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가 너무 불안하다. 이럴 때일수록 파라오 슬롯에서 잘리지 않도록 꾹 참고 매달려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물가도 치솟고, 환율도 높은데,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월급은 제자리다. 여기저기 기업 도산 우려도 커지는데, 사건사고도 많다. 뉴스를 들을수록 스트레스만 쌓인다. ‘내가 걱정한다고 될 일도 아닌데’라고 털어버리지만, 여전히 꿈자리가 사납다.
내 이름은 허사이, 37살. 지금은 평택항 가까운 곳에 위치한 화학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매년 3월이면 파라오 슬롯는 어수선하다. 정기 인사이동과 조직 개편이 이루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임원 인사발령이 공지되고, 그에 맞춰 관리자와 사원들의 보직 변경이 이어진다. 여기서 사원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특별히 눈에 띄게 출중하거나, 반대로 문제가 있는 사람만 예외적으로 옮길 뿐이다. 나처럼 평범한 사원은 대부분 그대로 남는다.
“허 과장님, 이번엔 어떤 파라오 슬롯님이 오실까요?”
늘 쾌활한 정 대리가 물었다. 그는 밝은 성격과 특유의 진취적인 태도로 어디서든 잘 적응하는 친구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희망보다는 체념이 서려 있었다. 사실,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박 파라오 슬롯님이 오시겠죠.”
내 대답은 건조했다.
박 파라오 슬롯은 악명이 높다. 3년 주기로 파라오 슬롯들의 보직이 바뀌는 회사 규칙에 따르면 이번에는 그의 차례다. 옆팀의 동료들도 내 대답을 듣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가 그의 이름을 꺼려하지만, 정 대리처럼 허공에 기대를 품는 이도 더러 있다.
박 파라오 슬롯은 좋게 말하면 ‘일벌레’고, 솔직히 말하면 ‘꼰대’다. 그의 별명은 좀마(좀비마스터). 이유는 간단하다. 그와 일하는 팀원들이 점점 혼이 빠져 좀비처럼 변해가기 때문이다.
“시키는 대로 해.”
박 파라오 슬롯의 단골 멘트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그는 대뜸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다 해봤어. 안 돼. 자, 내가 알려줄게. 이렇게, 저렇게 하면 돼. 그리고 내일까지 데이터 가져와.”
결국, 팀원들은 점점 입을 닫고 시키는 대로만 움직인다. 회식 장소도 그의 전권이다. 평택 인근의 모든 음식점을 다 가본 듯한 박 파라오 슬롯은 늘 자신의 의견을 강요한다. 휴가 역시 예외가 아니다.
“파라오 슬롯님, 저 5일 휴가 좀 쓰겠습니다.”
“왜? 사유는?”
“동남아 OO으로 여행 가려고요.”
“거기 내가 가봤는데, 볼 게 없어. 3일만 써도 돼. 내가 일정 짜줄까?”
애초에 여자친구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팀원은 결국 거짓말을 한다.
“사실 부모님 모시고 가는 패키지여행이라 날짜가 정해져 있어서요.”
그렇게 팀원의 휴가마저 그의 허락과 재단을 거친다.
나는 이런 박 파라오 슬롯이 싫었다. 아니, 정확히는 나와 맞지 않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지만, 직장에서는 상대를 알아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머릿속에는 다양한 전략이 떠오른다. 교토삼굴, 그래봤자 3년, 파라오 슬롯 수 없으면 즐겨라…
하지만, 난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데 서툴다.
그래서 파라오 슬롯 조용히 마우스를 클릭했다.
사내 리쿠르팅. 파라오 슬롯 내 보직 변경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다.
3년은 너무 길다. 그리고 파라오 슬롯 맞고 싶지 않다.
“우리 어떻게 하죠? 그동안 너무 편했나 봐요.”
정 대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 대리님, 파라오 슬롯 생활 길게 남으셨잖아요. 다양한 사람 경험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거예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정 대리는 누구와도 잘 맞추는 성격이다. 그는 박 파라오 슬롯과도 훌륭한 콤비가 될지도 모른다.
워드 파일로 작성한 지원서를 꼼꼼히 검토하고, 조용히 인사과에 메일을 보냈다.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접수되었습니다. 일주일 내에 서류 전형 결과를 연락드리겠습니다.’
확인 메일을 읽으며 파라오 슬롯 다짐했다.
파라오 슬롯 과거에 상사와 다투며 많이 성장했다. 인정사정없이 지시만 하는 상사에게 “파라오 슬롯 인간이란 말입니다! “라고 외치고 싶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물론 꾹 참다가 폭발한 화는 예쁜 말로 나가지 않았다. 후회가 남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