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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카지노, '옥희'가 누구예요?

우리 카지노

우리 카지노는 긴 세월 치매를 앓으시다요양원에서 마지막 심정지를 맞으실 때까지가장 많이 부르시고 찾으신 이름이 옥희였다.

당신 딸에게도, 며느리인 내게도,요양보호사님에게도,

"옥희냐? 옥희 왔냐? 옥희 왔소?" 하셨다.


우리는 도대체 옥희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서 ’우리 카지노~ 옥희가 누구예요?’ 묻했다.

우리 카지노의 대답은 항상 3마디 돌림노래처럼반복되었다.


“아따~ 내 소학교 친구 아니냐?”

그렁께... 그때 그 우리 옆집새댁이었재~”

“옥희? 고년? 니 아부지 거시기 아니드라고. 고년 만나기만 해봐라.”

우린 이 세 사람 중,심정적으로아버님의 거시기가 아닐까 강하게 추측해 볼 뿐이다.

무튼, 그 옥희라는 이름은 우리 카지노가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싶은, 아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름은아니었을까.


프러포즈에 엉겁결에 결혼을 약속한 그가 집으로 초대한 날,거봉한 상자를들고찾아간아가씨를 우리 카지노는 양말발로 맞이해 주셨다.

미리 기별이 닿았는지 시숙님 내외분도 함께였다.

형님이 간단한 다과상을내오고 몇 마디를이어가던 중,우리 카지노는 갑자기벽걸이 달력을떼오시며말하셨다.


“빨리 날잡아야지?언제가좋겄는고?"

어맛~ 간단한 인사만 드리러 온 자리였는데, 성격 급한 우리 카지노 덕에 우린 그날 결혼 날짜까지 잡아버렸다.

그때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는 매서운(?) 눈이 있었는데, 바로 위 형님내외분이셨다.

형님은 본인 드리실 땐 우리 카지노의 반대로 엄청 맘고생 심했는데, 우리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날짜 먼저 잡으려 하시자 입을 대빨로내밀고 있었다.(나중에 들은 얘기다)

우리 카지노는키는 작지만 야물어 보이는 내 인상이 그리 싫지 않으셨나 보다.


그렇게 우리 카지노의 첫 환대를 시작으로 나는 결혼생활 내내 우리 카지노의 사랑과보살핌을 아낌없이받았다.

우리 집 냉장고 음식은 모두 ‘메이드 인 시우리 카지노’고 웬만한 살림살이도 우리 카지노의 정성과 센스로 채워져 갔다.

나 또한 우리 카지노 찾아뵙기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우리 카지노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국물하나 남김없이 깨끗이 먹어치웠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 카지노가 싸주신 음식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요긴하게 챙겨 들고 갔다.

남들은 시댁에 ‘시’ 자가 들어가는 시금치도 먹지 않는다지만 나는 본래 시금치를 좋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우리 카지노 음식이 친정엄마 것 보다 더 내 입맛에 맞고 달았다.

당연히 나는 시댁 가는 것에 군소리없었고, 그런 둘째 며느리가 예쁘셨는지 우리 카지노는내게어떤부담스런 요구나미운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대신, "일하기도 힘들탠데푹 쉬었다 가거라잉, 이리 자주 오는 것도 어디다냐~' 말씀하셨다.


그러니 시댁 가는 것이 친정만큼이나 깃털처럼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우리 카지노는 나와 형님 사이에서 참 어려운 역할을 하셨다.

나의 고추당초 시집살이는 우리 카지노보다 동서형님에게서 더 매섭게 나왔다.

형님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마땅치 않아 했고 나오는 말마다 가시가 돋아 내가슴을 콕콕 찔렀다.

그 틈새에서나이드신우리 카지노가 얼마나 긴장하며 사셨을까?

어떻게든 집안 시끄럽지 않게, 서로 상처받지 않도록 무진장 애쓰신 참 어른이셨다.

우리 카지노는 한 번도 두 며느리 사이에서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고 어떤 말도 시시콜콜 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우리 카지노의 이한 말씀으로난 우리 카지노의 마음을 다 알 것도 같았다.


“너도 형님 시집살이가 힘들었겠지만, 나도 며느리 시집살이로힘들었어야...”


내가 2년 동안 4번의 유산을 겪어낼 때도 우리 카지노는 내 맘고생에 조금이라도 보태지지 않을까 최대한 조심하며 숨죽이셨다.

대신, 애기 없어도 괜찮다며, 아무 생각 말고 건강에만 신경 쓰게 하라며 그이에게만 조용히 당부하셨다.

나는 떡례(딸내미)를 낳고서야 우리 카지노가 얼마나 우리를 애달파하고 우리아이를 기다리셨는지 알게 되었다.

무사히 아이를 낳아 우리 카지노 품에 안겨드렸을 때 우리 카지노의 울 떡례 사랑은모두의질투의 대상이 될 만큼유난스러웠다. (그렇게 유난스러운 분이 아니신데,,,)

열명이 넘는 손주들이 이미 있었지만우리 카지노 곁에한참늦게 도착한 지각생 떡례를첫 손주 보시듯애지중지, 어화둥둥하셨다.


