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으. 추워. 담요로 다리를 둘둘 감았는데도 무릎이 아릴 만큼 춥다. 잘 잠기지 않는 패딩을 최대한 당겨서 한 손으로 옷깃을 붙잡고 남은 한 손으로 핸드폰 화면을 슥슥 내렸다. 저승사자 기자는 그새 잽싸게 아수라장이 된 학교의 정면 사진과 함께 '첫 번째 수요일의 저주'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푸른 입술이 가늘고 선명한 프로필 사진 속 기자의 얼굴이 글의 분위기를 더욱 살려준다. 이런 미신 냄새가 흠뻑 나는 개인 블로그의 글에 귀를 기울일 이는 별로 없겠지만, 지난 사건의 정확한 날짜와 세 사건의 중심에 동일 인물이 있다는 정황이 꽤나 호기심을 유발하는 모양이다. 다들 내 '저주'에 대해 신나게들 떠들어대고 있었다. 기사나 블로그 글에서 직접적으로 내 인적 사항과 학교, 동네를 언급한 적은 없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엔 대놓고 내 신상정보가 마구 돌아다녔다. 사건에 집중한 댓글들 아래로 나의 외모와 개인사를 향한 비난과 비아냥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추워서 인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다 이내 창을 닫아버렸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난 그냥 집이 필요했을 뿐인데.
개교 68년 이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 하필 내가 도서실에서 몰래 잤던 그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났다. 원인은 아직 찾아내지 못했지만 학교 바로 뒤의 뒷산에 불이 났고, 그 연기가 마침 열려있던 2층 교무실 창문으로 들어오면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이윽고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면서 도서실을 포함한 학교 전체에 물이 뿌려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뒷산과 근접해있던 급식실 바로 너머의 LPG가스 보관실까지 화마가 닿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학교는 물바다가 되었지만 더 큰 사고를 막게 해 준 스프링클러의 학교 설치 의무화에 대해 짧게나마 열띤 토론이 오갔다. 컴퓨터 등의 전자 기기는 모두 보험 처리를 받아 큰 문제없이 수리할 수 있었고 각종 책과 자료 등의 문서들은 대부분 책장이나 보관함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피해를 입긴 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경비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수영하다 뛰쳐나온 흠뻑 젖은 곰의 형상을 한 나를 붙잡은 순간 사건의 심각성은 한층 더해졌다.
사건 경위를 조사하던 중 내가 근 한 달간 도서실에서 몰래 숙식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손짓 발짓을 더해가며 열렬하게 증언을 덧붙여준 경비원 덕분에 내가 뭐라고 변명할 틈도 없이 이 사건은 재빠르게 기사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난 도서실에서도 그리고 교무실에서도 쫓겨났다. 이번 학기까지는 두고 보자던 교감 선생님도 기사를 본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와 세 번 연속 경찰서에 증인으로 불려 갔다는 사실 때문에 정직 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통보했다. 나를 항상 못마땅하게 훑어보던 교감 선생님도 막상 이지경이 되니 이젠 내가 안쓰러운지 교감실을 나서는 내게 당분간 묵을 곳은 찾았는지 물어봐주기는 했다. 자기 집에 와도 된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동정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식탁을 나눌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겠지. 정작나를 거둬준 건 동정도 식탁도 없는 토마토였다.
온라인바카라;노 쌤! 밥이요! 밥!온라인바카라;
한 손엔 작은 컵라면과 다른 한 손엔 커다란 토마토를 송이 째 든 토마토가 창고 문을 발로 걷어차면서 들어왔다.참 언제 봐도 우아한 학생이다.
온라인바카라;뭔 컵라면이 이렇게 작냐. 대장 지나면 물 한 방울 안 나오겠다.온라인바카라;
나도 우아함에 있어선 뒤지지 않는다. 토마토는 이젠 익숙하다는 듯 대꾸도 없이 나무젓가락을 쫙 뜯어 컵라면 용기에 푹 꽂은 뒤 내게 내민 뒤 토마토를 하나 뜯어서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온라인바카라;좀 있으면 아빠 배달 갔다가 곧 돌아오실 거니까 잔말 말고 얼른 드세요. 밥 먹을 시간에 라면 냄새나면 또 나만 한소리 들어요. 소파 나름 푹신하죠? 여기 원래 내 아지트인데 쌤한테만 특별히 빌려줄게요.온라인바카라;
도서실과 교무실에 있던 짐들을 대충 상자와 봉투에 가득 쑤셔 넣고 기자들과 구경꾼들을 피해 학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오자 토마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별다른 말 없이 봉투 하나를 잡아채선 따라오라는 듯 성큼성큼 뒷산으로 들어갔다. 토마토는 수풀이 많이 우거진 곳에 짐을 내려둔 후 나더러 기다리라 하고 사라지더니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다시 나를 찾아왔다. 어두워진 골목길과 큰 도로변을지나 도착한 곳은 토마토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토마토 농장의 버려진 창고였다. 창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자 말린 토마토 줄기의 시큼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아, 그래서 토마토가 토마토구나. 난 또 재수 없는 친구 얼굴에 토마토라도 던져서 토마토가 된 건가 했지. 토마토라면진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마른 토마토 줄기 무덤 사이를 헤쳐가자 구석에 놓인 작은 스탠드 불빛이 낡은 소파 하나와 플라스틱 박스로 만든 간이 테이블을 비추고 있었다. 시큼한 냄새가 나고 머리 위엔 거미줄이 가득한 창문 하나 없는 더러운 창고였지만 그날 저녁 난 집에 불이 난 이후 두 달 만에 처음으로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온라인바카라;쌤. 근데 진짜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온라인바카라;
밥은 마음 편하게 못 먹게 하지만.
온라인바카라;낸들 아냐. 직장에서 잘리고 집은 불타고 모아둔 돈은 없고.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냐고.온라인바카라;
토마토가 뭔가 말을 하려다 이내 입을 다시 다물었다. 그래. 이 상황에 확실한 해결책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니. 순식간에 컵라면을 입에 다 털어 넣고는 바닥에 남은 미역 쪼가리를 젓가락으로 긁어모으고 있는데 눈앞에 핸드폰 화면이 불쑥 나타났다.
온라인바카라;뭐냐.온라인바카라;
온라인바카라;이 블로그 보셨어요?온라인바카라;
온라인바카라;그래. 나더러 인간 폭탄이던데.온라인바카라;
온라인바카라;그런 댓글엔 신경 쓸 필요 없고요. 근데 진짜 첫 번째 수요일마다 사건이 생긴 거예요?온라인바카라;
온라인바카라;몰라. 난 날짜까진 정확하게 기억 안 나. 근데 그랬다고 하더라고. 웁. 에이.온라인바카라;
토마토 한 개를 뜯어서 입에 욱여넣다가 확 터져 나온 즙을 줄줄 흘리는 내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보던 토마토가 다시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누가 어른인지. 참.
온라인바카라;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같은 패턴의 날짜에 사건이 생기니까 이상하긴 하네요. 정말 저주 뭐 그런 거 아녜요?온라인바카라;
온라인바카라;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저주까지 받냐. 그리고 저주면 뭐 어쩌려고. 굿이라도 받으리?온라인바카라;
온라인바카라;아니, 이 정도면 저주받았다기보다는 여기저기 저주를 뿌리고 다니는 것이라고 봐야... 헙.온라인바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