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시나몬티 향을 맡으며, 따뜻한 흰 머그컵을 손으로 감싸 얼었던 손을 녹였다. 종로 시내가 훤히 보이는 넓은 창을 바라보며 한 모금 삼켰을 때, 쌉싸름하면서 목 넘김의 마지막에는 알싸한 톡 쏘는 자극이 살짝 아리게 느껴지기도 했다. 창가 경치도 맑고 아름다웠지만 하늘을 배경 삼아 투명한 창문에 새겨진 문장을 보느라 한동안 창가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춤을 추고 있을 때는 바카라 깨도 돼
한창 일해야 할 서른 중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을 보내면서 공허했던 나의 마음이 보였다. 출퇴근 시간, 매달 고정 월급날, 쉬는 주말과 같이 반복하던 것들이 사라지고 잠시 홀가분한 듯했으나 아쉬워진 요즘. 남들과는 다르게 보통 삶의 바카라 깨고 살아가는 지금이 그다지 유쾌하진 않았다.
명확히 일 외에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하진 않았다. 직장에서 하기 싫은 일을 참아낼 이유와 삶의 목표가 없었고, 버틸 힘도 부족했다. 10년 전 함께 입사했던 동기들은 여전히 한 곳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더욱 바카라 일탈이 씁쓸할 때가 있다. 저마다의 춤이 있겠거니 싶다가도 바카라 춤은 왜 한 곳을 바라보지 못했을까 아쉽다.
다행히 퇴사 후 남들에게 나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부담감과 압박감을 벗으니 있는 그대로 내가 가진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바카라 타인에 의해 정해진 시간을 살다가 오로지 나의 계획으로만 하루를 쌓아가며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날들에 감사함이 느껴진다.
너무 할 게 없어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기도 하고, 지나간 드라마에 빠져 밤을 홀딱 새기도 하고, 억지로 꾸역꾸역 바쁜 날을 만들어도 본다. 즉흥적인 날도 있고, 계획적인 날도 있다. 원래 삶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고 정해진 대로만 살 수 없으니 그저 '바카라'을 충실하게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