내가 10년에 걸쳐 기간제 교사, 대학원 진학, 임용준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자 우리 카지노도덩달아바쁘셨다.

형편껏 금전적인 보템을 주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살림을 도맡아주셨으며,혹여내가 부담을 느낄까 봐 되려 내 눈치까지살피며 도움을 주셨다.

내가 47살에 임용에 합격했다는소식에는,누가말릴 새도 없이 바로 그날 노인회관에 떡과 과일을 돌려버리는 바람에 나의 등장보다 동네방네 소문이 먼저 가 있을 정도였다.

우리 카지노는 그런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다. 여기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의 크고 많은 사랑을....


우리 카지노는나이가 들어가시면서 종종 당신의 노후에 대해걱정의 말씀을 하셨다.


"나는 요양원은 가기 싫어야~ 그렇다고 니 형님 하고도 못 살 것 같어야~"


그 말씀에, 나는 혹여 우리가 우리 카지노를 책임져야 할까 봐 오만 핑곗거리를 생각하며 눈을 피하곤 했다.

'버젓이 장남이 있는데 둘째인 우리가 모신다는 것도 모양새가 그렇지 않은가?

혹여 나중에 모시게 되드라도 미리 약조를 드리는 것도 아닌 거 같고...'


하지만 우리 카지노는 형님 차지도 내 차지가 되기도 전에 너무 빠른 나이에(75세) 치매라는불청객을 들이셨다.

그리 싫다셨던 요양원에 거의 8년을몸담으셨고(그전엔 딸들이 우리 카지노를 모셨다), 우리가마지막 임종을 지켜볼 새도 없이 동트기 전 새벽녘요양원에서 혼자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요양원에서 마지막으로 뵙던 날, 유난히 컨디션이 좋아 보여 안심하고 있던 차에 갑가지 날아온 비보였다.

나는 우리 카지노의 연락을 받고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그렁그렁 고인 눈물 뒤끝으로 염치없는통곡을 했다.

당신 살아생전 그리도 듣고 싶으셨을'우리 카지노,저희가 모실게요. 저희가 있잖아요' 이 말,결국 빈말이 되고 말았을 이 말을 왜 그땐 하지 못했을까 아니, 안 했을까 한없이 자책하며....

열 자식 한부모 못 모시고,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고, 아들자식 놈 다 소용없다는 말들이 새삼 아프게 다가와가슴에불덩이로 내려앉았다.


평소 말수가 별로없으셨던 우리 카지노는정신이 맑지않게 되면서봇물 터지듯많은 얘기들을쏟아부으셨다.

그 봇물 사이로 난 아버님의 외도와 아버님의 거시기에 대해 드믄드믄 엿들을 수 있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님은 잠깐, 아니 좀 길게, 한눈을 파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경제력 없이 주렁주렁 아이들을 건사할 자신이 없었던 우리 카지노는 아버님의 외도를 모른 척 눈감으시기로 결심하셨다.

그런데 공무원 감찰관이 아버님의 외도를 확인하러 왔고, 젊고 미인이신 우리 카지노를 되려 아버님의 외도녀로 오해하는 두 배의 억울함을 겪게 되셨고, 감찰관이 우리 카지노의 진짜 존재를 알고서는 '그런 일 없었냐?' 묻자 '절대 그런 일 없다'며 딱 잡아떼기까지 하셨다.

그렇게 우리 카지노의 용서(?)와 현명함(?)으로 직장에서 살아남으신 아버님은 뒤늦게 본집으로 돌아오셔서 가정과 처자식을 지키셨지만, 그때 깊숙이 눌러 둔 우리 카지노의 배신감과 상처는 이성이 힘을 잃어갈 때부터 봇물이 되어 넘쳐흐르고 흘렀다.


우리 카지노가 떠나시고 3년의 세월이흘렀다.

우리는여전히‘옥희’라는 분이 누구인지 정확히 모른다.

어쩌면 우리 카지노에게는 85년간의 생에서 가장 강하게 각인된 3명의 옥희가 존재했으리라~

어린 시절, 꽃들판을 까르르 뛰어다니며미래를 함께 꿈꾸었을 소학교 친구 옥희와,

꽃다운 18살에 시집와 퍽퍽한 신혼살림에 함께 울고 웃었을 이웃집 새댁 옥희,

그리고 잊어버리고 싶지만 마지막까지 입가에 맴도는 아버님의 외도녀였던 옥희~ 온전한 정신일 때는 차마입에 담지 못하고정신이흐릿하신후에야고장 난 녹음기처럼 수없이되뇌어야했을그 이름~.

우리 카지노는 지금 머나먼 하늘정원에서 어떤 옥희를 만나고 계실까?

소학교 동무를 만났을까, 이웃집 새댁을 만났을까, 우리 카지노의 그년이면서 아버님의 거시기를 만났을까?

어떤 옥희를 만나셨든 그곳에서는평안한 마음으로어떤 미움도 없이 모두가 사이좋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대신 아버님은빠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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