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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슬롯사이트 되고 싶어?

저는 ‘성덕’이 슬롯사이트 싶어요


- 왜 슬롯사이트 되고 싶어요?


막내작가 시절 면접을 볼 때마다 꼭 대답해야 했던 질문이다. 그때 나는 뭐라고 말했던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처음에는 사실만을 말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며 점점 거짓도 섞었을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애청자여서 꼭 작가로도 일을 해보고 싶었다, 시사 프로그램의 슬롯사이트 반드시 되고 싶었다 같은 그럴듯한 화이트 라이를 했겠지.


막내작가 자리에 지원할 땐 이력서와 함께 동봉해야 하는 게 있으니, 바로 자기소개서다. 보통 여기에 왜 슬롯사이트 되고 싶었는지, 어떤 슬롯사이트 되고 싶은지 포부를 밝히게 된다. 역시 어떤 내용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프로그램에 내도 다 들어맞을 만한 적당한 이야기들을 적었겠지. 무슨 예술가의 명언을 인용해 꽤 그럴듯하게 쓰려고 애썼던 것 같은데, 그때 적은 대로라면 지금 난 대슬롯사이트 되어있어야 할 터. 요즘처럼 피디나 구성작가 이름이 대중에게 친숙해진 시대에도 내 이름은 비밀처럼 알려지지 않았으니 그때 그 자소서는 역시 ‘자소설’의 기질을 담고 있던 것으로. 땅땅.




면접 자리에서는 어느 피디, 어느 작가에게도 제대로 말해본 적 없는, 진짜 내가 방송슬롯사이트 되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때는 졸업을 한 해 앞둔 ‘막 대학 4학년’. 창작 수업인 줄 알고 수강한 문예 창작론이 옛 문인들의 대작만 탐구하는 것인 줄은 몰랐던 나는 가열차게 C를 받고, 그로부터 1년 후 다른 교수님의 문예 창작론으로 재수강을 하기에 이르렀다. 희곡을 전공한 교수님은 연극 분석과 연극 관람을 과제로 받을 것이고, 중간고사 대체 과제로는 무려 창작 대본을 받겠다며 학생들의 창작욕을 활활 타오르게 했는데 여러 과제들 중 눈 앞을 깜깜하게 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작가 인터뷰’였다. 교수님은 소설가나 시인 등 순수문학 슬롯사이트 아니어도 좋다며 방송구성작가 드라마작가 만화스토리작가 등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누구든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걸 적은 내용을 과제로 받겠다고 했다. 남은 시간은 고작 1개월 정도. 나는 아는 슬롯사이트 한 명도 없었고, 학생들의 수군거림 중 “우리 엄마가 000 작가랑 친구인데 부탁해야겠다!” 따위의 말에 내심 부럽단 생각만 했다. 하지만 어쩌랴. 없으면 만들어야지.


일단 작가들에게 연락할 방도를 알아야 했다. 라떼는 말이야~ 작가에게 어떻게 연락할지 참 막막했더랬다. 지금은 SNS를 워낙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유명인이 많은 데다, 수시로 토크콘서트나 글쓰기 강연 등 작가와 대중이 만나는 자리가 많다. 등단을 하지 않아도 슬롯사이트 되는 루트가 많아 작가 자체도 굉장히 많아졌다. 하지만 라떼는 말이야~ (또또!) 그렇지가 않았다...

소설가나 시인에게 연락하기에는 방법도 모르겠고 (그분들은 당시 핫하던 SNS인 싸이월드에서도 찾지 못했고), 설사 인터뷰에 응해준대도 슬롯사이트님들의 작품과 작품 분석 논문도 몇 편 정돈 예의상 읽어야 한다는 다분히 국문과적인 생각에 연락할 엄두도 내질 못했다. 그래서 생각한 인터뷰이가 바로 어린 시절부터 죽 즐겨보고 좋아했던 만화책의 스토리슬롯사이트와, 당시 즐겨보던 문화 프로그램의 구성슬롯사이트였다. 그리고 연락 방법을 검색하니 웬걸, 해당 프로그램의 홈페이지에 메인 슬롯사이트 두 명의 이름과 메일 주소가 떡하니 적힌 게 아닌가!


두 분 중 한 분은 남자, 한 분은 여자인 것 같아 후자를 선택! 무작정 내 소개와 과제에 대한 설명을 적은 메일을 보냈고 며칠 뒤 ‘KBS에서 만나요’ 라는 답장을 받았다.




그날의 인터뷰는 녹음본을 여러 차례 들으며 줄글 형식으로 정리해 과제로 제출했고, 그 과제는 몇 년 전 오래된 USB를 정리하다 찾았다. 그걸 읽으면서 ‘나는 왜 방송슬롯사이트 되려고 했는지’, 스스로에게 종종 하던 질문의 답을 찾았다.

