흔 넘어서나 키워보거라 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동물과 인연이 없는 내가 오랜 기간 함께 산 동물은 슬롯 머신 일러스트 씨, 바로 고양이다.
사진: Unsplash의 Kate Stone Matheson
일곱 살 어린 슬롯 머신 일러스트은 많이 외로움을 탔나 보다.
한참 나만의 고민에 빠져있을 고등학생, 이제 새내기 대학생이 된 언니를 쭉 보면서 혼자 외롭게 있었던 듯싶다.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지만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니까.
늘 어딘가에서 작은 아기 슬롯 머신 일러스트를 데려왔고, 그중에 한 마리는 오래 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같이 묻어줘야 했다. 늘 슬롯 머신 일러스트를 키우고 싶었던 동생은 사실 병아리를 영계로 키워낸 경력자다. 학교 앞에서 박스 안에서 삐약거리던 작은 아이를 데려와 닭으로 잘 키웠는데 복날에 사라지고 말았다. 아, 우리 할아버지. 왜 그러셨나요? 여하튼 이후론 병아리를 데려오지 않았고, 난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병아리가 삐약거리며 종종걸음으로 다니는 게 난 귀엽지 않았다. 한동안 동물 사랑이 잠잠한가 싶더니 이후에 우리 집에 온 손님은 슬롯 머신 일러스트였다. 한 번도 슬롯 머신 일러스트를 키울 생각도 귀엽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는 왜 자꾸 슬롯 머신 일러스트를 집으로 데려오는지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데려온 슬롯 머신 일러스트는 참 희한했다. 싫지가 않았다. 겁이 많은 것도 좀 귀여운 것 같고, 사람처럼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고 돌리는 것도 신기하고, 목욕을 시키고 아기처럼 수건으로 잘 말려주기도 하고. 요한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는데 집에서 혼자만 다른 성씨인 엄마는 엄마 성씨를 붙여서 김요한이라고 부르자고 하셨다. 요한이는 정확히 딱 알맞게 우리 식구가 되었다. 딱히 챙겨주진 않았지만 내가 퇴근하면 아는 체를 하고, 주로 동생 곁에 있거나 동생 책상 위에 앉아 골골거리곤 했는데 잠이 들 때면 이불 끝에 몸을 말고 함께 있는 게 제법 귀여웠다. 가끔 캣닙을 주면 황홀한 듯 몸을 뒤트는 것도 와서 양양거리며 아는 체를 하는 것도 신기하고 좋았다. 결혼을 한 후 몇 년을 함께 살진 못했는데 가끔 아프다는 말을 들으면 좀 마음이 짠하거나 덜컹거리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내 애들 키우느라 잊고 지내기도 했고.
지역에서 레고 축제가 열리던 어느 날,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데 동생의 전화가 왔다. 요 며칠 요한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시켰다고 했는데, 퇴원할 줄 알았는데 13년의 생을 마치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연락이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녀석을 보면서 슬롯 머신 일러스트이 패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몇 년을 함께 살다가 결혼을 한 후 또 몇 년은 헤어져 지냈는데, 그래도 이렇게 가슴이 아리다니. 사실 그냥 쭉 친정에 있을 줄 알았었나 보다. 사람처럼 늙어가면서. 그 아이는 나이 들어가는데, 인간의 속도와는 달랐는데 같은 시간 속에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딱히 애정을 표현하지도 않았으면서 슬퍼진다는 건 그래도 함께 지냈던 시간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했던 그 때문이겠지.
맘껏 쓰다듬어주지도 않았으면서, 새로 산 겨울 코트에 털이 붙는다고 싫어하면서 그러면서 귀엽다고도 느끼면서. 가까이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않으면서. 환기를 시킨다고 문을 열었을 때 호기심에 밖으로 나갔던 너를 애타게 동생과 찾으면서. 꼬질꼬질 땟국물이 묻어있는 너를 발견하던 내가 안도의 숨을 쉬면서. 희한하게도 꽤 이쁘다, 눈이 초롱초롱하다 생각했는데. 사진 속에 있는 요한이를 보면 분단위를 사는 내 삶이 차라리 다행이다 싶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무너지던 그 마음은 더했겠지. 내가 이 정도였는데 동생은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을까. 차라리 잘됐다며 다시는 생명을 집에 들이지 말자며, 가슴이 찢어진다며 말하는 친정 엄마를 보며 나도 격하게 동의했었다. 금방 잊고 사는 게 인간이라지만 찰나의 슬픔을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기에 이 이상의 생명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결심했다. 세상에 내어놓은 건 아이들로 충분하다. 주변에 한 군데밖에 없는 화장터를 찾아 남원으로 향하던 길은 지독히 추운 계절이었고, 요한이의 죽음에 서울에서 한달음에 내려온 사촌동생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끼던 내가 한 시간 남짓 간 멋들어진 화장터에서 요한이의 수의를 고르고 재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과 사의 갈림길을 느끼며 미련하게 아팠던 마음이, 마음껏 동생을 위로해주지 못했던 마음이 자꾸 상충되어 떠올랐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나 키우며 글이나 쓰다 혼자 살면 어쩌나 하고 동생을 걱정했던 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던 날. 하필 그 겨울, 추웠던 그날.
가만히 동생을 보니 얼굴이 슬롯 머신 일러스트상이다. 이 와중에 난 그걸 생각하고 있다.
슬롯 머신 일러스트 상 얼굴이라 슬롯 머신 일러스트를 그토록 좋아했을까.
그럼 난 뭘 닮았을까?
강아지도 슬롯 머신 일러스트도 하물며 금붕어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무엇도 닮지 않았다.
늘 나 자신을 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디에나 담겨있을 수 있는 사람.
좋게 말하면 참 다채로운 인간인데, 다르게 보면 이도 저도 아닌 맹숭맹숭 물 같다고 할 수 있는 사람.
닮은 동물도 좋아하는 동물도 없는 난 그냥 동물을 내 인생에 들이지 않기로 했다.
굳이 슬픔을 만들고 싶지 않고, 애써 애정을 주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아픔을 느끼고 싶지 않은, 나를 보호슬롯 머신 일러스트 싶은 그런 이기심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