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슬롯 머신시대 소설을 쓴다는 것

며칠간 슬롯 머신를 활용한 그림과 글쓰기에 관해 조금 배웠습니다.다양한 분야에서 글쓰기를 척척 해내는 슬롯 머신 앞에 인간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듯하여 슬그머니 공포심마저 들었습니다.


학술활동에 매진하던 시절, 열 번도 더 들여다보고 제출해도 어딘가 맞춤법이나 띄어슬롯 머신의 오류들이숨어있다가 고개를 쳐들며 저를 비웃곤 했습니다.이미 활자화되었으니 어쩌지도 못한 채 부끄러운 속내를 내내 감추기 어려웠습니다.


눈이 빠질 것 같이 여러 번 교정을 보아 출간한 이번 소설책에도 오자가 숨어있었습니다. 이젠 컴퓨터가 맞춤법을 교정해 주는 세상인데, 그 오자는 당췌 어찌된 영문인지요. 참 민망했습니다. 철자나 문법이 완벽해 보이는 슬롯 머신글 앞에 여전히 부족한 글쓰기 솜씨를 지닌제 존재 자체가 하잘것없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예 내친김에 슬롯 머신에게 이것저것을 주문해 글을 받아보았습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물론, 문법적인 오류 하나 없이 어찌나 매끄러운 완성품을 제 앞에 보란 듯이 던져놓는지 주눅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려함을 타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기계의 비리치근한내음... 작가가 쓴 글을 읽노라면 맡아지던그 땀 내음, 흙내음, 삶의 진득한 맛, 묵직하게 다가오는 감동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원고지 사용기억이 남은구세대라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 슬롯 머신에 관한 책을 빌려 읽었습니다. 슬롯 머신를 활용해 장편소설도 뚝딱뚝딱 써 주는 기법을 안내하면서 저자도 고민을 남겼습니다.


대체창작이란 무엇이고,창의성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글을 쓴다는 행위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 질문 앞에 저도 마음이 답답해서 내가, 인간이 직접 써 내려간 글(슬롯 머신, 에세이)이란 무엇일까를 정리하기 위해 다른 책을 또 빌려 읽었습니다.


슬롯 머신가로서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무리조그마한 구석 자리라도 자신 밖에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을 찾아내는 것.


전문적이고 아주 섬세하게 슬롯 머신(단편슬롯 머신) 쓰기를 다룬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저자가 남긴 조언입니다.


그 구석 자리가 너무 달라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쏟아진 글 틈새의 어느 구석 자리를 찾는 것에서 나아가, 이젠 슬롯 머신가 써내기 어려운 구석 자리까지 찾아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제가 채울 수 있는 구석 자리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저 오늘도 잔뜩 소설책을 빌려와 읽으며, 책상 위 노트에 제 생각을 또 끼적이며 하루를 보내봅니다.



슬롯 머신

인용문 출처 :

1) 김덕진, 『슬롯 머신 2024 : 트렌드 & 활용백과』, 스마트 북스, 2023

2) 데이먼 나이트 지음/정아영 옮김, 『단편슬롯 머신 쓰기의 모든 것』, 다른, 2017, 350~351쪽.

원작은 1997년, 한국에 번역 출간은 2017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