연차가 두 자릿수에 접어들며 일이 주는 설렘은 많이 제거됐다. 이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언젠가 썼듯 내 가치관은 ‘일이 삶보다 우선될 수 없다’이고, 무엇보다도 이젠 항상 책임감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설명되는 시기는 애초에 지났다.

허나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다 평가받는, 그래서 이 일을 하겠다는 패기에 찬 이들을 말리는 경력자가 많은 세계에 뛰어든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그걸 꽤 오래도록 잊고 있었는데, 대학생 시절 작성한 과제를 통해 막 꺼지는 불씨를 겨우 회생한 듯 새삼 깨달았다. 사라진 줄 알았던 기억을 되살려 준 문장은 대략 이랬다.


슬롯사이트님은 그 피아니스트를 ‘00이는~’라며 친근하게 불렀다.


그랬다. 그때 내가 ‘덕질’하던 피아니스트-아직도 좋아한다-가 그 방송에 여러 차례 출연했기에 순수한 ‘팬심’으로 그를 직접 마주하고 인터뷰 한 후기를 물은 것인데, 슬롯사이트는 ‘00이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의미에 대해 말한 거 기억나?’라거나, ‘그날이 00이 공연 사흘 전이었는데’라며 시종 피아니스트 김00을 ‘00이’라고 불렀던 것! 그건 분명 내게 신선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을 것이다. 어떤 연예인이 너무 좋아서 예능프로그램 판에 뛰어든 스텝들이 한둘이 아니란다, 엔터업계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디는 건 그들이 ‘찐 팬’이기 때문이라는 카더라들. 그게 바로 내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미술사학을 복수 전공하는 인문학도로, 문화 예술 다방면에 시간과 돈을 쏟았는데 그중 특히 클래식 음악에 대한 팬심을 불태웠더랬다.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고 음대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음악학 책을 독파하는 것으로도 예술은 너무 멀게 느껴졌기에 3년째 개인 레슨을 받고 있었으니 그 열정은 꽤 높았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예술을 업으로 삼을 순 없으니 좀 더 가까이 향유하는 법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 안달이 나 있었고, 예술 프로그램의 슬롯사이트라는 건 내 부족함을 채워줄 ‘그 무언가’였던 것이다.




그래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슬롯사이트 되었냐고?

애석하게도연차가두자릿수가될때까지단한번도그런프로그램의슬롯사이트로일해본적없다. 일명‘정통성’을앞세우는문화예술교양프로그램의수는매우적다. 그마저도시청률이무척낮아서한낮혹은새벽시간대에방영되는데, 그때라도편성될수있는건꾸준한고정팬덕분이리라.


언젠가 이런 프로그램의 서브작가 자리가 곧 빈다는 소문을 듣고 몇몇 선배 작가에게 ‘프로그램 갈아타기’에 대한 고민을 공유한 적 있다. 저연차인 지금부터 꾸준히 예술 프로만 하면 예술 전문 슬롯사이트 되지 않을까요? 한 유명 영화 프로는 한 슬롯사이트 10년째 하고 있다잖아요.(갑자기 잡썰; 이 슬롯사이트님과 함께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진짜로 20년 가까이 영화 관련 프로그램 제작에만 참여하고 있었으며, 웬만한 영화는 장면과 대사를 그대로 기억하는 놀라운 암기력을 자랑했다)하지만 돌아온 조언은 모두 No. 이유는 앞 문단을 참고하셔라. 프로그램이 사라지면 내 일자리도 사라지는데, 어쭙잖게 한 분야만, 그것도 비인기 종목을 파면 다른 데로 옮겨 타기도 힘들다는 얘기.


그래도 방송슬롯사이트 된 이상 어떻게든 해야겠어요! 라는 내 고집에 가장 믿고 따르는 선배는 답했다.


- 네가 만들면 되지.


결국 나는 옮겨 타기를 포기했고 연차가 두 자릿수가 된 지금껏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한 번도 못해 본 슬롯사이트지만, 저 이상을 현실로 만들고픈 꿈은 여전하다. 그나마 방송 생리를 좀 익혔다 하는 이쯤 되니 고정 팬층만 좋아하는 한낮과 새벽 시간이 아닌, 더 많은 사람이 TV를 볼 수 있는 시간대에 편성되는 포맷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이 글 처음에 쓴 질문을 이젠 다른 말로 바꿔본다.


- 어떤 슬롯사이트 되고 싶어요?


질문은 달라졌지만 답은 여전히 하나다. 저는 ‘성덕’이 슬롯사이트 싶어요. 다만 그땐 그 대상과 만나고 가까이하는 게 ‘성덕’의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들도 최대한 쉽고 재밌게 그럴 수 있도록 하는 게 기준점이 됐다는 것. 그 꿈을 이룰 때까지 이 일을 그만둘 맘은 안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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