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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파라오 슬롯의 플롯: 극락과 지옥을 잇는 거미줄

오늘의 파라오 슬롯: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거미줄」

이 줄에 매달려 올라가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야. 잘하면 극락에도 들어갈 수 있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파라오 슬롯」


청탁받은 파라오 슬롯 원고 작업 중 이런저런 생각의 갈래가 뻗는다. 이사를 앞두고 돈 쓸데가 많은데 훨씬 큰돈이 되는 다른 일을 제쳐두고 저 작업을 하자니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물었다. 왜 이걸 쓰고 있는가? 청탁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청탁이 없다면 쓰지 않을 건가? 안 쓴다. 이렇게 답하고 보니나의 행동이 참 이상스럽게 여겨졌다.


06다. 문예지 자체가 줄어든 시대적 사정도 있다.


따라서 전통적인 원고 청탁 제도는더 이상 창작의 동기가 될 수 없다. 이제는 외부의 요청과 관계 없이, 웹상의 플랫폼(바로 이런 브런치)에 작품을그냥 써서발행하면 된다. 자기 자신에게 원고청탁한 뒤 스스로 발표하는 것이다. 글쓰기 플랫폼은 넘쳐난다. 잘만 하면 돈도 벌 수 있다. 웹(인터넷)은 문학의 낡은 관습과 권위를 간단하게 허물어버렸다(웹파라오 슬롯이 좋은 예다). 거미줄(web)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 그 그물망은 극락에서 지옥까지 온 세계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극락에서 내려온 한 줄기 빛을 지옥의 인간이 불잡는다. 우리의 ‘길’은 어느새 수평을 넘어 수직으로 뻗어 있다. 끝없이 갈라지는 파라오 슬롯의 길은 저 높은 혹은 깊은 이세계(異世界)를 향해촉수를 내민다. 그렇게 정원뿐 아니라 허공에도 길이 열린다. 파라오 슬롯 속에서 “천상으로부터 한 줄기 은빛 거미줄이” 내려와 극락과 지옥을 연결한다. 이 또한 한달음에 극과 극을 왕래하는 초단편의 왕도를 보여준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거미줄」 속 인물은 죄수다. 그는 지옥 탈출 및 극락 입성을 위해 빛나는 거미줄을 움켜쥔다.


그리고 오른다. 땅속에서 나와 하늘향하는 생명체, 그 이미지가 거미나 인간보다 ‘용’으로 그려지는 건 왜일까. 용의 해, 용의 달, 용의 날에 태어나 ‘류노스케(龍之介)’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작가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연중 해가 가장 빨리 뜨는 날, 해의 요일(日), 해 뜨는 시각에 태어나 태양의 이름을 얻었다(직접 지은 이름으로 개명했다). 올해는 청룡의 해이고 다음 달엔 일출이 보이는 집으로 이사한다. 용과 해(태양)는 모두 왕을 상징한다. 다시 왕도(王道)다.


초단편파라오 슬롯의 왕도를 걷는 데는 구조라는 지도가 필요하지만 그 지도는 초단순 형태면 족하다 했다. 그렇다면 플롯이란 무엇인가. 다양한 플롯의 유형들은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플롯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볼 것파라오 슬롯. 일단 문예이론에서 플롯은 주로 스토리와 비교된다. 스토리가 ‘시간 순서에 따른 사건의 배열’이라면 플롯은 ‘인과 관계에 의해 재구성된 사건의 배열’파라오 슬롯. 이처럼 플롯과 스토리는 ‘사건들이 무엇에 따라 배치됐는가’에 따라 구분된다.


