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아는 선과 악, 긍정과 파라오 슬롯 단순한 이분법 속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더없이 복잡하고도 깊은 심연 속에서 끝없는 진동을 반복하며 존재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파도처럼, 실현된 선택과 억눌린 가능성 사이를 넘나들며 흔들린다. 자아란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얼굴을 지닌 군상이다. 각기 다른 목소리들이 내면에서 부딪히고 얽히며,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격렬히 부르짖는다.

우리 안에는 상반된 파라오 슬롯들이 존재하며, 그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밀어내고 억압한다. 빛을 갈망하는 파라오 슬롯가 있으면 어둠에 몸을 숨기는 파라오 슬롯가 있다. 나아가려는 파라오 슬롯가 있는가 하면, 멈춰 서기를 두려워하는 파라오 슬롯도 존재한다. 한 파라오 슬롯가 앞에 나서면 다른 파라오 슬롯는 그림자로 남고, 또 다른 순간에는 그 그림자가 다시 빛을 향해 몸을 일으킨다. 그러나 억눌린 파라오 슬롯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망각의 틈바구니에서 기회를 엿보며 되살아날 순간을 기다린다. 오래도록 눌러놓은 감정이 어느 날 문득 터져 나오는 것처럼, 억눌린 파라오 슬롯는 불현듯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때때로 우리는 선택이 자아를 결정한다고 믿지만, 어쩌면 자아가 우리를 선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잊혔다고 생각했던 자아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고 우리의 길을 결정짓는다. 스스로 단단하다고 믿었던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 과거의 우리가 문을 두드린다. 마음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두려움과 욕망이 꿈틀거리는 밤, 억압된 자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 내가 만들어낸 나인가, 파라오 슬롯면 나를 떠밀어온 수많은 자아의 조각들인가?

어쩌면 자아란 강물과도 같다. 한순간도 같은 모습을 유지하지 않으며, 흐르면서 형체를 바꾸고 또다시 흐른다. 때로는 투명하게 반짝이다가도, 어느새 짙은 안개처럼 가라앉는다. 우리는 그 물길 위를 떠다니며 한 자아에서 또 다른 자아로 흘러간다. 모든 자아가 하나로 합쳐질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공존하는 방식을 배울 수는 있다. 억누르려 할수록 더욱 거세게 밀려오는 파라오 슬롯 자아라면, 차라리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흘러가게 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진정한 자아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불완전하고 모순된 조각들의 총합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조각들이 서로를 파라오 슬롯하지 않도록, 억압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빛과 어둠, 긍정과 파라오 슬롯, 강함과 약함. 이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있다. 어느 하나를 지우려 할 필요는 없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이루는 그 모든 자아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흔들리는 존재 속에서 우리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길이 아닐까.