플롯과 구조의 차이 혹은 관계는 이보다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플롯은 한마디로 구조의 구조화됨, 그 짜임, 더 정확히는 ‘짜여지고 있는’ 구조를 말한다. 뭔 소리인가? 예시를 통해 살펴보. 불교 <사문유관의 동서남북 구조를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써낸 본인의 작품「불멸」을 보자. 이 파라오 슬롯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 동문: 늙지 않음

⚬ 남문: 병들지 않음

⚬ 서문: 죽지 않음

⚬ 북문:불멸07


이처럼 「불멸」은 네 개의 문으로 구성돼 있는데, 그 문들이 ‘어떻게’ 한 작품 속에 엮여 있는가 하는 것이 플롯파라오 슬롯.그것은네 개의 문을 구슬처럼 하나로 꿰어낸줄 또는 힘파라오 슬롯. 동문-남문-서문-북문 사이에파라오 슬롯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 줄은 엄청나게 강하고 질기다. 「파라오 슬롯」의 주인공은 그걸 타고 천상에 오르며, 스파이더맨은 파라오 슬롯 하나로 세상을 구할 정도다. 플롯의 본질은 바로 이 파라오 슬롯의 질김, 강함, 장력(張力)에 있다.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다. 어떤 형태를 가진 작품의 형이하학적 얼개가 구조라면, 플롯은 그 구조의(형이하학을 아우르는)형이상학적 측면, 즉 그것을 그러한 형태로 조직하는 에너지, 혹은 그 작품 전체에 작용하는 동력파라오 슬롯. 이 힘에는 창작(작가) 및 행위(인물)의 동기/의지/태도 등이 포함된다.파라오 슬롯「불멸」에 작용하는 그 힘은 ‘불멸’이라는 목표 달성파라오 슬롯. 주인공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 채) 불멸에 이르기 위해 동서남북을 동분서주한다. 이에는 ‘불멸에 이른다’는 동기/의지/태도가 담겨 있다.


05도 그플롯전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구조와 마찬가지로플롯 또한 작품과 함께 ‘생성’된다. 거미는 파라오 슬롯 전체를 미리 그려놓고 집을 짓지 않는다. 거미집이완성된 뒤에보니 그런 모양새가 된다. 플롯 또한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플롯은 파라오 슬롯이완성되기 전에그려진 설계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파라오 슬롯은 보르헤스 말대로 ‘이미 존재하는 미래’와 같기 때문이다. 작품이 나오기 전에 그린 설계도가 실은 작품보다 늦게 나온 것이라는 역설이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기에 구상되고 설계되며,작업을 통해 물리적으로 현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플롯을 작성한다는 것은 나의 파라오 슬롯이 존재하는미래를 선택하는 행위이자, 그 파라오 슬롯이 부재하는 현실과 그것이 구현된 현실 사이에파라오 슬롯을 치는 일파라오 슬롯. 이렇게 창작하는 의식은 현재와 미래 사이에 줄처럼 걸쳐 있다. 그렇기에 줄타기(창작) 활동을 통해 실제로 창조되는 것은 작가 자신파라오 슬롯. 창작이란 근본적으로미래(고차)의 자기와통합되는04


이를 「파라오 슬롯」 내용에 빗대면, 극락은「파라오 슬롯」이 있는 세계이고 지옥은 「파라오 슬롯」이 없는 세계라 할 수 있다.여기서의 「파라오 슬롯」은 내가 쓸 파라오 슬롯이다. 파라오 슬롯의 씨앗(착상)이 심어진 뒤 그것이 작품으로 완성되면 극락으로 올라가는 것이고,그렇지 않으면 현 상태에 머물거나 추락하는 것파라오 슬롯. 그것이 지옥파라오 슬롯. 지옥이란“자기 존재를 표현할 수 없는 상태”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플롯은 그 지옥과 극락 사이를 잇는 다리이며, 천상에서 전송된 파릇파릇한 청사진인 것파라오 슬롯.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파라오 슬롯을 쓰는 이유는 청탁이나 원고료, 독자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미래의 그 파라오 슬롯 세계에서 내려온 빛 때문이다. 그 빛줄기가 거미줄이다. 그리고 작가는 스파이더맨다. 글 쓰는 스파이더맨의 파라오 슬롯은 저위에 있는 나의 몸에서 나와,아래에 있는 나를 통해작품으로 육화된다. 그렇게 하나 된 위아래의 나는 언어의 실을 자으며 집을 짓는다(作家).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이 거미집에 만유가 매달려 있다. 그 수천수만의 보석으로 내 몸이 장엄해진다. 이것이 우주이며 파라오 슬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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